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
“주식형 펀드 투자, 길수록 손해봅니다.”
주식시장 발전의 걸림돌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게 바로 단기 투자 성향이다. 수익률을 좇아 이리저리 짧게 옮겨다니는 투자 행태를 지적하는 말이다. 하지만 투자기간이 길수록 손해를 보는 불합리한 수수료 체계 속에서 단기 성향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14일 금융감독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할 경우 수수료 부담은 총액기준으로 3년까지는 미국보다 작지만 4년을 넘기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펀드 상품을 살 때 5.4%의 수수료를 낸 뒤 다음해부터 해마다 0.23% 정도의 저렴한 판매 보수를 내지만, 한국에서는 판매 수수료는 적어도 해마다 1.5%씩 추가로 판매 보수를 떼다보니 6년째에는 미국보다 2.3% 이상 수수료 부담이 커진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오랫동안 주식형에 돈을 넣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수수료 체계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적립식 펀드 투자의 안정적 성장을 해칠 수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주식형 펀드 규모는 적립식 펀드 투자에 힘입어 지난 9월 말 현재 16조5천억원, 360만 계좌로 성장했다. 2년 반 전과 견주면 6조원 이상 늘었고, 계좌 수는 12배나 급증했다. 그만큼 소액투자자가 늘었다는 얘기다. 주로 주식에 투자하는 적립식 펀드 투자가 저금리·노령화 시대에 안정적인 노후 대비책으로 구실하려면 장기 투자 상품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데, 이런 수수료 체계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금감위는 이날 은행(72%)과 증권사(26%)가 장악하고 있는 펀드 판매 시장을 자산운용사와 보험사, 인터넷 판매 등으로 확대해, 경쟁을 통한 수수료 체계 정비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펀드가입 기간에 따른 판매 수수료의 차등 적용도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판매 보수 한도를 낮추는 등 직접적인 규제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펀드 판매회사들이 감독당국의 이런 선의만으로 수수료 정비에 선뜻 호응할 지는 의문이다. 판매 초기 투자자의 부담이 큰 판매 수수료 방식에 견줘 판매 보수 방식은 해마다 조금씩 수수료를 떼다보니 투자자가 알아채기 어려워 마케팅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조성곤 기자 c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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