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기 주가,투신·연기금 떠받쳐
올해 증시는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1383.32로 시작한 코스피지수는 곧바로 1400까지 오르며 대세상승의 기대감을 키웠다. 석달여간의 지루한 박스권 장세를 넘어 5월 들어 주가는 사상최고치 갱신에 나섰다. 그러나 미국발 인플레이션 우려로 주가는 6월 중순 1200 아래까지 곤두박칠 쳤다. 이처럼 극적인 장세에 케이티앤지를 공격한 아이칸-스틸 파트너스, 한국 주식 팔자에 나선 외국인, 본격 활동에 나선 장하성펀드, 증시 버팀목으로 떠오른 투신과 연기금, 증시를 얼어붙게 한 북한 핵실험 등이 재미와 긴장감을 더한 한 해였다.
1464.70
5월11일 장중 코스피지수는 사상 최고치인 1464.70을 기록했다. 연초부터 4월 중순까지 1300~1400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주가가 사상 최고치에 오르자 거의 유일하게 약세론을 펼치던 대신증권마저 대세상승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마지막 약세론자가 강세론자로 변신하면, 주가는 폭락한다’는 증권가 속설은, 사상 최고치 한달여만에 주가가 1200 아래로 내리꽂히며 입증된 셈이 됐다. 사상 최고치 갱신 이후 내리막길은,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인 벤 버냉키가 인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한 ‘버냉키 쇼크’에서 비롯했다.
아이칸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아이칸-스틸 파트너스 연합은 지난 2월 케이티앤지 지분 6.6% 보유를 공시한 뒤 경영권을 위협했다. 이 때문에 ‘외국 단기 투기자본’과 ‘경영권 방어책 강화’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아이칸 쪽은 케이티앤지에 배당금 확대, 유휴 부동산 처분, 담배인삼공사 기업공개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리히텐슈타인 스틸파트너스 대표가 케이티앤지 사외이사로 입성하기까지 했다. 결국 케이티앤지는 이들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발전전략을 발표했고, 이들은 이달초 케이티앤지 776만주 중 700만주를 팔아치웠다.
외국인 매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 한해 한국 증시에서 11조3300억원(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포함, 12월22일 현재)어치를 팔아치웠다. 외국인 매도세가 본격화된 지난 4월25일 이후로 보면, 순매도액은 15조3천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증시 일각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떠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수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대비 40%를 보유하고 있던 외국인들이 비중 조절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2주간 외국인들이 1조여원 순매수세를 보이는 등 매도세는 약화되고 있다. 해가 바뀌어도 외국인 매도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주식형 펀드
외국인의 거센 매도세에도 증시는 꿋꿋했다. 지난 9월 들어 수탁액 40조원을 넘어선 주식형 펀드가 첫째 버팀목이었다. 올들어 새로 생긴 펀드만 4천개가 훌쩍 넘고, 주식형 펀드는 투자의 대명사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그러나 투자 수익률은 그다지 좋지 않은 한해였다. 한국펀드평가 집계를 보면, 이달 초순 현재 국내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은 마이너스 2.20%에 그쳤다. 2004년 선풍적으로 팔려나간 적립식 펀드가 내년이면 만 3년이 되면서 대량환매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장기 투자 문화가 싹트고 있으므로 많은 투자자들이 청산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연기금
둘째 버팀목은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었다. 지난 6월 코스피지수가 1200대까지 떨어진 뒤 완만한 상승세를 이끌어온 주역이다. 연기금은 8월부터 매수세를 강화해 최근까지 투자 주체 중 가장 많은 2조4953억원어치를 순매수(12월22일 현재)하며 증시를 떠받쳐왔다. 연기금의 증시 안전판 구실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의 주식투자 한도액은 올해 6조5802억원의 2.6배인 17조2600억원으로 늘어난다. 올해 3대 연기금의 주식 투자 누계액이 16조841억원이므로, 신규자금이 최대로 집행되면 내년 연기금의 주식투자 누계액은 28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북핵 충격
지난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코스피지수는 2.41%, 코스닥지수는 8.21% 급락했다. 증시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했으나, 오래 갈 사안은 아니었다. 이미 북핵 리스크는 한국 증시에 반영돼 있다는 게 국내외 대부분 금융기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급락했던 주가는 2주만에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연말 증시는 1400을 넘어섰다. 증시에서는 북한이 6자 회담 복귀를 발표한 시점부터 북핵 리스크가 소멸됐다고 보는 게 다수의 판단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북핵 문제는 소강상태일 뿐 완전히 벗어났다고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다.
장하성펀드
최근 증시 최대의 이슈는 일명 장하성펀드,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다. ‘소액주주운동의 대부’로 불리던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이, 더욱 적극적인 주주행동을 위해 직접 시장에 뛰어들었다. 목적은 기업지배구조개선. 일부에선 이른바 ‘먹튀’ 가능성을 제기하며, 장하성펀드는 곧 외국자본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 교수는 장기투자를 통해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컨츄리 펀드’라서 ‘먹튀’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장하성펀드는 지금까지 대한화섬, 화성산업, 크라운제과, 동원개발 등에 투자했다고 공시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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