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생태계 혁신대책을 설명하는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중기부 제공
지금까지 정책금융기관이 맡아온 벤처기업 선별 절차를 민간전문가들로만 구성된 기구가 맡게된다. 또 벤처기업의 업종 제한 규제가 사실상 폐지되고, 벤처펀드의 운영이나 투자에 참여할 수 있는 금융기관과 민간자본의 유형은 대폭 늘어난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31일 서울 역삼동 창업지원서비스 공간인 마루180에서 이런 내용의 벤처생태계 혁신대책을 발표했다. 홍 장관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정부가 모태펀드 출자 등을 통해 시장을 견인하는 공급 위주의 벤처정책은 과다 규제, 민간자율성 부족 등의 문제로 한계에 이르렀다”며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후원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탈 등 수요자 맞춤형 제도 운영으로 벤처생태계의 활력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정부는 지금까지 기술보증기금과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주로 담담해온 벤처기업 인증 권한을 벤처업계 출신들로 구성된 ‘벤처확인위원회’에게 넘길 계획이다. 공공기관 중심의 벤처 선별방식의 기술혁신의 가능성보다 대출 상환능력 등 재무적 평가를 중시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민간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추지이다.
현재 23가지에 이르는 벤처기업 진입 금지 업종도 사행·유흥업 분야의 5가지를 빼고는 모두 폐지된다. 이에 따라 숙박업, 음식업, 부동산 개발 및 임대사업, 이미용업 같은 서비스업종에서도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면 벤처기업으로 인증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중소기업으로 한정된 벤처기업 규모 제한도 매출 3천억원 미만의 초기 중견기업으로까지 완화된다. 아울러 벤처확인 유효기간이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나 혁신성과 성장성을 평가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중기부는 이렇게 벤처확인 제도와 절차를 바꾸면 추가로 약 2만7천개 기업이 벤처확인을 신청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중기부는 벤처투자와 관련해서는, 좀더 많은 민간자금이 좀더 빨리 벤처기업에게 유입될 수 있도록 벤처펀드의 설립 규제는 완화하고 운용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예컨대 벤처캐피탈의 국외투자 제한 규정을 철폐하고, ‘조건부지분인수계약(SAFE)’ 등 다양한 투자방식을 허용할 방침이다. 또 벤처펀드의 공동운용사 범위를 증권사 등으로 확대하고,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의 벤처투자조합 결성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민간 벤처투자를 견인해온 모태펀드의 운용방식도 크게 바뀐다. 정부 출자기관인 한국벤처투자가 운용하는 모태펀드 외에 민간자금만으로도 모태펀드를 결성할 수 있도록 벤처투자조합(KVF)에 대한 기존의 모태펀드 의무출자 규정이 폐지된다. 또 민간이 투자분야를 먼저 제안하고 모태펀드가 나중에 연계출자하는 ‘민간제안 펀드’를 올해 2천억원 규모로 도입할 계획이다. 중기부는 올해 모태펀드 청년창업 등 ‘시장실패’의 가능성이 큰 영역에 집중하는 정책목적으로 약 1조8천억원, 나머지 기존방식의 출자사업으로 약 1조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중기부는 이런 벤처생태계 혁신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중소기업창업지원법(창업법)과 벤처기업육성법(벤처법)을 통합한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2월 중 입법예고하고, 시행령이나 고시로 추진할 수 있는 대책은 4월까지 개정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석종훈 중기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은 “지난해 2조4천억원 규모이던 신규 벤처투자가 2022년까지 4조4천억원으로 약 1.8배,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투자 비중은 현재 0.13%에서 0.23%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번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면 연 매출 1천억원 이상의 벤처기업이 현재 550여개에서 2022년 800개 이상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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