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흥시장의 관심은 연말 미국 대선에 쏠려 있다. 양당 후보 지지율 변동에 주가며 환율이 민감하게 요동친다. 미 대선 후보들이 내세우는 보호무역주의 정책 때문이다. 수출 주도로 성장한 한국 시장도 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미 대선후보 첫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클린턴이 우세를 보였던 27일 한국 등 신흥시장 통화가치는 줄줄이 상승했다. 신흥시장이 클린턴을 선호하는 이유는 돌발 행동을 일삼는 트럼프의 존재가 ‘불확실성’을 키우는 탓에 위험자산 회피가 일어날 수 있어서기도 하지만, 트럼프가 클린턴보다 더 강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자유무역협정의 폐기나 재협상을 내세우고 강력한 이민자 제한 정책을 주장한다. 자유무역협정과 이민자 수용 등이 경상수지 적자를 키우고 자국민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봐서다. 트럼프보다는 정도가 약하지만 클린턴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부정적 태도 등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돌아서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확산은 금융위기 뒤 미국뿐 아니라 선진국 전반의 추세이기도 하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올해 7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주요 20개국(G20) 국가의 월평균 무역제한조치 건수는 2009년 13건에서 최근(2015년 10월 중순~2016년 5월 중순) 22건으로 크게 늘었다. 27일 나온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를 보면 1990년대에
연간 30건 꼴로 비준됐던 자유무역협정은 2011년 이후 연간 10건 정도 비준으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세계화의 수혜에서 제외된 선진국 저소득층의 불만이 저성장을 배경으로 폭발하면서 이러한 정치적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 7월 발간된 엘지(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세계화가 가속화 된 1990년대 이후 소득 상위 국가와 하위 국가의 경제적 격차가 줄었다. 1980년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군(5분위)의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국가군(1분위)의 28.6배나 됐지만 2011년에는 16.8배까지 축소됐다. 김형주 엘지경제연 연구원은 “세계화로 자본과 기술, 노동력의 국경 간 이동이 급증했고 이는 상대적으로 경쟁 열위에 놓인 선진국 기업의 파산과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이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라는 점은 이와 부합한다. 영국의 브렉시트 지지자들도 이 계층이다.
결국 미국 대선은 그동안 선진국들의 기저에 깔려 있던 보호무역주의를 표면으로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트럼프의 몇몇 정책은 공화당 기조와도 어긋나, 그가 당선되더라도 보호무역주의가 극단적으로 전개되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이미 지난 8월 한국 철강 수출의 13%를 차지하는 미국이 한국산 열연강판에 대해 최고 61%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는 등 보호무역주의의 타격은 피부로 와닿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김 연구원은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높인다고 해서 미국이나 영국의 제조업이 살아나고 관련 일자리가 늘어날 수 없다는 점은 선진국 정책 당국자들도 잘 알고 있다. 속도 조절은 불가피하겠지만 세계화 흐름 자체를 되돌릴 가능성은 적다”고 짚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