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약세장서 ‘사회기부금’ 둘러싼 엇갈린 희비
“8천억원에서 더 낼 이유는 없다.”(삼성그룹) “1조원은 어떻게라도 채울 것이다.”(현대차그룹)
최근 삼성전자와 글로비스의 주식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사회기부금’을 내놓은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표정이 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삼성은 “추가 출연은 없다”며 태연한 반면 현대차는 “헌납 금액 부족분을 채워내겠다”고 공언해버린 탓인지 속만 태우고 있다.
지난 2월7일 삼성이 발표한 ‘8천억원’ 가운데 가치 변동폭이 가장 큰 것은 삼성전자 주식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지난달 18일 삼성이건희장학재단에 내놓은 삼성전자 주식은 각각 7만9720주와 12만1170주였다. 기증 당시 주식가치는 주당 65만3천원씩 1312억원이었지만 13일 종가기준으로 주당 54만9천원씩 1103억원으로 떨어졌다. 삼성은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기증 시점에서 약속한 8천억원을 모두 채웠고, 또 우리 손을 떠났기 때문에 금액이 모자란다고 해서 채워넣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주식가치가 오르더라도 차액을 돌려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주가가 하락했다고 추가 출연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삼성은 주식처분 시점에서 차액이 크게 벌어질 경우 시빗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다.
삼성에 비해 현대차의 부담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4월19일 사회복지재단에 기부하기로 발표한 글로비스의 주가가 하락해 1조원을 채우지 못한다면 정몽구 회장 부자의 재산을 털어서 1조원을 맞추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글로비스 주식의 가격은 당시 주당 4만1750원이었다가 이날 종가로 3만550원까지 떨어졌다. 정 회장(28.1%)과 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31.9%)이 갖고 있는 지분 2250만주(60%)를 모두 합해도 주식가치는 1조원에 훨씬 못미치는 6874억원이다. 현대차 내부에서는 사재출연 방법은커녕 기부 논의 자체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현대차 주변에서는 “1조원이라는 규모에 맞추려다 발목을 잡힌 모양이 돼버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회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사재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느냐”며 “1조원 기부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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