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수업과 재택 근무, 홈코노미의 공통점은? 바로 공간이다. 코로나 위기는 주거 공간이었던 집을 교육과 생산, 소비가 이뤄지는 사회경제적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4일 국토교통부가 ‘도시와 집, 이동의 새로운 미래’라는 주제로 연 포스트코로나 심포지엄에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도래할 불가역적인 변화에 대한 건축과 물류, 교통 분야 전문가들의 전망이 쏟아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공간과 이동의 변화는 무엇일까.
①집의 변화: 직주근접 말고 직주일치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가장 큰 변화가 있을 공간으로 ‘집’을 꼽았다. 김기훈 국토교통부 서기관은 “코로나 이전 집이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이었다면 비대면 시대 집은 생산활동의 공간이면서 문화·레저의 공간이 되고 있다”며 “재택근무 등 코로나 시기 비상조치들이 일상화가 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직주근접이 아니라 직주일치 개념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직장과 주거의 근접성을 가리키는 ‘직주근접’이 부동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이지만,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직장과 주거 공간의 일치 즉 ‘직주일치’가 기존 가치를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장재영 신한카드 빅데이터사업본부장 역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소비 공간이 ‘집’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빅데이터 자료를 보면 집 인테리어 관련 지출이 많아졌다. 상권으로 보면 관광산업 기반으로 한 인사동이나 명동 같은 곳의 소비가 많이 빠진 반면 집 주변 근거리 소비는 오히려 성장했다”며 “회식 없이 빨리 퇴근해서 가족과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쪽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서기관은 향후 집에서 수업, 근무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국토부가 기존의 획일적인 주택 공급 방식을 유연하게 바꾸어야 한다는 정책 방향도 제시했다. 집에서 교육과 근무가 가능한 다목적 주택이나 구조 변화가 기존 벽식 주택보다 용이한 장수명 주택을 예로 들었다. 수명이 100년을 간다는 장수명 주택은 리모델링이 용이한 기둥식 건축을 통해 수명이 30~40년으로 짧은 기존 벽식 건축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준공된 세종시 ‘블루시티’ 단지는 장수명 주택 시범단지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학)도 이날 심포지엄에서 미래의 집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아파트는 야외공간의 개인공간화가 진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 교수는 “현재 일반적인 중산층 가정이 사는 아파트 평면구조는 집에서 저녁과 주말에만 시간을 보내는 데 적합하다”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집의 이용률이 150% 이상 증가할 것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야외활동을 할 수 있는 테라스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②물류의 변화: 자율주행 로봇이 다니는 물류 전용 지하터널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는 “코로나가 온라인 유통업체에 기회라는 얘기가 많았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라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코로나 시기 유통업체가 직면한 가장 큰 챌린지(도전)는 재고를 보관하고 포장해서 배송을 준비하는 물류센터 운영 난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라며 “온라인 유통 물량이 증가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효율적인 콜드체인 물류망 구축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유현준 교수는 물류와 관련한 변화를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후지산 근처에 건설 중인 ‘우븐시티’의 자율주행로봇 전용 도로망을 사례로 들었다. 유 교수는 “상하수도나 전선들이 지중화되는 것처럼 기술이 발달하면 지상에 있던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며 “새벽배송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에는 밤에 쓰이지 않는 도로를 이용해 효율을 높인 덕분인데, 소형 물류를 지하로 빼면 지상의 공간이 공원과 같은 다양한 계층이 공통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편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량이 크지 않은 피자 한판을 배달하기 위해 160㎏의 중량(60㎏의 배달원이 100㎏의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이 이동하는 것과 10㎏의 자율주행 로봇이 이동하는 것 중 무엇이 효율적이냐는 것이다. 유 교수는 “지상 자율주행에 대해서는 인간 본능에 맞지 않다는 심리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은 반면 지하 자율주행은 훨씬 실현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쿠팡 집단감염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유통 및 물류산업이 발전할수록 해당 산업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및 노동권 보호조처가 미흡한 문제가 계속될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정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자성도 나왔다. 김기훈 국토부 서기관은 “코로나 기간 택배 물동량이 30%이상 증가하는 등 앞으로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근로환경이 열악한 만큼 국토부가 물류산업 종사자 근로실태 조사를 통해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③교통의 변화: KTX A1 좌석이 아니라 A1 구역으로
소재현 한국교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중교통이 소형화, 개별화에 따른 저밀도 대중교통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교통연구원 분석 결과 코로나 시기 지역 간 통행은 60%가 감소했고 지역 내 통행은 30%가 감소했다. 하지만 통행량 증가의 법칙에 따라 이 수치는 반드시 회복되고 증가할 것”이라며 “언택트 시대 저밀도 대중교통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에 대비해 새로운 대중교통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속철도(KTX)와 같은 철도 교통의 경우 현재 좌석을 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역을 지정해 타인과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지인들과는 같은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을 예로 들었다. 그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교통은 단순히 자가용 위주의 과거로 회귀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언택트 시대의 대중교통은 적정한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함께 이용하는 ‘세퍼릿 벗 투게더(seperate but together)’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