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저감량을 왜 보여주냐고요?”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대교 아래 채빛섬 1층에 위치한 자전거 전문 플랫폼 회사 ‘라이트브라더스’를 찾았다. 업력 6년차로 중고 자전거 중개 전문 회사인 이 업체는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이 회사 누리집에서 매물을 선택하면 가격과 성능표 외에도 또다른 정보가 뜬다.
실제 약 60만원 짜리 자전거를 선택하니 “101.6㎏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 수도권 출퇴근 승용차 28대를 줄인 것과 같다”란 문구가 나왔다. 새 자전거 생산 등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만큼을 중고거래만으로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이 회사 직원 김나우씨는 “탄소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알게 되면 각자 자전거 생활에 부여하는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지난해 5월부터 회원(고객)들이 자전거 이용 이력을 누리집에 기록하면 이를 토대로 ‘포인트’를 준다. 회원들은 이 포인트로 자전거를 살 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포인트는 탄소배출권 시세에 따라 책정이 된다. 현재는 자전거 이동거리 1㎞당 30포인트(1포인트=1원)다. 앞으로 이 포인트를 카드사 포인트나 탄소배출권(7일 현재 탄소 1t당 약 1만3천원)과 교환하는 방안도 이 회사는 궁리 중이다.
회사 회의실에 들어서면 벽면에 20여장의 특허증이 빼곡히 붙어 있다. ‘블록체인을 이용한 이동기구의 중고거래 내역 획득’, ‘탄소배출권 카드사 포인트 전환’, ‘비파괴 기반 자전거 중고거래’ 등의 한국과 미국, 일본 등에 등록한 특허 증서들이다. 자전거 이용에 따라 줄일 수 있는 탄소량을 측정하고 측정된 탄소 저감량을 포인트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김희수 라이트브라더스 대표는 “그린워싱(무늬만 환경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지피에스(GPS) 기반으로 자원 순환 데이터 수집을 엄격하게 모니터링하고 기록해 검증한다”며 ”여기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연구와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말했다. 자전거 특유의 친환경성과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땀을 쏟았다는 얘기다. 현재 이 회사의 회원은 모두 약 8만명에 이르며, 매출도 2019년 7억원에서 2021년 30억원, 2022년 38억원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탄소 감축과 기후 대응에 기여하는 혁신 기술을 ‘기후 기술’이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라이트브라더스는 중고 자전거 거래 전문 기업이면서도 동시에 기후 기술 기업이라고 분류할 수도 있다.
전기차 충전기나 발전기로 쓸 수 있는 이동형 에너지저장장치(ESS) 제조와 서비스 등을 하고 있는 ‘이온어스’도 대표적인 국내 기후 기술 기업으로 꼽힌다. 2020년 설립된 이 회사는 자사 제품을 임대한 뒤, 탄소저감량을 측정해 고객에게 그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제공한다. 허은 이온어스 대표는 “(기후 대응 과정에서) 디젤 중심의 발전기는 에너지저장장치 등의 친환경 발전기로 대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친환경 발전기 시장은 국외에서 이미 개화했으며, 양산 능력만 확보하면 수년 뒤에는 연간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 회사 매출이 10억원대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매우 야심찬 목표인 셈이다.
기후 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시중금리 상승 탓에 일반 벤처 투자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양상과는 차이가 있다. 글로벌 마켓정보 플랫폼 ‘홀론아이큐’는 세계 1위 회계 감사 기업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자료를 활용해 지난해 기후 기술 기업에 흘러간 투자자금이 한 해 전보다 89% 늘어났다고 밝힌 바 있다.
다른 통계 자료에서도 이런 흐름은 관찰된다. 기후기술·투자 관련 뉴스레터 업체 ‘클라이밋테크브이시’(CTVC) 자료를 보면, 2021년과 비교해 지난해 식품·농업과 토지이용, 에너지, 건축, 교통,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등 모든 기후기술 분야에서 투자 건수가 늘었다. 특히 에너지 업종 투자 건수는 같은 기간 157건에서 249건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최범규 소풍벤처스 투자심사역은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진 뒤) 투자 자체는 보수적으로 변해 가고 있지만, 기후기술에 대한 투자는 늘었다. 태양광과 모빌리티 영역에만 집중되던 기후투자 영역이 2020년 이후부터는 다양한 산업군으로 분산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한 현상”이라며 “에너지저장장치·탄소회계·탄소포집과 폐자원순환재활용 및 재사용 등이 기후투자 업계에서 바라보는 유망 분야”라고 짚었다.
특히 국내에선 전통 굴뚝 산업에서도 기후 기술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탄소가스 배출원의 65%가 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와 철강·반도체·화학 등 국내 대표 수출대기업이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고 이런 우려를 토대로 활동하는 기후·환경 단체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운 게 이들 기업의 속사정이기도 하다.
기후 기술과 관련 산업은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핵심 주력 기업들이 기후 위기라는 과제에 적기 대응하지 못할 경우엔 국가 차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오는 17일부터 한 달 동안 ‘탄소중립 산업 핵심 기술 개발’ 사업 참여 신청을 받기로 한 배경이기도 하다. 산업부는 철강·화학·시멘트·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의 기술 개발에 2030년까지 9352억원(국비 6947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정부는 이런 과정을 거쳐 2050년까지 산업부문 탄소 감축 목표인 2억1천만톤의 절반 이상을 줄일 것으로 기대한다.
범 부처가 참여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만들어가고 있는 국무조정실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도 기후기술 벤처·스타트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탄녹위 산하에는 ‘기후테크 전문위원회(가칭)’도 구성할 참이다. 기후기술 스타트업도 녹색산업분류체계(한국형 택소노미) 기준을 충족하면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저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기후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는 ‘비엔지(BNZ)파트너스’의 임대웅 대표는 “매년 기후기술 스타트업의 숫자가 배로 늘고 있다고 체감한다. 현재 200여개 기업이 있다고 추산한다. 성장가능성이 있는 기후기술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려는 흐름은 올해와 내년까지도 여전히 강하다”고 내다봤다. 윤세명 중소벤처기업부 기술혁신정책과장은 “속도감있는 탄소 감축을 위해서는 기존 틀을 깨는 기후기술 스타트업·중소기업들의 도전이 필요하다. 이들을 위한 시장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기 위해서는 창업·융합 지원 등의 정책 보조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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