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로보 어드바이저’ 잇단 도입
자산 규모, 투자 성향, 연령 등 고려
개인 맞춤형 자산 포트폴리오 제시
최소투자금·수수료 낮춰 고객 유인
저금리시대 새로운 투자유형 주목
젊은 중산층 신규고객 유입 기대
자산 규모, 투자 성향, 연령 등 고려
개인 맞춤형 자산 포트폴리오 제시
최소투자금·수수료 낮춰 고객 유인
저금리시대 새로운 투자유형 주목
젊은 중산층 신규고객 유입 기대
‘1억원 이상 자산가나 받을 수 있던 자산관리 서비스를 500만원을 운용하는 일반투자자도 받을 수 있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로보 어드바이저’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로봇을 의미하는 ‘로보’(robo)와 자문 전문가를 의미하는 ‘어드바이저’(advisor)가 합쳐진 말로, 개별 투자자의 투자성향에 맞춘 자동화된 자산관리 서비스 프로그램이다. 지금도 위험·중립·안정추구형 등 3단계로 분류한 자산 배분 시뮬레이션을 제공하는 증권사도 있지만, 100명이면 100명의 투자성향에 맞춰 각기 다른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도입은 처음 있는 일이다.
증권업계에선 케이디비(KDB)대우증권이 쿼터백·디셈버앤컴퍼니 등 국내 핀테크 업체는 물론 홍콩 프리베서비스코리아 등 국외 업체들과 업무협약(MOU)을 맺으며 이르면 내년 1월 중 로보 어드바이저를 도입할 예정이고, 엔에이치(NH)투자증권도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달 28일부터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현대증권도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윤경은 사장이 직접 로보 어드바이저 도입을 선언했고, 미래에셋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대형 증권사들과 삼성자산운용·미래에셋자산운용 등 운용사들도 도입을 검토중이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목표 수익률과 감수할 수 있는 손실률, 나이, 투자 자산규모뿐 아니라 ‘보유주식의 가격이 25% 떨어졌다면 주식을 당장 팔겠는가, 오히려 추가로 사겠는가’ 등의 질문으로 투자자의 위험 감당 수준을 측정한다. 여기에 기업과 시장 상황, 각각의 금융상품에 대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체적 상품명까지 적시한 자산배분 포트폴리오를 제시한다.
로보 어드바이저가 크게 주목을 받은 건 미국이 먼저였다. 미국 시장에서 로보 어드바이저가 관리하는 돈은 2014년 4월 115억달러에서 올해 7월 210억달러로 급증했다. 17조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미국 자산관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로 아직 미미한 규모다. 그러나 미국계 컨설팅 회사인 에이티커니(A.T Kearney)는 로보 어드바이저의 관리자산이 2020년엔 2조2000억달러, 점유율은 5.6%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한다.
로보 어드바이저 시장의 급성장은 저금리 환경을 등에 업은 덕이다. 고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예금 금리보다 조금 높은’ 수익이라도 얻겠다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기존 자산관리 서비스는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데다 연 1% 이상의 수수료를 지급해야 했다. 반면 로보 어드바이저는 인건비를 낮춰 수수료를 0~0.5%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최소투자금 기준을 없애는 등 문턱을 낮췄다.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중산층 투자자들한테는 매력적인 유인이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로보 어드바이저가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우희성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저금리에 자산관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상황은 미국과 동일한데다, 한국 운용사들은 단기 실적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장기투자를 원하는 투자자들은 사람보다 프로그램을 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지금까지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젊은층 신규 고객의 유입을 기대하고 있다. 서비스를 준비중인 업체들은 최소 관리금액 500만원, 수수료는 0~0.5% 수준을 계획 중이다. 현재 1%대인 랩어카운트(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 상품) 수수료보다 저렴하다.
이 자동관리 프로그램에 내 돈을 믿고 맡겨도 될까? 업계에서는 로보 어드바이저가 개별 금융사보다 방대한 데이터로 알고리즘을 구축한 것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아직 성과가 충분히 검증되지는 않았다는 의견이 많다. 애초 로보 어드바이저는 개개인의 투자성향에 맞춘 전략을 제시하는 만큼 성과의 기준을 설정하기도 어렵다. 2010년 이후 본격화한 프로그램이어서 대세 하락장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도 약점이다. 금융위기와 같은 급박한 상황, 시장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변수를 과연 프로그램이 대처할 수 있겠는가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로보 어드바이저 개발사인 ‘쿼터백’의 조금택 이사는 “위기 상황에서 사람보다 프로그램이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정량적 데이터뿐 아니라 애널리스트의 전망 등 정성적 데이터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기존 자산관리 인력과 업무가 겹치면서 결국 일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너무 앞선 걱정’이라는 평가다. 기존 인력들은 고액자산가 관리에 집중하고 로보 어드바이저는 신규 소액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 엔에이치투자증권은 자산규모 3000만원까지만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받도록 하고 그 이상은 지금처럼 지점에서 상담을 받게 할 방침이다. 그렇다고 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인 케이비(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부유층 고객 중에서도 35살 미만의 젊은 고객들은 로보 어드바이저 이용률이 17%로 높고 상대적으로 경력이 짧은 투자자문가들이 로보 어드바이저에게 고객을 빼앗긴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로봇이 제시한 포트폴리오 결과물. 쿼터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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