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흐름읽기
주목해야 할 변수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유가. 12월초에 배럴당 40달러가 무너진 후 닷새 만에 13%가 추가 하락했다. 두 번째는 신흥국 통화. 멕시코, 남아공, 러시아 통화 가치가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둘 다 미국 금리 인상이 원인이었다. 금리 인상이 확실시되면서 달러가 강해지자 신흥국 통화는 반대로 약해졌다. 달러가 오른 만큼 유가가 하락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금리 인상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유가와 신흥국 통화 약세가 계속된다면, 금리 인상이 문제가 아니라 경제에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
이미 가능성의 일부가 나타나고 있다. 달러 인덱스와 신흥국 통화는 대부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달러 인덱스가 강세일 때 신흥국 통화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최근 그 관계가 바뀌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 부양책으로 유로화가 강세가 되면서 달러 인덱스가 하락했지만, 신흥국 통화는 여전히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환율은 자국 통화와 타국 통화간 교환 비율이다. 선진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가 하락했다고 해도 신흥국 통화가 꼭 강세가 돼야 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달러 인덱스 하락과 신흥국 통화 약세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통화가 약세가 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신흥국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증거가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안도 랠리가 나타난다 해도 신흥국은 수혜의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
유가 하락으로 신흥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당수 국가가 원자재를 수입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산유국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줄어들 경우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상황이 더 심해지면 위기로 발전한다. 금융위기를 포함해 지난 십여년간 발생한 위기의 원인은 대부분 부채였다. 미국에서는 부동산이 매개가 된 민간 부채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유럽에서는 재정 악화로 인한 국가 부채 문제가 터졌다. 앞으로 신흥국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기업 부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조사를 보면, 신흥국 비은행 부문이 미국 달러로 차입한 돈이 2008년 6조달러에서 2014년말에 9조4600억원으로 58% 늘어났다. 이중 상당 부분이 자원 생산 기업에 투자됐는데, 원자재 가격이 약세를 면치 못할 경우 기업이 도산할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정부가 도산보다 자금 지원을 택하기 때문에 기업 부채가 국가 부채로 바뀌는 과정이 나타난다.
미국 금리 인상 이후에도 상황이 안정되지 못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금리 인상이 미치는 영향은 주가에 국한되지 않는 것 같다.
이종우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유가(WTI)와 멕시코 페소화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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