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고용정보원 취업성공 수기’ 대상 받은 김소성씨
‘한겨레-고용정보원 취업성공 수기’ 대상 받은 김소성씨
“취업문이 좁다고 다들 아우성이지만 의지를 갖고 덤벼들면 결국 열린답니다.”
교통사고로 얻은 장애를 딛고 새 직장 얻기에 성공한 김소성씨(33·사진)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생생한 체험담을 <한겨레>와 한국고용정보원이 공동주최한 ‘제10회 취업성공수기 공모전’에 응모해 대상의 기쁨을 안았다.
김씨가 취업문을 열기까지의 과정은 여느 구직자들보다 훨씬 힘겨웠다. 2004년 여름 지원업무 중 그는 자동차에 부딪히는 큰 사고를 당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그가 의식을 되찾는 데만 20여일이 걸렸다. 8개월간의 입원생활을 통해 그는 두 번의 다리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2년간의 물리치료가 이어졌다. 사고로 생긴 후유증으로 말하기와 걸음걸이가 모두 불편해졌다. 끈질긴 치료로 그는 천천히 회복되어 갔지만 결국 ‘뇌병변 3급’이라는 장애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 이 정도 회복 된 것만 해도 하늘이 도운 거라고 할 정도로 큰 사고였어요.”
교통사고 후유증 ‘뇌병변 3급’ 진단
직업학교 컴퓨터설계 자격증 땄지만
나이 많아 퇴짜…진솔한 편지로 설득 몸은 회복되어 갔지만 김씨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서서히 밀려왔다. 자신의 인생을 하루아침에 망가뜨린 사람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에게 해를 끼쳤던 사람이지만 그 사람을 미워할수록 거꾸로 김씨의 마음이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는 마음의 병은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비로소 치료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꿨다. 차차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이제 김씨에게 남은 일은 새로운 인생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의욕에 가득 찼지만 3년간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 김씨가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노동부의 워크넷(work.go.kr)을 통해 운 좋게 한양직업전문학교를 알게 됐다. 걸음걸이가 자연스럽지 않고 말하기도 편안하지 않은 자신에게 설계분야가 꼭 맞겠다는 생각에 훈련과정을 선택했다. 김씨는 직업훈련에 두 번째 삶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했다. 몸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무안에서 목포까지 지각 한 번 하지 않았고, 특강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사고로 나빠진 기억력을 두세 배의 노력으로 메워 나갔다. "컴퓨터설계(CAD) 등 자격증을 3개 따고 나니 저절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노력은 결코 저를 버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가 새 직장을 갖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또 있었다. 새로 직장에 들어가기에 나이가 걸림돌이 됐다. 구직 등록을 하고 몇 차례 면접을 봤지만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번번이 떨어졌다. 장애는 이길 수 있었지만 세월은 그가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하더라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였다. 그냥 포기할까 하는 약한 마음도 들었다. 이 때 직업훈련학교 와 목포고용지원센터 선생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적극적인 조언이 큰 힘이 됐다. 김씨는 다시 마음을 다졌다. 선생님들의 조언을 따라 채용결정을 주저하던 회사의 사장님에게 자신이 이때까지 해 온 노력과 지금의 상황을 진솔하게 담아 전자우편을 보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의 열성에 감동 받은 선박설계 회사 ‘카퍼 엔지니어링’에서 입사를 결정하는 소식을 알려왔다. “열성이 재능을 이긴다는 말이 있잖아요. 누구든 취업할 수 있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노력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라고 김씨는 힘줘 말했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사진 한국고용정보원 제공
직업학교 컴퓨터설계 자격증 땄지만
나이 많아 퇴짜…진솔한 편지로 설득 몸은 회복되어 갔지만 김씨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서서히 밀려왔다. 자신의 인생을 하루아침에 망가뜨린 사람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에게 해를 끼쳤던 사람이지만 그 사람을 미워할수록 거꾸로 김씨의 마음이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는 마음의 병은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비로소 치료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꿨다. 차차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이제 김씨에게 남은 일은 새로운 인생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의욕에 가득 찼지만 3년간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 김씨가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노동부의 워크넷(work.go.kr)을 통해 운 좋게 한양직업전문학교를 알게 됐다. 걸음걸이가 자연스럽지 않고 말하기도 편안하지 않은 자신에게 설계분야가 꼭 맞겠다는 생각에 훈련과정을 선택했다. 김씨는 직업훈련에 두 번째 삶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했다. 몸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무안에서 목포까지 지각 한 번 하지 않았고, 특강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사고로 나빠진 기억력을 두세 배의 노력으로 메워 나갔다. "컴퓨터설계(CAD) 등 자격증을 3개 따고 나니 저절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노력은 결코 저를 버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가 새 직장을 갖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또 있었다. 새로 직장에 들어가기에 나이가 걸림돌이 됐다. 구직 등록을 하고 몇 차례 면접을 봤지만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번번이 떨어졌다. 장애는 이길 수 있었지만 세월은 그가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하더라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였다. 그냥 포기할까 하는 약한 마음도 들었다. 이 때 직업훈련학교 와 목포고용지원센터 선생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적극적인 조언이 큰 힘이 됐다. 김씨는 다시 마음을 다졌다. 선생님들의 조언을 따라 채용결정을 주저하던 회사의 사장님에게 자신이 이때까지 해 온 노력과 지금의 상황을 진솔하게 담아 전자우편을 보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의 열성에 감동 받은 선박설계 회사 ‘카퍼 엔지니어링’에서 입사를 결정하는 소식을 알려왔다. “열성이 재능을 이긴다는 말이 있잖아요. 누구든 취업할 수 있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노력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라고 김씨는 힘줘 말했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사진 한국고용정보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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