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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직장·취업

사회 33%·전기과 16% “옮겨야 산다” 이직행진

등록 2006-08-02 18:42수정 2006-12-04 11:47

두대학 두학과 취업실태 보니
사회과 졸업생 취업해도 연봉 1000~1500만원
<한겨레>는 대졸 취업의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서울 중위권 ㄱ대 사회학과와 ㄴ대 전기공학과를 선정해 조사했다. 인문사회계의 취업률은 이공계보다 일반적으로 낮아, 해당 대학의 평판을 고려해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ㄱ대의 경우도 이공계 취업률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난해 초 A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허진우(27·가명)씨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스포츠마케팅 업계에 발을 디뎠다. 직원이 10명도 안되는 작은 회사의 비정규직이었지만 치열한 경쟁을 거쳐 취업에 성공했다. 조건은 연봉 1300만원에 1년6개월 계약이었다. 그러나 사회초년생에게 실적에 따라 급여가 지급되는 스포츠마케팅 영업은 쉽지 않았다. 최근 그는 계약 종료와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다.

 <한겨레>가 조사한 2004~2005년 A대 사회학과, B대 전기공학과 졸업생들의 취업 경로는 최근 대졸자들의 취업난과 고용조건 악화 추세를 생생히 보여준다. 번듯한 직장을 잡지 못하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인문사회계 졸업자들,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을 찾아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는 메뚜기족들, 공무원이나 공사 취업으로 돌파구를 찾는 공시(공사시험)족들…. 청년실업 40만명 시대, 일자리를 찾아 헤메는 대졸자들의 힘겨운 자화상이다.

 인문사회계 취업, 비상구가 없다=이번 조사는 취업률 못지 않게 인문사회계 졸업자들의 고용의 질이 예상보다 훨씬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사회학과 취업자 33명 가운데 비정규직이 10명이었고, 몇몇 대기업 취업자들을 제외하면 연봉 2천만원 미만의 중소기업 취업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정규직이면서도 연봉이 1200만원인 경우도 있었다.

 대기업 취업자는 씨제이, 신세계, 한화유통 3명뿐이었다. 나머지 대부분은 이름 없는 무역회사, 의류회사, 리서치회사, 잡지사 등 연봉 1200만~2천만원의 중소기업 취업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학과 졸업자 정재영씨는 “사회학과 졸업자들이 리서치 회사로 많이 진출하는데 이름있는 한두 곳을 제외하면 정규직이라도 연봉 1500만원이 안되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역시 같은 학과를 나와 중소 리서치 회사에서 일하는 박연화씨는 “졸업 직후엔 대기업을 희망하던 과동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고졸과 전문대졸 직종으로 눈높이를 낮춘 경우가 많았다”면서 “여자들은 일반사무직만 뽑는 등 진로가 한정돼 비정규직만 아니면 직장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고 밝혔다.

 학원강사, 번역가, 학과조교(대학원생 아님), 사무보조원 등 비정규직들이 훨씬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음은 물론이다. 연봉 1천만~1500만원으로 단순 보조업무를 하거나 실적에 따라 급여를 받는 방식으로 1~2년 계약하는 경우가 많아 고용의 질은 최하 수준이다. 이 때문에 사회학과 졸업자들은 어떻게든 큰 회사로, 더 많은 연봉을 주는 회사로 옮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감추지 못했다. 시스템통합 업체에서 파견직 근로자로 일하는 허영필(28·가명)씨는 “일종의 개인성장 로드맵처럼 2년 뒤엔 중견기업, 5년 뒤엔 대기업 식으로 이직을 계획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나는야 취업 메뚜기족=전기공학과 졸업자로 특허사무소에 입사한 최우식(27·가명)씨는 입사한 지 반년이 안됐지만 이직을 준비 중이다. “사회에 나와서는 메뚜기족 생활을 하며 직장을 갈아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무엇보다 몸값 올리기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메뚜기족은 원래 도서관에서 자리를 맡지 못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공부하는 대학생을 일컫는 말이지만 이제는 갓 사회에 뛰어든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사회학과 출신들은 특히 회사를 자주 옮기면서 좋은 직장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았다. 김윤미(24·가명)씨의 취업 경로는 대표적인 경우다. 2004년초 졸업 직후 캐릭터 기획사에 취업했지만 월급 100만원에다 단순 보조업무만 하는 비정규직이었다. 3개월 뒤 김씨는 농민관련 단체에 비정규직 사무보조원으로 들어가 1년2개월 만에 중소 유통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데 성공했고, 연봉도 2600만원으로 올랐다. 같은 과 졸업자 박도진(28·가명)씨는 “명문대 출신이 아닌 문과 졸업생들에게 이직은 필수적인 업그레이드 과정”이라고 말했다. 학벌이 내세울 만하지 않기 때문에 경력을 바탕으로 새 직장을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밤 10시를 넘겨 퇴근하는 게 다반사지만 지금 직장에선 야근수당도 받지 못한다. “회사가 커야 임금 수준도 따라온다”고 믿는 그는 대기업 이직 문을 두드리고 있다.

 전기공학과 출신들은 한전이 인생의 목표였다. 임금 수준이 높고 안정된 데다 근로조건도 좋아 대부분의 이직 준비자들이 한전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해 졸업 후 엘지필립스엘시디에 들어갔다가 올해 한전에 입사한 김현정씨는 “남들은 부럽다고 했지만 매일 아침 8시 생산라인으로 출근해 밤 10시가 돼야 퇴근하고 한달에 두번 쉬려니 숨이 막혀 이직했다”고 말했다. 외국계 발전기회사에 다니는 배정범(27·가명)씨는 “취업하기 힘들다는 말에 지레 겁먹어 졸업 전에 교수님이 추천해준 기업에 얼른 취업한 게 후회된다”면서 “졸업 뒤 2년이 지났지만 이직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나라의 녹을 먹으리, 한국은 ‘공시 공화국’=취업 여부와 상관 없이 조사 대상자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공무원과 공기업이었다. 이직 희망자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73%가, 인문사회계 출신은 29.4%가 공기업으로 이직할 뜻을 밝혔다. 미취업자들도 마찬가지다. 사회학과 미취업자들은 대부분 7급이나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전기공학과 출신들은 한전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취업이 어려운 여자들은 일반 기업 취직을 일찌감치 접고 공무원 시험만 준비하는 ‘한우물’파가 많았다. 2년 동안의 준비 끝에 지난달 시험에 합격한 조영희(24·가명)씨는 “공무원이 가장 안정적이라서 다른 기업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공무원 시험만 준비했다”고 말했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김현진 인턴기자(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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