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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증권

‘유가 100달러 악몽’ 길어질 듯

등록 2008-02-24 21:47

국제 유가와 코스피지수 추이
국제 유가와 코스피지수 추이
[이종우의 흐름읽기]
느리지만 꾸준하게 기업이익 잠식…자동차·항공사 큰 타격
서울 동대문에만 야구장과 축구장이 있었던 1970년대 시절, 야간 경기가 열리지 못했다면 이해가 될까?

석유를 아끼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아무리 없이 살아도 그렇지, 국가 전체로 운동장 불 한번 켜는 게 얼마나 절약이 된다고 그 궁상인가 싶겠지만 과거에는 정말 그랬다. 그나마 불을 켤 수 있었던 것도 대통령배 국제 축구대회가 열릴 즈음이었다.

1997년에 영국의 한 경제지가 앞으로 국제 유가가 5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석유를 싸게 생산하는 중동의 채굴 비용이 배럴당 3달러 정도인데, 거기에 적정 마진을 더해도 5달러면 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기사를 썼던 기자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2004년에 골드만삭스에서 유가가 105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유가가 오르다 보니 별 희한한 전망도 다 있구나 했는데, 지금 보면 용기있는 전망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들락날락하고 있다. 최초 기록이다 보니 가뜩이나 경기 둔화로 움추려 있는 주식시장이 요동을 쳤다.

유가 상승이 주식시장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틀림없다. 우리는 석유를 전액 수입하는 국가여서 국제 유가 상승을 제품 가격에 반영시킬 수 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순차적으로 수요가 둔화되면서 기업 수익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거시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 물가가 올라가는 초기에는 제품 가격이 덩달아 높아져 기업 이익이 좋아질 수 있지만, 이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정부는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막을 수 밖에 없다. 간접적인 형태로 유가 상승이 주식시장에 타격을 주는 것이다.

유가 상승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가늘고 길게 나타난다. 물가 상승이 실질소득 감소와 소비 둔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주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주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가는 것처럼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외에는 다시 시장의 관심권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물가가 시장의 근본을 형성하기 때문에 앞으로 기업 이익을 꾸준히 잠식할 것이라는 점이다. 시장이 경기 둔화와 함께 물가 상승이라는 악재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됐는데, 상당히 불리한 상황 변화로 봐야 한다.

유가 상승으로 수혜를 볼 수 있는 업종은 정유업 정도다. 정유업은 석유를 사다가 정제해서 적정 마진을 붙여 되파는 영업을 하기 때문에 유가가 올라도 별 타격을 받지 않는다. 유가가 오르던 지난 4년간 정유사들이 막대한 이익과 함께 높은 주가 상승을 기록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석유 소비와 직결된 업종은 심한 타격을 받는다. 자동차의 경우 유가가 높아지면 자동차 구입이 줄거나 비용이 적게 드는 소형차로 수요가 이동하기 때문에 해당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진다. 갑갑하기는 항공회사도 마찬가지다. 항공업의 특성상 엄청난 기름을 사용하는데, 유가 인상을 요금에 반영하려면 당국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다소간 시간이 걸린다.

지난해까지는 유가와 주가가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유가 상승이 경기가 좋아진 이머징 마켓의 수요 증가를 반영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높은 유가가 계속될 경우, 그 여파는 소비와 금리 등 여러 부분으로 확산될 수 밖에 없다. 달갑지 않은 현실이다.

이종우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jwlee@iprov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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