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세입자 김아무개씨는 오는 12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따라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 2년 더 거주할 수 있는 권리가 확보됐지만 집주인의 반응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2년 전 이 아파트 입주 당시 3억8천만원에 전세계약을 했는데 현재 전세시세는 5억원 수준으로 껑충 뛰어오른 상황이다. 김씨는 “계약갱신을 청구하면 전세금 인상률 상한선 5%(1900만원)를 적용받을 수 있지만, 혹시라도 집주인이 불쾌해하면서 직접 거주하겠다고 나올까 봐 걱정”이라며 “융통 가능한 5천만원 정도는 올려줄 각오를 하고 집주인 의향을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10일 부동산 업계 말을 종합하면, 지난 7월31일부터 시행된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가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강화할 핵심적인 권리로 떠올랐다. 현행 2년인 전·월세 계약 기간 만료 때 세입자가 원하는 경우에는 최대 2년까지 더 거주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 경우 갱신 계약에선 임대료 상한선 5%가 적용되는 게 종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서울 시내 신축 아파트 등 최근 2년 새 전셋값이 급등한 곳에 거주하는 세입자가 전·월세 계약 만기를 앞두고 있는 경우에는 쉽게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시세가 많이 오른 곳에서는 세입자와 집주인 간 임대료 인상폭을 놓고 갈등이 생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세와는 큰 차이가 있는 5% 인상에 불만에 가진 집주인이라면 본인이나 부모, 자녀 등이 거주하겠다고 통보하고 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문제다.
새 주임법은 이런 경우를 고려해 만일 집주인이 해당 주택에 실제 입주하지 않고 다른 임차인과 전·월세 계약을 맺은 경우 집을 비웠던 임차인이 집주인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손해배상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퇴거한 임차인이 해당 주택의 임대차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주임법 시행령 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임차인 처지에서는 소송 절차가 번거로운 데다 손해배상 청구를 해도 퇴거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100% 보상받을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는 점에서 손해배상 제도는 ‘사후 약방문’ 격에 그칠 우려도 없지 않다.
이에 따라 전세시세가 폭등한 지역의 세입자라면 계약갱신을 요구할 때 임대료는 집주인의 성향을 고려해 5%를 넘는 인상률로 합의하는 것도 또 다른 대안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처럼 5%를 초과한 임대료로 재계약하는 경우에는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 이후 1회의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유권해석이다. 세입자로선 임대료를 좀 더 지불하는 ‘손실’ 대신에 전·월세 계약 기간을 2년 더 연장할 수 있는 ‘이득’도 있는 셈이다.
한편 국토교통부와 법무부는 최근 세입자가 있는 집을 실거주 목적으로 샀을 때 집 구매자가 세입자를 내보내고 집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새로 내놨다. 우선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를 하기 전에 새로운 집주인이 소유권이전 등기를 마친 때는 세입자에게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청구권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세입자가 소유권 이전 등기 전에 종전 집주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했을 때는 주택 매매계약을 했다고 해도 집주인이 계약갱신 거절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종전 집주인과 새 집주인은 계약 단계에서 집주인이 바뀌고 실거주하려고 하니 집을 비워달라고 요청하고 이를 세입자가 받아들이는 경우에 한해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 경우 세입자가 퇴거에 동의했다면 이후 입장을 번복하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수는 없다.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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