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만 쳐다보면 바보” 펀드 열기 후끈 증권사 지점 PB화‥ 중산층가지 서비스 30~40대 직장인 재무컨설팅 잇단 등장
30대 후반의 직장인 장진아(가명)씨는 며칠 전 적립식펀드에 가입했다. 회사 동료들이 모두 가입한데다 왠지 ‘은행에만 돈 넣어놓으면 바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회사도 그렇고, 남편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빨리 돈을 모아야 하는데, 은행은 금리가 낮아서….” 증권사와 은행을 찾았지만 직원들이 친절하지도 않고 펀드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상품을 선택했다. “은행 프라이빗뱅킹 같은 데는 부자만 상대하고, 어디 가서 상담 좀 제대로 받았으면 좋겠어요. 보험은 제대로 든 건지, 펀드는 잘 가입한 건지 궁금한 게 많아요.” 개인 재무컨설팅 업체인 에셋마스터의 전상대 컨설턴트는 최근 고객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면 상당수가 다시 연락을 해온다. “금리가 사실상 마이너스인데다 부동산도 기대를 걸기 어려워 투자상품에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조기퇴직으로 소득기간이 줄어드니까 일찍부터 미래에 대비하고 싶은 거죠.” 재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싶다는 욕구는 부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금리와 노후불안은 중산층에게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투자상품들은 그 특유의 복잡함 때문에 정확한 금융지식과 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을 부추기고 있다. ■ 투자상품 활성화=우리나라의 가계 금융자산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1083조원이다. 이 가운데 예금이 58.8%로 상당히 높은 편(미국 12.4%)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적립식펀드·변액유니버설보험·부동산펀드·선박펀드 등 간접투자상품 열기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투자상품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자산관리의 필요성도 증가한다. 효율적인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장근난 삼성증권 연구원은 “투자상품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자산 포트폴리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1990년대에 본격적인 저금리 시대가 시작되면서 펀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자산관리 서비스 업체들이 급증했다. ■ 발걸음 빨라진 업계=금융업계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삼성증권은 연초 리테일(소매) 영업본부를 프라이빗뱅킹(피비) 영업본부로 변경한 데 이어 모든 점포의 피비화를 추진 중이다. 기존 피비지점은 4개에 불과하고 대상도 고액자산가 위주였지만 앞으로는 피비서비스를 일반 고객까지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85개 지점을 모두 피비화한다는 것이다. 역시 자산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미래에셋증권의 이재호 자산관리지원본부장은 “우리의 목표는 재산형성기에 있는 중산층, 노후대비를 생각하는 30~40대 직장인”이라며 “올해 6개 지점을 확대하는 등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중소 개인재무컨설팅 업체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런 업체들은 3~4년 전부터 등장하기 시작해 지난해부터 크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전문 재무컨설팅 업체를 표방하고 있는 업체들은 에셋마스터·티엔브이금융컨설턴트·케이리치·팸코·포도에셋 등 10여개에 이른다. 이들의 고객은 50% 가량이 연소득 3천만~5천만원의 중산층이며, 상담을 통해 개인 라이프사이클에 맞춘 재무설계를 제공하고 있다. ■ 고객 위주 컨설팅이 관건=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업체들이 고객의 수익 극대화를 위한 객관적인 포트폴리오를 짜주기보다 자신들의 금융상품 판매에 치우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자신들과 제휴한 업체의 펀드나 보험을, 증권사는 주식 직접투자나 펀드를 권하는 경향이 강하다. 컨설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지도 않는다. 독립 컨설팅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상담해주지만 주 수입원이 보험 판매 수수료이기 때문에 보험상품 판매에 주력하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국 등 재무컨설팅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상담료를 주 수익원으로 삼는 업체들이 많다. 상담료를 받는 대신 고객 수익을 최우선시하는 컨설팅을 해주는 것이다. 한국 파이낸셜플래너(FP)협회 김인호 팀장은 “우리나라에서도 특정 금융상품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컨설팅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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