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경기 침체와 금융위기 여파로 기업의 주가가 하락하자 재벌 일가와 기업 CEO, 또는 기업이 직접 자사주를 사들이며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 오너 입장에서는 최근 악화된 주식시장에서 자사주를 싸게 매입, 손쉽게 지분을 확대하고 경영권을 안정시킬 수 있어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은 지난 7월15~22일 신세계 주식 5만6천500주를 장내 매입했다. 평균 취득 단가는 49만6천원으로 매입금액은 총 280억원에 달했다. 자사주 매입으로 이 회장의 지분은 종전 16.18%에서 16.48%로 늘었다.
이 회장은 지난해 7월에도 주당 61만8천원에 총 997억원을 들여 16만1천353주를 장내 매입하며 지분을 0.85% 늘린 바 있다.
이 회장의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대해 일각에서는 자녀에게 주식을 증여한 뒤 줄어든 지분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자사주 구입 시기가 신세계 주식이 하락세를 보인 시점이었고 주식 매입 후 주가가 크게 올랐다.
SK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도 최근 주가가 회사의 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는 판단으로 자사주를 매입에 나섰다.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은 올해 SK에너지 주식 2천500주를 사들여 현재 8천180주를 갖고 있다.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의 박영호 사장도 올해 SK㈜ 주식 1천600주를 매입해 현재 4천194주를 보유중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경영하는 회사의 미래성장 가능성이 큰 데 비해 주가가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자사주를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 박정원 사장은 9일 장내 매수를 통해 주식 5천230주를 취득했다.
한진해운은 "최근 주가 하락폭이 과도한데다 실적을 감안할 때 저평가됐다고 판단해 박 사장이 직접 매수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 강주안 사장도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보고 17일 1만주를 장내 매수했다. 강 사장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6천주를 포함해 총 1만6천주를 갖고 있다.
부자 간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적이 있는 동아제약의 경우 강신호 회장 부자가 3월께 2천153주를 매입했으며, 회사 차원에서도 7월 이후 43만5천여주를 주문해 10만주를 매입했다.
하나투어의 권희석 사장은 지난달 자사 주식 6억원어치를 샀다. 권 사장은 10만원대를 호가하던 자사 주식이 최근 여행 경기 침체로 반토막이 났지만 장기적인 전망은 양호하다는 자신감을 대내외에 보이기 위해 주식 매입을 결정했다. 이에 하나투어 자체적으로도 최근 50억원 규모의 자사주 신탁을 통해 주식 매입을 결정하는 등 기업 가치 보호에 나섰다.
건설업계 CEO들도 자사주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자금 위기설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코오롱건설의 김종근 사장은 지난 3일부터 총 3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순차적으로 매입하며 주가 회복에 나섰다.
코오롱건설은 김 사장이 최근 증시에 퍼진 자금 위기설을 잠재우고, 회사의 주가가 저평가 돼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역시 자금 위기설이 돌았던 경남기업의 성완종 회장도 지난 8월부터 이달 초까지 '주가 부양'을 목적으로 총 36만5천주를 주당 9천931~1만9천921원에 매입했다. 성 회장은 최근 주가 하락을 지분율을 높이는 기회로 삼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현재 보유 지분율이 21.47%로 높아졌다.
이 밖에도 금호산업 신훈 부회장과 이연구 건설부문 사장이 지난 8일 각각 1천840주와 1만주를 매입해 주가 살리기에 나섰고,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도 조정장을 틈타 최근 4천470주를 매입해 지분을 16.51%로 늘렸다.
회사 차원에서 직접 자사주 매입에 나선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7월 주식시장에 자사주 매각설이 돌면서 주가가 하락하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인 바 있다.
현대중공업도 올해 2∼5월 자사주 228만주를 추가로 취득했다. 주가를 안정시키고 주주가치를 높일 목적으로 실시된 자사주 매입으로 현대중공업의 자기주식 비율은 18.0%에서 21.0%로 올라갔다.
삼성중공업도 지난 6월 840억원 상당의 자사주 200만주를 매입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인수 당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주가가 3만2천원을 밑돌 경우 주식을 되사주겠다는 '풋백옵션'을 내걸었다.
하지만 최근 대우건설 주가는 2만원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회사측은 주가부양을 위해 올 상반기 1천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1천억원의 자사주를 추가 매입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 3월에는 향후 5년간 1조원 상당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웅제약은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주가 안정 차원에서 총 130억 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한미약품의 계열사 한미IT는 8월 말 이후 한미약품 주식 3만4천437주를 사들였다.
이밖에 온라인 종합쇼핑몰인 디앤샵은 주가 안정을 위해 대우증권과 2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 취득 신탁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은 이날부터 2009년 3월 16일까지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임직원들이 자사의 기업가치 보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2만주 상당을 매입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최근 불안한 대내외 경기 및 악성 루머 등으로 대우인터내셔널의 가치가 저평가됐다는 점을 임직원이 공감한 데 따른 것으로 윤병은 대표이사를 비롯해 임직원들이 원하는 수량만큼 매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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