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직장·취업

‘재미있고 즐겁게’…직원 모두 보물 대접

등록 2008-06-17 18:39수정 2008-06-17 19:25

교토의 호리바제작소는 창업 이래 매달 사장과 임원들이 그달 태어난 사원의 생일잔치를 열어준다. 83살 창업자와 직원들이 사진을 찍거나(왼쪽 사진), 사장이 가장 나이 어린 직원들과 케이크를 직접 자른다.
교토의 호리바제작소는 창업 이래 매달 사장과 임원들이 그달 태어난 사원의 생일잔치를 열어준다. 83살 창업자와 직원들이 사진을 찍거나(왼쪽 사진), 사장이 가장 나이 어린 직원들과 케이크를 직접 자른다.
80대 창업자·임원들, 직원 생일 잔치 손수 챙겨
복리후생 전담회사 설립…유연한 근무도 장점
신바람 일터 만들기 /

⑥ 일본 호리바제작소

일본 교토에 있는 세계적인 분석·계측기 업체인 호리바제작소에 들어서면 먼저 본관 엘리베이터에 새겨진 ‘재미있고 즐겁게’(おもしろおかしく)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물어보니 회사의 ‘사시’란다. 자판기 종이컵에까지 글자를 박았다. 도대체 이런 사시를 여기저기 써놓는 회사는 어떤 곳일까? 그 궁금증은 지난 9일 저녁 엿본 호리바의 ‘6월 생일파티’에서 풀렸다.

치렁치렁한 은발을 질끈 묶은 노인이 잔을 들었다.

“내가 지난주 미국 출장서 돌아오다가 잡지를 봤는데 6월생들은 창의력이 뛰어나대요. 혁신에도 블루와 레드가 있는 법인데 매일의 생활에서 혁신을 찾는 레드형도 필요하지만 정말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블루 혁신이 어느 순간 나와야 해요.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83살의 이 사람은 호리바제작소의 창업자 호리바 마사오 최고고문이다. 1945년 당시 교토대 3학년 때 가정집 방 한 칸을 빌려 ‘호리바무선연구소’ 간판을 단 그는, 지금으로 치면 일본의 ‘학생벤처 1호’다. 페하(PH) 측정기를 처음 일본에서 국산화했던 호리바는, 현재 전세계 자동차 계측기 시장점유율 85%를 차지하며 반도체·분석시스템 등 분석·계측기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연매출 1453억엔(1조5천억원, 글로벌 기준) 규모의 기업이다.

도저히 80대라 믿기지 않는 말투와 용모의 이 창업자는 매달 열리는 생일잔치에서 직원들에게 ‘최고 인기자’다. 19살의 신입사원부터 나이든 주부사원까지 호리바 고문에게 다가와 수다를 떨다가 사진을 찍었다.

이 생일잔치는 지난 55년 정식으로 회사를 창립했을 때부터의 전통이다. 지금은 일본 본사 직원만 1500명이 넘어 호텔 음식이 차려지지만 이전엔 임원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야키소바를 만들었다. 잔치의 규칙은 부장·과장과 같은 중간관리자가 절대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 임원과 직원들이 직접 만나는 장이 달마다 한 차례씩 열리는 것이다. 이시다 코조 부사장은 “일반 직원들이 하는 얘기 가운데엔 정말 번쩍하는 아이디어도 많다”고 말한다. 파티에 앞서 호리바 아쓰시 현 사장이 20분 정도 생일을 맞은 사원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최근 회사의 경영 현안부터 자기개발 방법까지 다양한 내용을 직접 사원들에게 전달한다.

중요한 건 비용보다 임원들이 진심으로 직원 한명한명을 ‘대접’해준다는 느낌이다. 호리바 아쓰시 사장은 축제 때 입는 파란 옷을 걸치고 그달 생일을 맞은 이들 가운데 가장 어린 직원들과 함께 케이크를 잘랐다. 공연 티켓부터 ‘미소시루(일본 된장국) 3봉지’와 같이 유머스런 경품 추첨도 빼놓을 수 없다. 잔치가 끝나면 사장과 임원들이 한 줄로 서서 잔치 자리를 떠나는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 직원들과 얘기를 나누던 임원들은 파티가 끝난 뒤에야 남은 음식을 먹었다. 지금은 전세계 직원이 4900여명에 이르지만 “개인주의가 강한 유럽 지역의 직원들도 이런 모임을 경험하며 ‘호리바리안’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호리바의 복리후생 제도는 이런 분위기와 사시의 자연스런 결과물이다.

이 회사는 ‘호리바 커뮤니티’라는 별도의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76년 호리바 고문과 노동조합이 뜻을 모아 사원주주로 출발한 이 회사는 호리바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전담한다. 호리바와 협력업체 직원들은 이곳에서 휴대전화를 사는 것부터 여행 예약까지 싼값으로 할 수 있다. 연말에는 주주총회를 겸해 전국의 사업소를 생중계로 연결해 임직원들의 파티를 연다.

2년 전부터는 재택근무 제도와 단시간 근무제도도 시작했다. 사토 후미토시 상무는 “육아나 가족 병간호 등 때문에 휴직을 하고 돌아올 경우 직장 적응이 힘든 문제가 있다”며 “우수한 인재들이 자연스레 일터에 복귀하도록 해보자는 발상이었다”고 말한다. 실제 통근 근무자와 급여 차이는 없다. 1년 반 동안 재택근무를 하다가 최근 복귀한 웹업무 담당 기무라 유코는 “1주일에 한번 정도는 회사에 나오고 집에서 일을 할 때도 전자우편으로 계속 상사와 대화를 나눴다”고 말한다. 단시간 근무제도는 사정에 따라 하루에 60~70% 정도만 근무를 한다든지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다.

호리바에서 만난 직원들은 “자신이 하고 싶어 벌인 일이 실패해도 ‘감점’하지 않고 시도 자체를 평가해주는 기업문화가 최고”라며 “힘들어도 참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즐겁게 일하는 게 곧 기업과 사회의 기여라 생각하는 문화”라고 자랑했다. 호리바 최고고문은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게 회사다. 그런 일터가 지겹고 재미없으면 어찌 흥이 나고 창의성 있는 생각이 나오겠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였다. “인생은 한번뿐. 기자도 재미있게 살도록 해요.”

교토/글·사진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위기의 롯데그룹…내수·외국인 관광객에 명운 달렸다 1.

위기의 롯데그룹…내수·외국인 관광객에 명운 달렸다

금융시장의 ‘최후 보루’ 중앙은행…내란 이후 한은 총재의 결정 2.

금융시장의 ‘최후 보루’ 중앙은행…내란 이후 한은 총재의 결정

“김재규가 쏘지 않았어도 ‘박정희 경제 모델’은 망했을 것” 3.

“김재규가 쏘지 않았어도 ‘박정희 경제 모델’은 망했을 것”

마지막 ‘줍줍’…세종 무순위 아파트 3가구 120만명 몰렸다 4.

마지막 ‘줍줍’…세종 무순위 아파트 3가구 120만명 몰렸다

이어지는 백종원 빽햄 구설…주가도 ‘빽’ 5.

이어지는 백종원 빽햄 구설…주가도 ‘빽’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