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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증권

눈앞 실적 ‘허덕’…규모 뛰는데 운용은 걸음마

등록 2007-09-03 19:11수정 2007-09-03 19:24

펀드매니저 인력 현황
펀드매니저 인력 현황
펀드 ‘100조원 시대’ 열렸지만…
상담시간 부족하고 전문성 없어 가입 고객만 피해
단기수익률 잣대 편입종목 교체…평가시장 키워야

 직장인 여성 김수연(32)씨는 지난 3월 적립식펀드 5개를 들었지만, 최근 ‘어떤 펀드에 가입했냐’는 친구의 질문을 받고 당혹감에 빠졌다. 운용사는 알고 있지만, 정작 펀드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김씨는 “많은 돈이 들어가지도 않고, 장기 투자를 해야 수익이 좋다고 해서 가입 이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며 “그러나 여러 종류의 펀드가 있고, 수익률도 천차만별이라 은행 직원말만 믿고 가입한 것이 잘한 일인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불완전 판매 여전=펀드 불완전 판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30일 기자가 서울 여의도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상담을 받아보니, 창구 직원은 과거 수익률만 강조하며 특정 펀드를 추천했다. 그는 “과거 수익률이 좋다고 앞으로도 좋다는 보장은 없지만, 과거에 실적이 나빴던 것보단 낫지 않겠나”라며 “여러가지를 따지면 머리만 복잡해진다”고 했다. 인터넷에 공개된 투자설명서까지 펀드에 가입해야 보여줄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실제 자산운용협회가 집계한 불완전 판매 민원 접수 건수는 지난 2분기에만 95건에 이르렀다. 상품 설명 부주의가 20건이 넘었고, 무자격자가 펀드를 판매해 말썽을 빚은 사례도 있었다.

펀드 상담이 모두 부실하지는 않다. 고액 자산가만 이용하는 은행·증권사의 프라이빗뱅킹(PB) 센터에선 상담이 충분히 이뤄진다. 펀드 판매사 중 가장 많은 적립식펀드를 팔고 있는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PB센터에선 최소 1시간 이상 상담을 받을 수 있어서 펀드 가입 이후 불필요한 오해로 고객과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민들이 주로 찾는 일반 영업점에선 사정이 다르다. 정확한 현황 조사 결과는 없지만, 상담에 소요되는 시간이 30분이 넘는 경우는 없다는 지적에 대해 판매사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직장인이 주로 영업점을 찾는 시간대인 정오부터 오후 2시 사이엔 밀려드는 고객들로 상담 시간은 더욱 짧아진다. 제대로 된 상담이 이뤄지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판매사들이 판매 보수만 챙기는 데 급급하다는 고객들의 불만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게다가 예금상품과 함께 같은 창구에서 펀드를 팔고 있는 은행권은 더 심각하다. 펀드는 원금손실 가능 상품인데도, 창구가 분리돼 있지 않다보니 오해가 종종 빚어진다. 정갑재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국 부국장은 “불완전 판매를 줄이기 위해선 펀드 판매 전용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며 “그러나 비용이나 인력 등 현실적 어려움으로 은행들이 전용 창구 마련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대표 시중은행 중 펀드 판매 전용창구가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판매 인력의 전문성도 도마에 오른다. 펀드 판매사들은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펀드 판매 인력의 전문성 강화에 주력하고 있지만, 고객들이 피부로 느낄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대표는 “여전히 일선 창구에선 과거 수익률만 제시하면서 특정 상품을 추천한다”며 “우리보다 앞서 펀드 시장이 발달된 미국 등 선진국에선 보기 힘든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판매 인력들은 주가수익비율(PER)과 같은 기본 개념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경우도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단기 수익률 쫓는 펀드 매니저=펀드 운용시장도 갈 길이 멀다. 주가 급등락기에 리서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직접투자보다 적립식 펀드 등 간접투자를 추전한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장기 투자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실제 펀드 운용은 이런 ‘상식’과는 달리 이뤄진다. 3∼6개월 정도 단기 수익률이 나쁘면 금세 투자 포트폴리오를 변경하고, 이런 매니저가 능력있다고 취급되는 게 현실이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전무는 “매니저들이 처음엔 환상적인 포트폴리오를 짰더라도 단기 수익률이 나빠지면 포트폴리오를 바꾼다”며 “단기수익률을 잣대로 회사 오너들이나 관계 판매사에서 매니저에게 대책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기투자란 관점에서 매니저들이 소신을 갖고 포트폴리오를 끌고가기 어려운 환경이란 지적이다. 2000년대 초반 가치주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장기 수익률이 좋아 명성이 높던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한 스타 매니저는 이후 한 국내 운용사로 자리를 옮긴 뒤 얼마 되지 않아 단기 수익률 저조 등을 이유로 해고된 사례는 현재도 펀드 매니저들 사이에 자주 거론된다.

