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본사인 경기 이천사업장에서 지난 4일 연세대학교 학부 편입과정(생산관리·중국어)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하이닉스 제공.
신바람 일터 만들기 1부 ⑩ 사내대학
회사 안에서 정규 대학 학·석·박사 과정 위탁 운영
직원 가방끈 길어지고 회사 성장 동력 커져 ‘윈윈’ “나이도 있는데 공부가 잘 될까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1년 동안 열심해 했더니 자신감이 조금 붙더라고요.” 김보성(43)씨는 반도체와 씨름하며 청춘을 보냈다. 1988년 하이닉스반도체(당시 현대전자)에 입사한 뒤 줄곧 일선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했다. 그러다 지난해 회사 안에 대학 편입과정이 개설됐다는 소식을 듣고 덜컥 일을 저질렀다. “정규 학사과정이 생긴다니 욕심이 나더라고요. 대학 졸업장도 따고, 제조파트 외에 다른 영역의 일에도 도전할 수 있는 기회다 싶었죠.” 김씨는 지난해 연세대 원주캠퍼스 컴퓨터공학과 3학년에 편입해 올해 졸업반이 됐다. 고졸로 입사했지만 그동안 회사 안에 개설된 교육과정을 꾸준히 이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학사과정이 끝나면 경영학 석사 과정에 도전할 생각이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이천사업장은 조그만 대학 캠퍼스다. 17개 분야에 이르는 전문학사 및 정규 석·박사 과정에 모두 700여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다. 전공 분야는 다양하다. 패션코디네이션, 식품과학, 스포츠복지, 관광영어·중국어과, 인터넷쇼핑몰 등 업무와 무관한 분야들도 여럿 있다. 김기호 교육개발팀장은 “매년 사내 조사를 통해 직원들이 원하는 교육 과정을 파악한다”며 “업무 관련성보다는 직원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분야나 과정이 우선”이라고 설명한다. 4조3교대인 생산라인의 특성상 수업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뉜다. 오후반의 경우, 매일 업무가 끝나고 저녁 7시부터 3시간 가량 진행된다. 한 학기에 15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이 빡빡하다. 일에 시달리고 나서 공부가 잘 될까? “수업 정리하고 집에 가면 자정 무렵이에요. 또 시험 기간에는 공부도 해야 하고 리포트도 따로 써야 하죠. 사실 몸은 참 고달파요. 하지만 지난 학기에 하루도 결석한 적이 없어요.”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김진희 대리(교육개발팀)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왠지 든든하다”고 말한다. 청강대 관광영어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정원용(설비기술팀)씨는 요즘은 회의 때 버벅거리지 않는다. 정씨는 “이 바닥의 전문용어 대부분이 영어라서 업무상 필요가 컸다”며 “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졸음도 확 깬다”고 말했다.
정규학사 과정은 위탁대학 교수들이 직접 사업장 안에 마련된 강의실로 출강한다. 학사 일정은 정규 캠퍼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학년마다 지도교수가 있고, 같은 과 학생들과 모꼬지도 가고, 스터디도 함께 한다. 학기가 끝나면 작품 발표회를 하고 ‘쫑파티’도 거하게 한다. 중도 탈락자는 없을까? 전공 수업이 어려워 힘들어하는 이들끼리는 자연스럽게 주말 스터디 모임이 이뤄진다고 한다. 지도교수한테 부탁해 방학 때 별도의 특강을 듣는 열성파들도 많다. 멀리 청주사업장에서 매일 강의를 들으러 오는 이들도 있다. 품질보증실에서 근무하는 최종욱(안산1대 관광중국어과 2년)씨는 “다들 어렵게 공부하는 만큼 결석을 하면 과 동료들이 노트도 빌려주며 서로 챙겨주는 분위기다. 학습 지진아는 있어도 왕따는 없다”고 농을 건넨다. 수업의 질은 어떨까? ‘직장 다니는 학생’의 처지를 배려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눈감아 주는 건 없다. 강의 수준이나 내용을 ‘차별’하는 게 당사자들한테 별 도움이 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김진희씨는 “교수님들이 리포트나 숙제는 조금 덜 내주지만, 수업의 ‘품질’은 철저히 관리하신다. 학기 초에는 늘 대충하지 말라는 잔소리를 하신다”고 말했다. 직장내 인간관계가 넓어지는 즐거움은 덤이다. 2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 경영관리직에서 엔지니어까지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기 때문이다. 김보성씨는 20년 동안 직장을 다녔지만 업무상 만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다른 팀이나 부서 사람들을 접하면서 회사 전반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가방끈’이 길어진 직원들이 행여 딴 생각을 하진 않을까? 능력있는 직원들이 정식 석·박사 학위를 따고 난뒤 이직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회사 도움으로 자기계발을 한 사람들이 경쟁사로 옮기는 건 인사 담당자들한테는 가장 곤혹스런 일이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는 게 이 회사의 판단이다. 딴 생각하는 이들보다 회사 안에서 성장하는 기반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송관배 인사담당 상무는 “정규 과정을 이수한 직원들은 학력이 인정되고, 처우나 대우에도 반영이 된다.