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시스템즈가 지속적으로 대한화섬 지분을 사들이고 있어 태광그룹이 ‘장하성 펀드’의 공격에 맞서 ‘상장 폐지’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릴 것인지 증권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태광시스템즈는 지난달 말 두 차례와 이달 들어 네 차례 등 모두 여섯차례에 걸쳐 대한화섬 주식 2만여주(1.57%)를 사들였다. 이로써 이호진 회장 등 태광 쪽 지분은 71.88%로 높아졌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을 보면 △소액주주가 200명 미만이거나 △소액주주의 주식 수가 10% 미만이면 상장 폐지 요건에 해당된다. 현재 소액주주는 600여명, 보유 지분은 22.97%이다. 태광이 400명 이상으로부터 17%의 주식만 더 사들이면 요건을 충족하게 된다.
태광 쪽 지분이 70%가 넘어 단 5.15%를 가진 장하성 펀드와의 지분경쟁이 불필요한 상황인데도 주식을 더 사들이는 데 대해 증권가 일부에서는 상장 폐지 외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고 보고 있다. 상장이 폐지되면 소액주주가 없으므로 일반인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물론, ‘주주가치를 위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장하성 펀드의 명분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각종 공시의무 등과 같은 상장기업 관련 규제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대한화섬의 하루 거래 주식 수가 많지 않아 상장 폐지를 위해서는 공개매수가 불가피하다. 공개매수는 주가 급등으로 이어져, 태광 쪽의 자금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높다.
태광으로서도 상장 폐지를 결정하는 데는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상장 폐지는 상장기업의 신뢰성·투명성을 포기하고 주주들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태광 쪽도 지분 추가매입이 장하성 펀드가 움직이기 이전인 7월 말에 시작됐음을 들어 상장 폐지는 사실무근이라는 설명이다. 허정민 태광그룹 홍보팀장은 “대한화섬 지분 취득은 투자목적일 뿐, 상장 폐지를 할 필요도 없고 일부러 부정적 평가를 받을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증시는 이런 설명에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5일 연속 상한가 행진을 벌이던 대한화섬의 주가가 30일에는 상한가와 하한가 수준을 오가다가 결국 전날보다 5.34% 떨어져 마감한 것은, 이런 불확실성을 반영한다. 태광산업도 개장 초 급등세를 타며 52주 최고가를 갈아치웠으나 다시 하한가로 급락했다.
장하성 펀드는 상장 폐지를 경계하면서 여러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방송·금융 등 공익성 높은 사업을 하면서 상장 폐지로 소액주주에게 해를 끼친다면 한국에서 퇴출돼야 한다”며 “소액주주들에게 직접 호소를 하는 등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장 폐지는 막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가 최근 <한겨레>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소액주주들에게 “2~3년 이상 대한화섬 주식을 보유하라”고 당부한 것도 이런 움직임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펀드에서는 태광 쪽이 상장 폐지를 강행할 경우 소액주주들의 수나 지분을 상장 폐지 요건 이상으로 유지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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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장폐지=
상장기업이 경영부실 등의 이유로 증시에서 주식이 거래될 자격을 잃고 퇴출되는 것을 뜻한다. 상장사가 주주총회에서 상장폐지를 결의한 뒤 직접 신청해서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거래소의 직권으로 결정된다. 회사가 해산되거나, 사업보고서를 내지 않거나, 자본 잠식 상태가 3년 동안 이어지거나, 부도가 났을 때 상장이 폐지된다. 상장기업은 공시의무나 사업보고서 제출의무 등을 지게 된다. 증시에서 상장이 폐지된 기업은 일반적으로 신뢰성과 투명성이 실추된 것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