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흐름읽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신흥국은 신흥국대로 편안한 곳이 없을 정도다. 주요 신흥국 통화가 과거 외환 위기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상 가장 낮은 환율을 기록하고 있는 곳도 상당수 있다.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를 풀어 환율 약세를 막고 있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보다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국가가 늘어 환율 변동을 흡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외환보유고도 확충돼 위기에 대한 내성이 생겼지만 아직 상황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선진국은 주가의 대세 상승이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에스앤피 500(S&P 500) 지수가 고점 대비 12% 하락했다. 2009년 대세 상승이 시작된 이후 이 정도 조정이 있었던 건 2011년이 유일하다. 당시 하락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부채한도 협상 지연이란 재료 때문에 발생한 반면 지금은 경기 둔화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가 된다. 주가 하락으로 미국 시장이 2009년 이후 계속돼 온 상승 추세대를 이탈했다. 빠른 시간 내에 추세대로 복귀하지 못하거나, 추가 하락해 전저점 밑으로 내려갈 경우 대세 상승의 유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유럽은 미국 시장과 또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이다. 작년 11월 양적 완화를 계기로 주가가 8800에서 1만2000까지 38% 상승했다가 지금은 출발점 수준으로 다시 내려왔다. 유동성에 의해 주가가 급등한 후 이를 유지하지 못하고 재차 하락하는 대세 상승 마지막 모습이 독일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장도 유사한 흐름을 보인 적이 있다. 2007년 5월부터 다섯 달 동안 50조 넘게 유입된 주식형 펀드를 기반으로 주가가 1500에서 2050까지 올랐다. 그리고 고점에서 공방을 벌인 뒤 하락하면서 대세 상승이 마무리됐다.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유럽시장도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독일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와 기업 실적이 주가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1년 뒤 미국 기업의 이익 전망치가 지금보다 크게 늘어나지 않을 걸로 예상되고 있다. 영국은 2012년 이후 예상치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 독일은 전망치가 나아지고 있지만 폭이 크지 않아 의미를 부여할 정도가 아니다. 일본만 높은 이익 증가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들 역시 2013년 이전에 비해서는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 상황이 유럽의 재정 위기를 거쳐 신흥국 환율로 옮겨오고 있다. 선진국 주가 하락이 대세 상승을 끝내는 과정이라면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당분간 세계 금융시장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지 않는 상황이 계속될 걸로 전망된다.
이종우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선진국은 주가, 신흥국은 환율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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