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이 줄어든 가운데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탄천주차장을 관광버스들이 메우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30대 후반의 관광가이드 ㄱ씨는 요 며칠 사이 실낱같던 희망이 무너졌다. 프리랜서와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3개월간 매달 50만원씩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준다는 정부 발표에 기대를 걸었다가 까다로운 절차 탓에 제풀에 지쳐버렸다. 소규모 여행사 여러 곳에서 일감을 받던 그는 경력증명서를 떼려 여행사마다 전화를 돌렸다. 이미 문 닫은 여행사는 아예 연락조차 되지 않았고, 그나마 간판은 달고 있는 곳에선 직원들이 모두 무급휴직에 들어가 증명서 떼줄 사람이 없었다. 경력이나 소득을 증명할 서류가 없는 ㄱ씨 같은 이에겐 ‘3개월간 매월 50만원’이란 정부 약속은 공염불이다. 12인승 스타렉스 렌트비 70만원에다 전세금 대출이자 등 고정비용으로 다달이 200만원을 내야 하는 그에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아내의 수입을 빼면 지난 21일 받은 경기도 재난소득 20만원이 두 달 수입의 전부다.
관광가이드 ㄴ씨의 처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달 초부터 국외 입국자들이 자가격리 기간 동안 머무는 충북의 한 격리시설에서 비용을 수납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 가이드로 나선 건 2월15일.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매일 무거운 방호복을 입고 벗을 때마다 땀이 쏟아진다면서도 “가이드 대다수가 일감 없이 쉬고 있는데 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며 머쓱해했다.
코로나19로 나라와 나라를 잇는 하늘길이 꽁꽁 막히고 국경을 넘는 지구촌 사람들의 왕래가 사실상 끊어지면서 관광·여행 산업이 말 그대로 말라죽고 있다. 특히 소규모 영세업체 중심으로 형성된 국내 여행업계의 특성이 어려움을 더한다. 직원 17명을 둔 베트남과 필리핀 아웃바운드 여행사 ㅎ사는 지난 3월부터 직원들이 교대로 휴직에 들어갔고, 이달 들어선 전 직원이 쉬고 있다. 정부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 평균임금의 70%가량을 휴업수당으로 쥐여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회사 대표 ㅇ(49)씨는 “2월 중순 이후 단체관광 예약이 한 건도 없다. 회사 문을 열고 있을 수가 없다”며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9월까지는 계속 휴직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마냥 전 직원 휴직을 이어갈 처지도 아니라고 한다. 그는 “지금처럼 매출이 전혀 없는 상태에선 고용보험도 부담”이라며 “일부는 권고사직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 석 달 새 여행사 253곳 폐업 대형 여행사들만 봐도 모객 수가 급감했다. 모객 규모는 수익의 대리 지표다. 하나투어의 해외여행상품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월 49.7%, 2월 84.8%, 3월 99% 급감했다. 모두투어도 1월 23.4%, 2월 77%, 3월 99.2%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4월과 5월 예약 감소율도 99%로 예상한다.
폐업 선언 여행사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여행업협회 여행정보센터가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산한 자료를 보면,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1월20일부터 이달 23일까지 폐업한 국내·국외·일반여행사는 모두 253곳이다.
정부가 임금 90%를 지원해준다 해도 남은 10%와 고용보험 등을 부담할 여력이 안 되는 영세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어서다. 간신히 문을 연 업체의 사정이라고 해봤자 별반 다르지 않다. 전체 여행사 종사자의 약 90%가 이미 휴직 상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9년 말 기준 국내 등록된 여행사 종사자는 어림잡아 10만명이다. 9만명가량이 제 일을 못 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행사들이 겪는 이런 어려움도 코로나19가 덮친 현장의 한 단면일 뿐이다. 여행사보다도 한발 앞서, 그리고 한발 깊숙이 나락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곳곳에서 들린다. 일감을 잃은 관광가이드는 물론이려니와, 하루아침에 단체손님이 사라진 텅 빈 식당, 운행을 멈춘 전세버스…. 국내 여행산업 생태계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차지하는 존재들이 소리 없이 울고 있다.
2011년부터 중국과 대만 관광객을 상대로 중국어 관광가이드 일을 해온 50대 초반의 ㅂ씨. 그는 얼마 전 휴대전화 요금제를 바꿨다. 평소 식당이나 호텔 등에 수시로 전화할 일이 많아 무제한 요금제를 이용했지만, 이젠 가장 낮은 요금제만으로도 충분해서다. 한 달에 4박5일짜리 패키지 상품 최소 3~5건 정도이던 일감은 2월 말 이후 완전히 끊겼다. 두 달째 수입 한 푼 없이 지내는 그는 “해고당했다는 사람이 차라리 부럽더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해고당하면 나라에서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잖아요.”
서울 마포구의 외국인 관광객 대상 단체식당. 이 식당을 운영하는 ㅁ씨는 3월부터 식당 문을 닫고 쿠팡플렉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23일 인터뷰를 위해 두달 만에 식당 문을 열었다. 김윤주 기자
■ 월 4000만원 기대했는데 ‘택배 알바’ 뛰는 중 단체관광객으로 늘 북적거리던 식당들도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단체관광객을 상대로 한 식당을 운영하는 ㅁ(38)씨. 그는 2월 초 이 식당을 인수했다. 식당을 넘긴 전 주인은 월평균 매출 3000만~4000만원에 700만~800만원을 순이익으로 쥘 수 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는 한 달 만에 문을 잠시 닫고 이젠 쿠팡플렉스를 ‘뛰고’ 있다. 쿠팡플렉스는 자기 차량으로 물류센터로 가 택배 물건을 받아 배송하는 아르바이트를 가리킨다. 일이 많은 날엔 낮 12시부터 6시까지, 다시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하루 두 타임을 뛰며 평균 150~200개 물량을 배달한다. 그가 3월 한 달 쿠팡플렉스 일로 번 돈은 200만원.
