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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직장·취업

“일자리보다 자아실현” 위기의 중년 컨설팅하다

등록 2007-12-09 21:38

미네소타주 데인 카운티의 잡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직업찾기를 주제로 한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미네소타주 데인 카운티의 잡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직업찾기를 주제로 한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이모작 설계 마흔부터 ① 미국(상)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고용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2모작 인생 설계를 둘러싼 사회적 공감대 또한 확산되고 있다. <한겨레>는 한국고용정보원과 공동으로 2모작 생애경력설계 프로그램을 개발한 데 이어 해외 현지 취재를 기획했다. 40대 전후부터 차근차근 2모작 인생을 준비하는 미국과 일본의 생생한 사례를 국내의 경우와 함께 5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대학서 상담인력 키워 ‘경력개발 원스톱 서비스’ 제공
“서둘러 취업말고 어울리는 일 찾아라” 길게보고 지원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만난 리즈 에번슨(43)은 “경력개발 상담사와의 만남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인 그는 지난 2001년 5년간 일하던 교육용 자재 공급업체가 문을 닫으며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3달 동안 취업을 위해 수많은 면접을 봤지만, 대학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아이들의 학비는 물론 생활비도 감당하기 힘든 시절이었고, 이때 실직자들에게 경력개발 상담과 각종 정부보조금 지원 등을 제공하는 연방정부의 ‘정리해고 실직자 프로그램’은 그에게 남은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프로그램에 따라 비영리단체에서 만나게 된 상담사인 낸시 화이트는 직업전문대학(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수업 한두 개만 대충 듣고 서둘러 취업하려던 그에게 ‘당신에게 진정 어울리는 일을 찾으라’고 충고했다. 적성검사와 상담을 받으며 대학진학 결심을 굳힌 그는 2001년 가을부터 2년제 대학 학위를 시작했고, 다시 4년제 대학과 석사학위 과정을 차례로 밟았다. 현재 수감자들이 형기를 마친 뒤 일자리를 얻도록 돕는 미네소타 교정 교육센터라는 비영리기구에서 활동하는 그는 “해고 뒤 경력개발 상담을 받지 못했다면 나쁜 일자리의 굴레를 벗지 못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위스콘신주 남서부 데인 카운티의 잡센터에서 만난 제임스 앤더슨(61)은 자신이 은퇴연금을 받는 전직 우체부라고 소개했다. 애초 부동산중개인으로 일하던 그는 1970년대 초 금리인상의 영향으로 일거리가 끊기자 우체국에 취직했다. “아직 연금생활자로 지내기엔 너무 젊기 때문에 새 일거리를 찾고 있다”는 그는 “기본적인 직업정보 검색은 물론 네트워킹과 각종 정부지원책 활용법에 대한 상담을 해 주기 때문에 잡센터에 꾸준히 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만난 상담사들과 구직자들은 진로·경력개발(커리어 디벨로프먼트) 프로그램이 중년의 위기를 ‘인생 이모작’의 기회로 바꿔준다고 입을 모았다. 이 프로그램은 노년이 되기 전에 일찌감치 직업과 관련한 삶의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 40대 전후의 중년층이 주 대상자로, 자아탐색, 직업능력 파악, 일자리 찾기 등을 한데 아울러 개인이 직업을 통해 진정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한다. 특히 위스콘신 지역은 주정부 차원에서 경력개발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지역 내 대학에서 온라인 경력개발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고, 전문적인 상담인력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교육직업센터에서 만든 ‘위스커리어즈’(wiscareers.wisc,edu) 사이트는 회원들에게 홀랜드 코드를 통한 흥미검사, 취업을 위한 교육정보,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쓰기 등을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한다. 또 미국의 경력개발협회(NCDA)의 인증 아래 21주간의 교육을 통해 석사 학위의 상담인력과 달리 실무능력에 초점을 맞춘 진로개발촉진자(CDF)들을 배출한다.

