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흐름읽기
주식시장은 이벤트와 본질 두 부분에 의해 움직인다.
유럽 재정위기는 이벤트다. 끊임없이 새로운 내용이 제공되기 때문에 시장이 온통 유럽 재정위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본질은 아니다. 시장이 이벤트에 대한 적응력을 어지간히 키웠다. 이달 중순에 주가를 누를 만한 악재가 연이어 나왔는데도 힘없이 밀리지 않을 정도까지 됐다.
이벤트에 대한 적응력이 커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사건 자체가 갈팡질팡해서다. 유럽 재정위기를 둘러싼 전망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데 어느 날은 국제 공조에 의해 안정국면에 들어갔다고 했다가 다음날에는 공조가 쉽지 않아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식이다. 이벤트로 주가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주가에 맞춰 이벤트를 재해석하는 셈이다.
두번째는 사안이 너무 오래 노출됐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신청한 뒤 1년 이상이 지났고, 추가 지원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도 3개월 이상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이 정도면 나올 만한 악재가 한번쯤 다 출현할 수 있는 시간인데, 주가는 새로운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겪어본 일은 무심하게 반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우리에게 너무 먼 사안인 이유도 있다. 그리스가 부도처리되더라도 1차 영향은 유럽에 한정될 수밖에 없으며, 경기 둔화에 의한 2차 영향이 우리나라에 올 때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한다. 이런 인식은 주가에 이미 나타나고 있는데 유럽 주가는 여러 차례 저점을 경신한 반면 미국과 국내 시장은 8월 중순의 바닥을 밑돌지 않고 있다.
시장의 본질은 선진국 경기 둔화다. 미국 경제가 핵심이고, 유럽은 재정위기의 진행 상황이 아니라 위기에 따라나오는 경제의 위축 정도가 본질이 된다. 선진국 경제가 악화일로에 있으므로 시장의 본질은 좋지 않다. 상반기 미국 경제 성장률이 0.7%에 그쳤고, 유럽은 0%대 초반이다. 하반기에 뚜렷하게 개선될 모멘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당분간 답답한 양상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거시 지표가 이렇다 보니 국내외 기업실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데 7월 초에 비해 이익 전망치가 10% 이상 낮아졌고, 4분기 역시 같은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중 이익 개선이 힘들다는 의미다.
시장을 판단할 때 본질과 이벤트를 혼동하면 안 된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는 지금 본질이 나쁘고 이를 개선할 마땅한 방법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는 계기였다.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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