과거 이 식당은 주로 동남아 단체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중식과 한식을 판매하던 식당엔 하루 평균 400명 남짓한 단체손님이 북적거렸다. 성수기엔 하루 500명, 비수기라고 해도 200~250명은 꾸준히 찾았다. 버스기사나 가이드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버스기사에게 수고비 5000원 가량 지급하는 정도치곤 쏠쏠한 편이었다. 내국인 손님은 전혀 받지 않고 100% 예약제로 운영하던 식당에 이상 신호가 잡히기 시작한 건 2월 첫째 주 무렵. 손님이 평소 70% 수준으로 주는가 싶더니 중순 이후부턴 40%까지 떨어졌고, 급기야 3월 예약은 전무했다. 2월 한 달 800만원이던 손실은 3월엔 1500만원으로 불어났다. 휴업을 했어도 임대료와 인건비는 고스란히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3월엔 주방을 담당하던 3명과 서빙을 담당하던 2명에게 임금 70%를 주고 유급휴직을 시켰지만 이달 들어선 무급휴직을 피하기 어려웠다.
ㅁ씨는 “당장 돈 벌 수 있는 일이 택배 아르바이트 정도라 사태가 나아질 때까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계속 뛸 생각”이라며 “직원들에게도 언제 다시 문을 열 수 있을지 모르니 다른 일자리도 알아보라 털어놨다”고 말했다. 10살과 7살 두 아들을 둔 그는 달리 방도가 없지 않냐고 했다. 대출까지 받아 식당을 인수하느라 네 식구의 기본 생활비 외에도 월 400만~500만원은 족히 나가는 상황에서 코로나19의 힘은 너무 셌다.
■ 관광버스 기사들은 ‘권고사직’ 행렬 외국인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ㄷ버스회사에서 일하던 전세버스 기사 ㅍ(51)씨의 요즘 일과는 구인·구직 사이트 들락거리기다. 관광버스 기사로 일한 건 2013년부터, ㄷ버스회사에는 2015년부터 몸담았다. 하루 평균 12시간, 길게는 15시간 일하고 손에 쥔 건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 179만원에 가이드와 쇼핑센터로부터 하루 평균 3만원 정도 받은 게 고작. 하지만 그는 3월 중순 그나마 있던 일자리를 권고사직 형태로 잃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아예 버스를 운전할 일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20대 후반 나이에 일찌감치 시내버스를 운전하기 시작한 그에게 버스 운전 이외의 일은 낯선 세상이다. 당분간 월 168만원씩 실업급여를 받는다고는 해도 두려움은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버스회사 중에서 신규 고용에 나서는 곳은 좀체 찾기 어렵다. 할 수 없이 지난주엔 한 제조업체에 이력서를 냈다.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다는 걸 증명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무작정 다시 운전대를 잡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서다. 혼자 살며 월세 40만원에 보험료 45만원 등 다달이 고정지출만 120만~130만원인 그는 “사태가 장기회되면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보험이라도 해지해야 할 판”이라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경기도의 한 외국인 관광객 대상 버스회사에서 기사로 일하던 ㅈ(54)씨의 처지도 판박이다. 그는 올해 2월1일 회사에 사직서를 낸 뒤 석 달 가까이 하릴없이 쉬고 있다. 회사 직원은 모두 15명으로, 버스기사 10명은 모두 회사 쪽으로부터 권고사직을 받아 일자리를 잃었다. 한 달 월세와 가스비 50만원, 통신비·식비·보험료 등 80만원 외에도 아직 대학에 다니는 두 딸에게 보내주는 용돈 60만원, 대출이자와 원금 120만원을 합쳐 고정지출만 310만원에 이르는 그에게 하루하루는 불안과 막막함의 연속이다. 일을 그만두기 전엔 하루 12~15시간 일했고 대기시간에도 주차공간이 없을 때는 불법 주정차 과태료를 피하려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 때가 많았지만, ㅈ씨는 “여전히 그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그가 관광객 대상 전세버스 기사로 일한 기간은 9년.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도 관광버스 기사로 겪었다. “건설현장 일용직 등으로 일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아직은 망설이고 있다”는 그는 코로나19 충격에 대한 두려움을 못내 숨기지 않았다. “메르스 때는 2개월밖에 안 쉬었어요. 제발 그때 정도만 쉬고 다시 일했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이지만 이번엔 어려울 것 같죠.”
■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 아우성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과거 그 어느 위기와도 견주기 힘들 정도로 우리 경제에 깊은 골을 패고 있다. 한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메르스는 전세계적 이슈는 아니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경기 전반이 어려웠을 뿐 지금처럼 비행기가 안 뜨고 여행업이 직격탄을 맞지는 않았다”며 “메르스나 금융위기 때는 3개월 정도 만에 회복세를 찾았다고 내부적으로 평가했다. 현재는 그때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고 다른 산업에 비해서도 회복이 많이 늦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여행수지 항목 중 ‘일반여행수입’은 215억630만달러로, 우리 돈으로 약 25조원에 이른다.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이 뿌린 돈 규모를 나타내는 것으로, 10년 새 갑절로 늘어난 수치다. 지금처럼 국내 여행산업 생태계 전반이 하릴없이 무너져내린다면 우리 경제 전체에도 커다란 생채기를 남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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