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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직장·취업

“직장은 하나지만, 직업은 여러 개”…퇴근하면 ‘부캐’ 활약하는 2030

등록 2022-04-14 14:21수정 2022-04-15 02:49

해주세요·긱몬 등 동네 기반 앱 통해 부업
탈잉·숨고·오라운드 등 N잡러 겨냥 서비스↑
“직장서 어리바리해도 부업에선 전문가” 만족감
저임금·비정규직 넘쳐나는 MZ세대 현실 반영도
지난해 6월 서비스를 시작한 심부름 앱 ‘해주세요’는 최근 헬퍼들의 전문성을 살린 ‘동네 전문가’ 서비스를 새롭게 시작했다. 해주세요 제공
지난해 6월 서비스를 시작한 심부름 앱 ‘해주세요’는 최근 헬퍼들의 전문성을 살린 ‘동네 전문가’ 서비스를 새롭게 시작했다. 해주세요 제공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이미리(가명·33)씨는 일주일에 3~7시간씩 ‘중국어 레슨’을 한다. 중문과를 나왔지만 직장에선 크게 쓸 일이 없었던 중국어를 동네 직장인과 대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종의 ‘부업’인 셈이다. 이씨는 “시간당 보수가 많지는 않지만, 능력을 썩히기보단 이렇게라도 활용해 돈도 벌고 자기만족도 하니 좋다”며 “지금 직장이 크게 만족스럽진 않아서 중국어를 활용한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연예인만 ‘부캐’(부캐릭터)가 있는 게 아니다. 2030도 직장 문만 나서면 ‘부캐’가 만발하는 시대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재택근무와 탄력근무가 일상화하면서 자신의 재능·취미·시간을 적절히 활용해 ‘제2의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엔(N)잡러’가 늘고 있다. 최근 법인보험대리점 리치앤코가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수도권 거주 2030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엠제트(MZ)세대 5명 중 1명이 실제 엔잡러라고 답한 것만 봐도 이런 추세를 엿볼 수 있다.

엔잡러의 주 활동무대는 ‘동네’다. 동네 생활권을 중심으로 한 ‘하이퍼로컬’ 기반 앱과 커뮤니티가 엔잡러를 적당한 일감과 연결해주는 통로다. 심부름 대행 앱 ‘해주세요’나 지역 기반 재능 거래 앱 ‘긱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밖에 생활서비스 플랫폼 ‘숨고’나 온·오프라인 클래스 플랫폼 ‘탈잉’, 배달서비스 앱 ‘배민’ 등도 엔잡러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다. 최근에는 사진·디자인 등 자신이 직접 만든 작업물로 다양한 상품을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라운드’ 등의 플랫폼도 등장했다.

주말이나 휴일에 피아노 1대1 레슨을 하는 김지경(36)씨는 “돈보다는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자아만족감을 높이기 위해 부업을 시작했다”며 “직장에선 다소 어리바리하지만, 적어도 피아노 레슨을 할 땐 전문가라는 자부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가입자 가운데 62%가 엠제트세대라는 ‘해주세요’의 조현영 대표는 “3월 거래 매출이 2월 대비 100% 상승했다. 10만명을 돌파한 헬퍼 가운데 20%는 상당한 전문성을 가져, 항목을 돌봄·간병·번역·레슨·영상 등으로 세분화한 ‘동네 전문가’ 서비스도 새롭게 시작했다”고 말했다.

엠제트세대 엔잡러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비정규직·저임금에 노출된 이들의 현실과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사무기기 판매 회사에 다니며 배달 부업을 했던 지성현(가명·29)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예 전업 라이더로 전향한 경우다. 지씨는 “한 달 실수령액이 200만원 남짓이라 월세와 생활비 등을 제하면 저축이 불가능했다. 추가 수입을 위해 원하는 시간에 일 할 수 있는 배달 부업을 시작했다”며 “지난해 11월부터는 사표를 내고 아예 전업 배달에 뛰어들었는데, 수입이 2배 가까이 늘었다. 돈이 모이면 작은 가게를 차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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