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흐름읽기
국내외 경제가 기대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1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0.7%를 기록했다. 폭설로 인해 소비지출이 줄고, 달러 강세 때문에 수출 기업들의 채산성이 나빠진 게 원인이었다. 일본과 유럽의 성장률이 미국보다 높아졌지만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섰는지 확신할 수 없다. 국내 경제도 상반기 회복 전망이 무색할 정도로 약세였다. 수출이 10% 넘게 줄었고, 산업활동 지표가 한 달도 상승세를 유지하지 못한 채 다시 하락했다. 지난 3월 코스피 지수가 박스권을 뚫었음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내지 못한 게 이유가 있었다.
상반기 경기 둔화의 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주가가 달라진다.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우선 경기 둔화가 속도 조절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다. 주가는 경제지표가 좋지 않은 동안 횡보하다가 빠르게 상승 전환할 것이다. 2005년에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2002년 우리 경제는 대우사태와 아이티(IT) 버블 붕괴의 충격을 딛고 6%대 성장을 회복했지만, 2004년 4분기부터 다시 약해져 1년간 2%대 성장에 머문다. 경제 성장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였다. 이 국면이 끝난 뒤 금융위기 직전까지 성장률이 다시 5%대로 높아졌는데, 주가는 경기 조절 기간에 800~1000 사이에 머물다, 2005년 중반부터 재상승해 1300이 됐다.
상반기 내내 미국 주식시장이 고점 부근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국내도 비슷한데, 경제 변수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주가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국내외 경제가 속도 조절에 들어간 때문인데, 경기가 조만간 회복될 거란 기대가 주가 하락을 저지하는 힘이 되고 있다.
상반기 경기 둔화가 경기 회복이 마무리되면서 나타난 경우일 수도 있다. 문제가 심각해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주가가 낮아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보유량을 줄여야 한다. 이런 경제 흐름은 민간 부문이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나타난다. 미국의 임금 상승률이 2%를 밑돌고 있다. 유럽은 더 낮아서 1%가 안되며, 우리나라도 사정이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비가 늘어날 수 없다. 기업의 투자 활동이 위축된 상태에서 소비마저 줄어든다면 경기가 빠른 속도로 둔화되는 걸 막기 힘들다.
아직까지는 경기 둔화의 원인이 속도 조절에 있는 것 같다. 상반기 국내외 경기 부진에는 일회성 요인의 역할이 컸다. 미국의 기후 변화와 우리나라의 환율 영향이 거기에 해당한다. 둔화 요인이 일회성인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영향력이 약해질 것이다. 수요가 크게 줄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경기의 추가 둔화를 가정하는 건 적절치 않다. 경제가 둔화된 게 사실이지만 판이 깨질 정도는 아니다.
이종우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미국과 한국의 경제성장률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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