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회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직원 가방끈 길어지고 회사 성장 동력 커져 ‘윈윈’ “나이도 있는데 공부가 잘 될까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1년 동안 열심해 했더니 자신감이 조금 붙더라고요.” 김보성(43)씨는 반도체와 씨름하며 청춘을 보냈다. 1988년 하이닉스반도체(당시 현대전자)에 입사한 뒤 줄곧 일선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했다. 그러다 지난해 회사 안에 대학 편입과정이 개설됐다는 소식을 듣고 덜컥 일을 저질렀다. “정규 학사과정이 생긴다니 욕심이 나더라고요. 대학 졸업장도 따고, 제조파트 외에 다른 영역의 일에도 도전할 수 있는 기회다 싶었죠.” 김씨는 지난해 연세대 원주캠퍼스 컴퓨터공학과 3학년에 편입해 올해 졸업반이 됐다. 고졸로 입사했지만 그동안 회사 안에 개설된 교육과정을 꾸준히 이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학사과정이 끝나면 경영학 석사 과정에 도전할 생각이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이천사업장은 조그만 대학 캠퍼스다. 17개 분야에 이르는 전문학사 및 정규 석·박사 과정에 모두 700여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다. 전공 분야는 다양하다. 패션코디네이션, 식품과학, 스포츠복지, 관광영어·중국어과, 인터넷쇼핑몰 등 업무와 무관한 분야들도 여럿 있다. 김기호 교육개발팀장은 “매년 사내 조사를 통해 직원들이 원하는 교육 과정을 파악한다”며 “업무 관련성보다는 직원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분야나 과정이 우선”이라고 설명한다. 4조3교대인 생산라인의 특성상 수업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뉜다. 오후반의 경우, 매일 업무가 끝나고 저녁 7시부터 3시간 가량 진행된다. 한 학기에 15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이 빡빡하다. 일에 시달리고 나서 공부가 잘 될까? “수업 정리하고 집에 가면 자정 무렵이에요. 또 시험 기간에는 공부도 해야 하고 리포트도 따로 써야 하죠. 사실 몸은 참 고달파요. 하지만 지난 학기에 하루도 결석한 적이 없어요.”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김진희 대리(교육개발팀)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왠지 든든하다”고 말한다. 청강대 관광영어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정원용(설비기술팀)씨는 요즘은 회의 때 버벅거리지 않는다. 정씨는 “이 바닥의 전문용어 대부분이 영어라서 업무상 필요가 컸다”며 “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졸음도 확 깬다”고 말했다.
정규학사 과정은 위탁대학 교수들이 직접 사업장 안에 마련된 강의실로 출강한다. 학사 일정은 정규 캠퍼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학년마다 지도교수가 있고, 같은 과 학생들과 모꼬지도 가고, 스터디도 함께 한다. 학기가 끝나면 작품 발표회를 하고 ‘쫑파티’도 거하게 한다. 중도 탈락자는 없을까? 전공 수업이 어려워 힘들어하는 이들끼리는 자연스럽게 주말 스터디 모임이 이뤄진다고 한다. 지도교수한테 부탁해 방학 때 별도의 특강을 듣는 열성파들도 많다. 멀리 청주사업장에서 매일 강의를 들으러 오는 이들도 있다. 품질보증실에서 근무하는 최종욱(안산1대 관광중국어과 2년)씨는 “다들 어렵게 공부하는 만큼 결석을 하면 과 동료들이 노트도 빌려주며 서로 챙겨주는 분위기다. 학습 지진아는 있어도 왕따는 없다”고 농을 건넨다. 수업의 질은 어떨까? ‘직장 다니는 학생’의 처지를 배려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눈감아 주는 건 없다. 강의 수준이나 내용을 ‘차별’하는 게 당사자들한테 별 도움이 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김진희씨는 “교수님들이 리포트나 숙제는 조금 덜 내주지만, 수업의 ‘품질’은 철저히 관리하신다. 학기 초에는 늘 대충하지 말라는 잔소리를 하신다”고 말했다. 직장내 인간관계가 넓어지는 즐거움은 덤이다. 2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 경영관리직에서 엔지니어까지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기 때문이다. 김보성씨는 20년 동안 직장을 다녔지만 업무상 만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다른 팀이나 부서 사람들을 접하면서 회사 전반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가방끈’이 길어진 직원들이 행여 딴 생각을 하진 않을까? 능력있는 직원들이 정식 석·박사 학위를 따고 난뒤 이직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회사 도움으로 자기계발을 한 사람들이 경쟁사로 옮기는 건 인사 담당자들한테는 가장 곤혹스런 일이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는 게 이 회사의 판단이다. 딴 생각하는 이들보다 회사 안에서 성장하는 기반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송관배 인사담당 상무는 “정규 과정을 이수한 직원들은 학력이 인정되고, 처우나 대우에도 반영이 된다.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회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