커뮤니티칼리지나 테크니컬칼리지 같은 2년제 대학들은 새로운 경력을 모색하는 중장년층에게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매디슨 지역 테크티컬 칼리지의 경우 1~2년의 장기과정이나 2~3개월의 단기과정을 밟는 학생들이 5만여명에 이르는데, 이들은 비슷한 직업을 한데 모은 16가지의 ‘커리어 클러스터’ 중 하나를 선택해 다양한 강의를 수강한다.

이 대학에서 진로상담사로 일하는 크리스틴 롱은 “목재가공 같은 지역내 사양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있다면 상담사들이 직접 찾아가 재교육 정보를 제공해 준다”면서 “예컨대 이들이 요리사가 되려면 영양학 등의 과목에서 16학점을 채우면 되는데, 전체 비용은 1600달러 미만”이라고 소개했다.

위스콘신 주 전체에 78군데 설치된 잡센터는 사회보장 서비스, 해고 노동자에 대한 신속 대응, 취업 정보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데인 카운티의 경력개발 프로그램은 한달에 7~8차례의 각종 워크숍을 통해 제공하는데, 구직자들은 이력서 작성, 면접기술, 일반 적성검사 등의 프로그램을 카페테리아 식으로 맞춤·선택할 수 있다.

위스콘신 및 미네소타 지역의 경력개발 현황을 <한겨레>와 함께 현장 조사한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국내에도 직장생활에 불만족하거나 퇴직한 노동자를 위한 다양한 고용지원 서비스가 있지만, 이들이 미국처럼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상황”이라며 “국내에서도 생애 진로·경력개발이라는 큰 틀에서 각종 서비스들이 통합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매디슨·미네아폴리스/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일생을 연속적으로 보고 도와줘야”
위스콘신-매디슨 대학 교육직업센터 주디 에틴저 선임연구원

위스콘신-매디슨 대학 교육직업센터 주디 에틴저 선임연구원
위스콘신-매디슨 대학 교육직업센터 주디 에틴저 선임연구원
“진로·경력개발(커리어 디벨로프먼트)은 원래 실직자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상담자 입장에서 보면, ‘라포’라고 부르는 상담자와 피상담자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 장기적인 관계 속에서 자아탐색부터 일자리 정보찾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해나가야 피상담자의 자아실현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교육직업센터에서 만난 주디 에틴저(6s사진) 선임연구원은 “진로·경력개발 상담자들을 가르칠 때 한 사람의 일생을 연속적으로 보고, 일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게 해줘야 한다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직업센터에서 진로 관련 코디네이터나 커리어 코치로 활약할 글로벌진로개발촉진자(GCDF)들을 교육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에틴저 연구원은 “진로·경력개발 상담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40~50대 직장인들은 대부분 직무와 관련한 경험은 풍부하지만, 막상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상담을 할 때는 개인마다 다른 삶의 가치를 찾아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오넷’ 같은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자아탐색을 위한 검사를 받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덧붙였다. 개인적인 흥미와 가치체계를 확인한 뒤에 비로소 피상담자가 어떤 직무능력을 가졌는지, 직업교육을 위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이사를 갈 수 있는지 등을 체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력서를 잘 쓰고 면접을 잘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필수적이다. 해고 뒤 새 직장을 찾을 경우 ‘실패자’라는 인상을 줘서는 안된다고 에틴저 연구원은 귀띔했다. 또 미국의 경우 다양한 인종 및 계층과 어울려야 하는 만큼, 상담자는 피상담자에게 일터에서 다문화에 적응하는 방법까지 일러준다.

미국에서는 직원들의 평생 진로·경력개발에 관심을 쏟는 민간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할 시점이 되면서 숙련기술자나 전문인력이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에, 우수인재를 유지하려면 직원들의 요구사항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틴저 연구원은 “통신회사인 티디에스, 시카고 어린이병원, 코넬대학 등이 모든 임직원에게 체계적인 진로·경력개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면서 “예컨대 병원에서 시설관리 등 비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간호사나 치료사가 되기를 원할 경우, 직무전환을 위해 필요한 각종 교육비용을 무료로 대주는 사례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임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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