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은 이사철 성수기가 끝나가면서 연초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던 전셋값이 서서히 진정세로 돌아서고 있는 중이다.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값 동향’을 보면, 지난 20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43주 연속 올랐지만, 최근 2주간 변동률은 각각 0.02%에 그치는 등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한국감정원은 “지난해 7월 첫주부터 상승세가 시작된 전셋값이 연말을 거치면서 상승폭을 키우더니 4월 들어서는 눈에 띄게 둔화된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강남과 도심권 등에서는 이달까지도 전셋값 상승이 국지적으로 나타나는 등 여전히 불안한 양상도 감지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경희궁자이’ 2단지는 연초까지 8억원대였던 전용면적 84㎡ 전셋값이 이달 15일 9억7천만원(7층)에 거래되는 등 석 달 만에 1억원 이상 껑충 뛰어오르기도 했다. 서울 전체적으로 전셋값이 안정세로 접어들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뜻이다. 최근 시중은행의 전세자금 대출액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현상도 전셋값 상승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케이비(KB)국민·신한·우리·하나·엔에이치(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 합계는 3월 말 현재 86조2534억원으로 지난 2월 말보다 2조2085억원이나 늘었다.
부동산 업계에선 여당의 총선 압승과 최근 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한 집값 하락 추이 등을 종합해볼 때 아파트 매매가격과는 반대로 전셋값은 올해 하반기 이후 한층 더 불안해질 우려가 크다고 보고 있다. 먼저 지난해 단기간 급등했던 아파트값이 올해 큰 폭의 조정을 받으면서 떨어진다면, 전세에서 매매로 이동하는 수요가 줄어드는 대신 전세 선호 현상이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 올해부터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와 보유세 강화 대책에 따라 주택 보유세 부담이 커지는 점도 매매보다 전세 선호도를 높여 전세시장에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가 0%대로 떨어진 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가 전세시장에 끼칠 영향도 주목된다. 초저금리 현상이 이어진다면 집주인으로서는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방식을 통해 (전세금을 돌려주는 데 쓴) 대출 이자를 뛰어넘는 고정적인 임대소득을 추구할 여지가 커진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분석이다.
김규정 엔에이치(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앞으로는 대출을 받아 전세로 갈아타려는 월세·반전세 세입자와 경기침체와 집값 하락 우려로 매매를 미루는 수요까지 더해져 전세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전세시장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전월세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21대 국회에서 ‘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약갱신청구권제는 현행 2년인 전월세 계약기간을 세입자가 원할 경우 1회 정도 연장해 재계약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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