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한 상가의 부동산 업소.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잠실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공인중개사 강아무개 대표는 최근 몇달간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로부터 허위매물 여부 확인 전화를 수차례 받았다. 이는 누군가가 정상적인 매물을 허위매물로 신고했기 때문으로, 나중에 알고 보니 일부 집주인이 주변 호가보다 낮은 매물 가격에 불만을 품고 허위 정보라며 신고한 것이었다. 참다못한 중개업소들이 주민들과 송사를 벌이는 곳도 있다. 서울 용산 동부이촌동 49개 중개업소는 “호가를 올리지 않으면 동네 부동산 커뮤니티에 블랙리스트로 올려 영업을 못하게 하겠다”고 압력을 넣은 동네 주민을 지난 2월 서울 서부지검에 고소했다.
주택가격 상승기 때마다 기승을 부리는 고질적 문제인 집값 ‘짬짜미’(담합) 행위를 강력하게 제재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서 마련될지 주목된다. 22일 국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집값 담합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토부와의 협의를 통해 마련된 것으로,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의 후속 조처 성격을 띠고 있다.
개정안을 보면, 집주인들의 집값 담합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처음으로 마련된다. 법안은 ‘누구든지 중개 대상물의 가격을 담합하는 등의 방법으로 개업 공인중개사 등의 업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이는 일부 집주인들이 인터넷 카페 등에서 모의해 일정 가격 수준 이하의 매물을 올린 중개사들을 배제하거나 호가를 조정하도록 강요하며 업무를 방해하는 경우 담합으로 처벌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집값 담합을 한 집주인은 징역 3년 이하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공인중개사의 집값 담합 처벌도 강화된다. 개정안은 ‘공인중개사가 부당한 이익을 얻거나 제3자에게 부당한 이익을 얻게 할 목적으로 시세를 조작하거나 시세 조작에 가담하는 등 중개물의 시세에 부당한 영향을 주거나 줄 우려가 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도록 했다. 지금도 이런 행위는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해당하지만 이를 국토부가 주관하는 공인중개사법에 넣음으로써 단속의 실효성이 훨씬 높아진다.
또한 법안은 중개사들이 단체를 구성해 중개물의 중개 수수료율(보수)을 정하는 행위도 담합의 유형에 포함했다. 공인중개사법은 중개 수수료율의 한도만 정해 놓고 그 범위 안에서 소비자와 중개사가 협의를 통해 정하게 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를 기준으로 6억원 이상 9억원 미만 주택의 매매를 중개했을 때 수수료 상한은 0.5%다. 하지만 중개사들이 암묵적으로 보통 최대 수수료율에 맞춰 중개보수를 받고 있는데, 앞으론 특정 단체가 이를 강요한다면 담합이 된다. 이와 함께 중개사들이 단체를 구성해 특정 중개물에 대해 중개를 제한하거나 단체 구성원 이외의 중개사들과 공동중개를 제한하는 행위 등도 금지된다.
그러나 개정 법안으로도 주민들의 은밀한 집값 담합을 근본적으로 단속·처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예컨대 주민 커뮤니티 등에서 일정한 가격 이하로 집을 내놓지 말자는 담합 시도만으로는 공인중개사 업무를 방해한 것인지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부동산학과)는 “사업자가 아닌 부녀회나 주민은 현행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공인중개사 업무방해 차원에서 담합 행위를 단속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한 노골적인 압력 행사는 처벌이 가능하겠지만 일정 가격 이하에 매물을 내놓지 말자는 주민들 사이의 의견 개진까지 단속 대상에 넣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집값 담합을 근절하기 위한 법안이 계속 올라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구체적인 입법은 향후 국회에서 논의를 통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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