포트폴리오 변경으로 장기 수익률이 저조한 사례론 ‘프레스티지코리아테크 펀드’가 대표적이다. 이 펀드는 정보기술(IT)주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였지만, 지난해 성과가 좋았던 대형주의 편입 비중을 뒤늦게 늘렸다가 손해를 봤다. 이 펀드의 2년 수익률은 34.28%로, 같은 유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81.15%)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허진영 제로인 애널리스트는 “장기 투자에선 펀드 색깔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실정이다보니 펀드매니저 인력 시장은 유동성이 매우 높다. 금감원 자료를 보면, 국내 펀드 매니저가 한 회사에서 재직하는 평균 기간은 2.5년에 불과했다. 그만큼 자주 회사를 바꾼다는 것이다. 김정아 자산운용협회 실장은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어서 기회만 생기면 좀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다른 운용사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상길 제로인 상무는 “운용사들이 자체 인력을 키우기보단 다른 회사 매니저를 스카웃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현실은 펀드 가입자에게 불신감을 주는 요인이다. 정갑재 금감원 부국장은 “높은 인력 유동성은 결국 고객들의 혼란을 부추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금감원과 자산운용협회 등은 펀드 매니저 윤리강령을 손질해 빈번한 이직 현상을 완화시킬 예정이지만, 실효성은 장담하기 힘든 실정이다.

대안은 어디에?=불완전 판매와 기형적인 운용시장을 정상화하는 길은 없을까? 금융감독당국과 업계도 자체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한 예로 금감원은 외부기관을 통해 펀드 판매사를 평가하는 ‘펀드 판매회사 평가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도 펀드 매니저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윤리성 제고도 모색 중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단기 실적만 좇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는 백약무효라는 것이다. 우재룡 대표는 “불완전 판매는 판매 인력의 부족한 전문성이나 비성실성보다는 단기 실적을 재촉하는 환경에 원인이 있다”며 “오히려 판매 인력은 이런 환경에 내몰린 피해자”라고 꼬집었다. 우 대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고객들이 펀드에 가입하기보다는, 주식과 펀드의 장점이 합쳐진 상장지수펀드(ETF)를 활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펀드 판매사와 운용을 모두 감시할 수 있는 펀드 평가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계웅 굿모닝신한증권 펀드애널리스트는 “펀드 수도 늘고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펀드 평가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펀드평가사들의 규모는 확고한 수익모델을 갖고 있지 않아 영세하다”고 평가했다. 최상길 상무도 “미국의 대표적 펀드평가사인 ‘모닝스타’는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별점’으로 보여주면서 투자자들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며 “펀드평가시장이 더 발전하려면 투자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표를 계발하고, 펀드 평가 정보를 대중들에게 보다 많이 제공할 수 있는 판로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락 양선아 기자 sp96@hani.co.kr


매니저, 양보다 질이다

 펀드매니저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나온다. 펀드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데 반해, 펀드매니저 수가 뒤따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관련 업계나 금융감독당국, 그리고 전문가들은 이런 지적에 고개를 흔든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7월9일 현재 793명의 매니저가 8782개 펀드를 운용 중이다. 운용 규모는 순자산액을 기준으로 285조원이다. 펀드매니저 1명 당 평균 11개 펀드(3594억원)을 운용하고 있는 꼴이다. 김신 금융감독원 자산운용총괄팀 선임조사역은 “피델리티의 경우 매니저 한 명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가 1조원이 넘는다”며 “매니저 제도가 달라서 동일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양적 측면에서 매니저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기에 허수도 끼어있다. 전체 펀드 수엔 부실로 청산을 앞두고 있는 펀드까지 포함돼 있어 실제 매니저가 운용하는 펀드의 수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매니저 한 명당 가장 많은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아이투신운용의 박준식 상품기획팀장은 “부실펀드나 채권형펀드처럼 매니저가 손을 대지 않고 있거나 거의 관여를 하지 않는 펀드가 많다”며 “자주 포트폴리오를 점검해야 하는 주식형 펀드의 매니저는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양보다 질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최상길 제로인 상무는 “외국계 운용사는 시장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와 포트폴리오를 짜는 펀드매니저가 정확히 구분돼 있다”며 “반면 우리의 경우 대부분 운용사에서 매니저들이 애널리스트가 해야할 몫까지 다 하고 있어 본업에 집중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자산운용협회에 등록된 51개 자산운용사 중 조사부(리서치부)를 별개로 두고 있는 곳은 10개 안팎에 불과했다.

국외투자펀드 운용의 전문성은 특히 취약하다. 29일 현재 국외투자펀드의 순자산 규모는 59조원에 이르지만, 대부분의 국외투자펀드는 국내 운용사가 아니라 외국계 운용사에 위탁 운용되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의 김재근 애널리스트는 “설정잔고 기준으로 국외투자펀드의 절반 이상이 위탁 운용되고 있다”며 “자칫 외국 운용사의 판매창구로 국내 펀드 시장이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밖에도 매니저를 지원해주는 인력 부족도 개선해야 할 과제다. 최윤재 자산운용협회 연수원장은 “복리후생와 사회적 대우가 펀드매니저보다 뒤떨어지다보니, 기준가 산정 등 후선 업무 인력이 태부족”이라며 “펀드시장 확대를 앞두고 매니저의 질을 높이는 작업과 함께 매니저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보다 튼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따라 금융감독당국과 업계는 펀드 매니저의 질적 향상을 위해 △매니저 자격 시험에서 특별자산과 실물자산 등에 대한 내용을 보강하고 △국외투자펀드 운용 능력 강화를 위해 국외투자 연수과정을 확충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이밖에도 △펀드 운용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행위에 대한 판단기준으로 활용토록 하기 위해 매니저 윤리강령을 대폭 손질하고 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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