경제난으로 부도가 나 문을 닫은 안산 시화공단의 한 중소기업체의 녹슨 자물통이 산업화 이후 최대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안산/김봉규 기자
‘한번 망했으니 또 망한다’는 편견이 재기 어렵게 해
안철수 “새롭게 도전하는 행동력이 기업가정신 핵심”
안철수 “새롭게 도전하는 행동력이 기업가정신 핵심”
[실패도 사회적 자산이다] <3>사회조차 외면하는 실패
대전에 있는 중소기업 ㄴ사의 김아무개 대표는 재기에 성공해 한때 자신의 얘기를 담은 책을 펴내고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실패 전력이 알려지자 재창업기금을 대출해준 ㅅ은행은 추가 대출을 거절했고, 거래처에서도 돈을 제때 못받을까봐 현금 거래로 바꾸었다. 직원들도 다시 실패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했다. 한때의 실패가 재기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 김 대표는 험난한 실패 과정을 겪었다. 1998년 창업해 승승장구하다가 2000년 한 임원이 매출대금을 횡령하고, 거래처가 6억원짜리 어음을 부도내자 그의 회사 역시 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내는 친정으로 피신했고 그는 노숙자로 전락했다. 한때 자살도 시도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구한 뒤 ‘새 삶’을 다짐하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사장님’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큰 성공은 아니지만 주위 사람에게 용기를 주려고 내 경험을 알리고 싶었는데, 실패 경험이 공개되자 사업에도 불이익을 받아 더이상 알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는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위험요소 분석 등 ‘위험 회피 시스템’을 갖춰 실패를 사전에 걸러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철저한 분석에도 실패하는 사업은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 해당 사업을 책임지고 추진했던 실무자들은 스스로 혹은 암묵적인 조직의 요구로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 사회의 인식 전환이 재기 발판 최근 일부 대기업에선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최근 ‘미국 이동통신사업 백서’를 만들었다. 2006년 미국에서 이동통신사업 ‘힐리오’를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지난해 5억6000만달러의 손실을 보고 철수하는 쓴맛을 봤다. 하지만 에스케이텔레콤은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자 백서를 작성했다. 에스케이텔레콤 송광현 홍보팀 매니저는 “힐리오를 통해 큰 손실을 봤지만 앞으로 글로벌 사업에 당시 경험이 큰 도움을 줄 것 같아 백서를 냈다”며 “힐리오에 있었던 직원들도 당시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부서에서 여전히 활동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실패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부도가 나 재기를 꿈꾸는 ㅈ전자의 대표 조아무개씨는 “거래처의 3억원짜리 어음이 부도가 나 망했는데 주위에서 돈을 횡령하지 않았는지 의심하는 등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리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지난번 망했으니 이번에도 또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재기를 꿈꾸기 힘든 지경”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는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새롭게 도전함으로써 새 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마음가짐과 행동력이 기업가 정신의 핵심”이라며 “우리나라에서 낮은 성공 확률과 한번 실패했을 때 다시 재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시스템 때문에 기업가 정신이 쇠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쉽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적 제도와 인식의 부족이 기업가 정신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정훈 최원형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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