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공개 반대입장 천명..재경부에 반기들어
한국은행이 증권사의 소액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일명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자통법은 재정경제부가 마련한 법안으로 중앙은행인 한은이 사실상 재경부에 공식 반기를 든 것으로 해석된다.
한은은 10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은행의 고유권한인 지급결제 업무를 증권사에까지 허용하면 결제 시스템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권 뿐 아니라 정치권 내에서 수개월째 계속돼온 공방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온 한은이 갑자기 말문을 연 것은 `지급결제 허용'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여론의 흐름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다급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통법은 국회 재경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돼 있다. 재경위는 오는 12일 공청회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법안을 본격 심의할 예정이다.
앞서 한은은 지난해 10월 입안 당시 재경부의 의견 요청에 비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전달했으나 정부가 한은의 의견을 거의 반영하지 않은 채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 사실상 한은의 의견을 `묵살'하면서 중앙은행의 자존심을 건드린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증권사 소액지급결제 허용 업무를 반대하는 이유로 결제시스템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자통법은 증권계좌의 고객예탁금도 은행계좌와 동일하게 직접 카드결제, 송금, 은행 ATM 출금 등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즉 고객들이 증권계좌를 통해 보험료나 전기료, 학원수강료 등을 납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증권사가 사실상 예금수취기관과 기능이 같아지는 셈이다.
이 같은 소액지급 결제는 대량의 소액거래를 당일 상계처리하고 남은 차액을 특정시간에 은행들이 정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최대 하루 동안 은행간 신용공여가 발생한다. 한은은 "증권사의 재무건전성 취약 등으로 결제를 예정대로 하지 못할 경우 결제 리스크가 존재하며 그 효과는 연쇄적으로 파급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은은 특히 이러한 결제 리스크 때문에 세계적으로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강조했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한 나라들도 5~10년간의 장기간 논의를 거쳐 도입했다"면서 "금융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일인 만큼 법 제정 이전에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이 반대하는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지급준비율 문제. 은행과 달리 증권사들은 지급준비율 적립 의무가 없어 금리경쟁에 유리한데 여기에 지급결제 서비스까지 갖추게 되면 은행자금이 대거 증권사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고금리를 앞세운 증권사 자금관리계좌(CMA)로 은행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점도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이 경우 은행들은 지급준비금 제도를 폐지하거나 지준율 인하 요구가 높아지면서 현행 지준제도의 근간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게 한은의 논리다. 한은의 최재현 금융결제국장은 "증권사가 지급결제 업무를 하려면 은행과 유사한 수준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불공정거래 요인이 허용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와 증권업계는 "금융투자자의 편익을 증진하는 차원에서 지급결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법안 처리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고객이 은행에 돈을 맡기면 돈의 소유권은 은행으로 넘어가지만, 증권사에 맡기면 고객 돈으로 남는다"면서 "따라서 증권사가 파산할 경우 고객 돈은 파산재단에 들어가지 않고 안전하게 보관되는 반면 은행이 망하면 고객은 채권자로 전환돼 리스크는 은행이 더 크다"고 반박했다. 한국증권업협회는 최근 건의문을 통해 "은행의 체크카드처럼 이미 확보된 현금 내에서 자금이체가 이뤄지기 때문에 지급결제 시스템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재영 박대한 기자 fusionjc@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 같은 소액지급 결제는 대량의 소액거래를 당일 상계처리하고 남은 차액을 특정시간에 은행들이 정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최대 하루 동안 은행간 신용공여가 발생한다. 한은은 "증권사의 재무건전성 취약 등으로 결제를 예정대로 하지 못할 경우 결제 리스크가 존재하며 그 효과는 연쇄적으로 파급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은은 특히 이러한 결제 리스크 때문에 세계적으로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강조했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한 나라들도 5~10년간의 장기간 논의를 거쳐 도입했다"면서 "금융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일인 만큼 법 제정 이전에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이 반대하는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지급준비율 문제. 은행과 달리 증권사들은 지급준비율 적립 의무가 없어 금리경쟁에 유리한데 여기에 지급결제 서비스까지 갖추게 되면 은행자금이 대거 증권사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고금리를 앞세운 증권사 자금관리계좌(CMA)로 은행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점도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이 경우 은행들은 지급준비금 제도를 폐지하거나 지준율 인하 요구가 높아지면서 현행 지준제도의 근간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게 한은의 논리다. 한은의 최재현 금융결제국장은 "증권사가 지급결제 업무를 하려면 은행과 유사한 수준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불공정거래 요인이 허용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와 증권업계는 "금융투자자의 편익을 증진하는 차원에서 지급결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법안 처리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고객이 은행에 돈을 맡기면 돈의 소유권은 은행으로 넘어가지만, 증권사에 맡기면 고객 돈으로 남는다"면서 "따라서 증권사가 파산할 경우 고객 돈은 파산재단에 들어가지 않고 안전하게 보관되는 반면 은행이 망하면 고객은 채권자로 전환돼 리스크는 은행이 더 크다"고 반박했다. 한국증권업협회는 최근 건의문을 통해 "은행의 체크카드처럼 이미 확보된 현금 내에서 자금이체가 이뤄지기 때문에 지급결제 시스템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재영 박대한 기자 fusionjc@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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