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계열 6개사 인수에는 출총제 적용않기로
지주회사들, 인수요건 충족부담에 경쟁만 치열
지주회사들, 인수요건 충족부담에 경쟁만 치열
‘정부 말 그대로 믿으면 바보?’
몇 년 전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한 대기업 임원은 요즘 심기가 편치 않다.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춰 지배구조 선진화 작업을 마쳤는데, 정부의 고무줄 정책 탓에 오히려 지주회사 전환을 미루고 버티는 기업보다 손해를 볼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3일 재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들이 대우 계열사에 대한 정부의 출총제 예외 조처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대우건설 등 옛 대우계열 6개사(표 참조)의 인수 건에 대해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를 적용하기 않기 하면서 지주회사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말 산업은행 등 정부기관이 지분의 30% 이상을 보유한 이들 6개사의 경우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를 위해 출총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엘지그룹 관계자는 “출총제에 대해 예외를 자꾸 인정해주면 지주사로 전환한 데 따른 이점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앞으로 누가 정부의 재벌 정책을 곧이곧대로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대우조선해양을 찜해두고 매각 일정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지주회사 관계자는 “출총제 대상 기업은 출자총액제한을 통해, 지주회사는 지주회사법의 자회사 요건을 통해 각각 문어발 확장을 억제해온 게 그동안 정부의 정책 방향이었다”며 “허나 이번 조처로 출총제 대상 기업의 재갈은 풀린 반면 지주사는 그대로여서 사실상 역차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출총제는 재벌의 이른바 ‘문어발식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기업이 순자산의 25%를 초과해서 계열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한 제도다. 재벌 총수가 적은 지분을 계열사로 순환출자해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을 억제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이번 공정위의 조처로 기존에 출총제를 적용받던 대기업들은 거리낌없이 대우계열 6개사의 인수전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든 기업들 가운데 두산, 한화, 금호 등은 출총제 적용 배제로 혜택을 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주회사 처지에서는 지주회사법의 인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부담에 더해, 애초 인수전에 뛰어들기 어려웠던 기업들이 경쟁 상대로 등장하게 돼 가격 상승 등 이중의 부담을 안게 됐다. 그만큼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지주회사법을 보면,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의 경우 지분의 30% 이상을, 비상장사는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주사는 순환출자가 어렵고, 인수합병을 위한 자금 동원도 쉽지 않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 이어 정치권에서도 공정위의 이번 조처에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30일 성명을 내어 “정부가 출총제의 완화라는 예외조항을 남발한다면 재벌의 방만하고 비생산적인 출자로 인해 지배구조가 더욱 왜곡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노당은 같은 날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공정위에 보냈다.
조성곤 기자 c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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