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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부동산

‘영끌’도 사치인 청년들, ‘청년 주택’ 손 뻗을 수 있나요

등록 2020-12-02 15:42수정 2020-12-09 14:43

행복주택, 평생주택…‘고부담 공공임대’ 되지 않으려면
[한겨레·공공임대두배로연대 공동기획]

모두를 위한 공공임대 ②부담가능한 임대료
청년 주거 안정대책으로 나온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 사진은 서울에서 살 곳을 찾는 한 청년의 모습. 서울시 제공
청년 주거 안정대책으로 나온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 사진은 서울에서 살 곳을 찾는 한 청년의 모습. 서울시 제공

부동산 ‘영끌’과 ‘빚투’하는 청년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요즘이다. 부동산 투기 기회의 마지막 열차를 타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주택을 매매하거나 전세를 구하고, 돈이 돈을 버는 사회의 규칙을 장악하기 위해 ‘빚내서 주식을 투자’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이런 자신의 모습을 자조적으로 이르는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라는 말도 유행한다. ‘영끌’과 ‘빚투’ 모두 근로소득이 아닌 자본소득으로 자신이 처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타개하려는 오늘날 청년세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다. 근로소득으로 풀 수 없는 청년들의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지난 1월 민달팽이유니온이 청년임대주택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별 사례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1월 민달팽이유니온이 청년임대주택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별 사례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국의 청년들은 중산층 지위를 획득하는 일이 부모세대처럼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중산층은 비교적 높은 교육 수준을 배경으로 고소득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고, 근로소득으로 주택을 구입해 자산의 대부분을 형성했으며, 주택 마련은 노후 보장의 수단이기도 했다. 중산층의 ‘내집마련 신화’에 남성이 가장 역할을 하는 4인 가구 체제가 결합한 것이 한국의 고유한 ‘가족안전망’이다. 가족안전망은 오랫동안 사회안전망을 대체해왔고,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가족안전망이 없거나 무너지는 일부 개인에게만 선별적으로 적용됐다. 그러나 오늘날 중산층이 되는 일과 가족안전망을 갖추는 일은 말 그대로 청년들이 가 닿을 수 없는 ‘신화(myth)’가 되었다. 부동산 과세에서의 형평성 문제, 갭투기를 권장하며 자가소유를 장려했던 과거의 유산,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투기수요가 겹치면서 부담할 수 없는 주택가격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 삼전지구 행복주택 전경 국토교통부
서울 송파구 삼전지구 행복주택 전경 국토교통부

이런 부동산 시장에서 기성세대가 이득을 누리는 반면 청년세대는 주거불안 또는 주거빈곤이라는 피해를 입는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인구주택총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전체 가구의 주거빈곤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서울 1인 청년가구의 주거빈곤율은 2000년을 기점으로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대다수 청년의 현실은 영끌과 빚투 보다는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가깝다. 민달팽이유니온이 2019년과 2020년에 걸쳐 서울에 청년가구가 밀집한 지역인 성동구와 관악구의 원룸 건물들을 표본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주택이 무단용도 변경과 불법 방 쪼개기가 이루어진 위반건축물이었다.

정부의 공공임대 정책은 이같은 부동산 시장이 낳은 세대 불평등을 완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청년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가 청년세대에게 부담가능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박근혜 정부 시절 최초의 청년 공공임대주택이었던 행복주택이 도입될 때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 산정 방식의 하나로 시세 대비 임대료 산정이 등장했다. 하지만 늘 오르기만 하는 ‘시세’는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고, 행복주택의 임대료는 ‘지옥고 2030’이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을 보이고 있다. 공공이 지원하고 민간이 짓는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역시 민간 공급 유형의 임대료가 시세 대비 80~90%대에 달해 주거빈곤 청년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서울시가 고시원을 리모델링해 공급한 청년주택의 모습. 서울시 제공
서울시가 고시원을 리모델링해 공급한 청년주택의 모습. 서울시 제공

이미 주택을 소유한 기성세대가 청년 공공임대주택을 배척하는 태도도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할 과제다. 행복주택이 공급되던 초기 서울 목동과 구의동에서는 지역주민들이 청년을 ‘문란과 퇴폐’의 존재로 규정하고 ‘교통혼잡’을 우려하며 행복주택 건설을 반대했고, 목동에서는 실제 행복주택 공급 계획이 철회되기도 했다. 추가적인 주택 건설이 ‘교통혼잡’을 야기한다며 반대했던 목동 주민들은 최근 목동 일대 재건축이 승인된 데 대해서는 그저 환영할 뿐이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의 공급을 슬럼화와 퇴폐적 문화 확산을 이유로 반대하던 주민들이 어느날 갑자기 ‘청년들에게 무의미한 기업형 임대아파트를 반대’한다며 고양이 쥐 생각하듯 청년들을 방패로 내세우기도 한다.

중산층까지 포괄하는 ‘질 좋은 평생주택’을 도입해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없애겠다고 문재인 정부는 말하지만, 주택을 소유한 기성세대들의 차별 행위를 사실상 묵인해온 전례를 생각하면 이같은 정책이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다. 행복주택처럼 청년을 비롯해 주거빈곤에 처한 시민 누구도 입주할 수 없는 ‘값비싼 공공임대주택’만 양산하는 게 아닐지, 주거빈곤계층의 주거안전망을 위협하는 일이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주거권은 계속거주권, 주거환경, 부담가능성으로 구성된다. 유엔(UN)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 일반 논평을 통해 적절한 주거의 권리로서 점유의 안정성, 적절한 주거시설 및 기반시설 확보, 비용의 적절성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을 통해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는 부족하지만 민간임대차 시장에서 계속거주권과 부담가능성을 제고한 조처다.

공공임대주택도 이 3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공공주택사업자는 1인 가구 맞춤형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며 최저주거기준을 간신히 충족하는 청년임대주택을 양산하는 문제를 재고하고, 행복주택의 시세 대비 임대료 산정기준도 손봐야 한다. ‘빚투’하지 않고 ‘영끌’하지 않아도 누구나 안정적인 주거를 누릴 수 있도록 청년세대의 요구를 반영한 공공임대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정용찬 민달팽유니온 정책기획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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