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당시 3차 보금자리주택지구 일반공급 사전예약을 하기 위해 서울 개포동 에스에이치(SH)공사를 방문한 시민들이 사전예약 상담 및 접수를 하고 있는 모습. 문재인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에 포함된 신혼희망타운 계획은 실패한 보금자리주택의 판박이가 될 우려가 높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6·25이후 최대 국난’이라 불리던 1997년의 ‘IMF 외환위기’는 많은 분야에서 우리 사회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어느 한 분야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만, 본격적으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면서 인구 재생산 구조가 붕괴된 건 그야말로 뼈아픈 상처다. 1997년 1.52명이던 합계출산율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 2017년엔 역대 최저 수준인 1.05명이 됐다. 인구가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는 ‘대체출산율’이 약 2.1명인데, 2017년의 합계출산율은 대체출산율의 딱 절반에 불과하다. 이러한 합계출산율이 지속될 경우 세대가 바뀔 때마다 인구가 절반으로 감소하게 된다. 급기야 2017년 12월에는 출생아 수 2만5000명, 사망자 수 2만6900명으로 통계청에서 197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 보다 많은 미증유의 현상이 발생했다.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듯, 박근혜 정부의 행복주택을 필두로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주거정책이 계속 쏟아졌다. 문재인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에는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임대주택 20만 호와 함께 ‘신혼희망타운’ 7만 호 공급이 포함돼 있다. 신혼희망타운의 공급 물량을 7만 호에서 10만 호로 늘리는 것도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분양주택인 신혼희망타운은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50∼70%선으로, 수서역세권, 위례신도시 등에서도 2억∼3억원대로 공급될 예정이다. 분양가가 시세의 70% 미만인 경우, 수익공유형 모기지(집을 팔 때 시세차익을 일정 비율 환수해가는 주택도시기금의 저리 대출)와 환매조건부(10년 안에 집을 팔 경우 분양가에 정기예금 금리 수준의 가산금리만 더해 한국토지주택공사에 환매)를 의무적으로 선택하게 해서 시세 차익의 일부를 환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세 차익의 최대 50%를 환수하는 공유형 모기지와 달리, 환매조건부는 계약 기간인 10년 이후 집을 팔 경우 시세 차익을 환수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다. 수서역세권, 위례신도시 등에서 공급되는 신혼희망타운은 향후 집값이 전혀 오르지 않더라도 수억원의 시세 차익이 보장되는 것이다.
‘결혼한 지 7년 이내’인 신혼부부라는 특정 계층에게 정부가 나서서 수억원의 시세 차익을 보장해주는 정책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가 신혼부부에게 ‘로또’를 제공하는 잘못된 주거정책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신혼부부가 소득·자산·일자리 등에서 일반 청년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인구 집단이라는 것은 여러 연구의 결과가 일치한다. 신혼부부는 청년은 물론 전체 가구에 비해서도 소득이 높다. 이는 대부분의 신혼부부가 시장에서 스스로 자신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판박이
저렴한 분양가로 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에서 이미 시도됐다. 개발이익 전체를 수분양자가 독점함으로써 과도한 시세 차익을 얻게 되는 문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고, 정권이 끝나자마자 보금자리주택은 사라졌다. 하지만 대상을 신혼부부라는 특정 계층으로 한정한 점만 다를 뿐, 신혼희망타운은 보금자리주택 정책과 동일하다. 박근혜 정부도 계승하지 않았던, 이미 실패한 보금자리주택을 문재인 정부에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과도한 시세 차익을 만들어내는 정책은 정당하지 않다. 시세 차익을 특정 계층이 전유하는 정책은 더욱 옳지 않다.
대부분의 신혼희망타운은 그린벨트를 해제하거나 토지를 수용해 조성된 공공택지에 지어질 것이다. 그린벨트까지 풀어 신혼부부에게 특혜를 주는 주거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도 되는가에 대해 공론의 장에서 논의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신혼희망타운과 관련해서 심도있는 연구가 이뤄진 적도 없다. 밀실에서 추진되고 있는 신혼희망타운 정책 어디에서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다운 나라의 주거정책으로서의 면모를 찾아볼 수가 없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얼마 남지 않은 그린벨트마저 위협하고 있는 신혼희망타운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의 근본 원인은 신혼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30대 후반의 미혼(비혼) 인구 비율이 남성은 33.0%로 약 3명 중 1 명, 여성은 19.2%로 약 5명 중 1 명 꼴로 나타나고 있다. 1995년 이후 30대 여성의 미혼율은 5년마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하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창문도 없는 고시원과 눅눅한 지하 방에서 살거나, 소득에 비해 과도한 주거비를 부담하고 있는 주거빈곤 상태에 있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절규하는 청년들의 힘겨운 삶이 나아지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는 해결 될 수 없다.
햇볕 쨍쨍 내리쬐는 큰 사거리에서, 가만히 서 있어도 정신이 없는 이 더운 여름에, 오토바이를 타고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곡예를 벌이고 있는 배달 아르바이트 청년들의 어지러운 질주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수년 동안 청년주거 문제를 고민해오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아득한 느낌이 든다. 생계를 위해선 목숨 따윈 상관없다는 듯 질주하고 있는 가난한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동안 ‘나는,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는지?’란 물음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픈 청년들의 문제는 유보한 채 신혼부부들에게 조금 더 쉽게 내집 마련의 기회를 주는 신혼희망타운 정책이 우선적으로 추진되어서는 안된다. 행복주택의 임대료조차 감당하기 힘든 2030 청년들에게 신혼희망타운은 너무 비현실적인 ‘희망고문’일 뿐이다. 어쩌면 ‘희망고문’이 아니라 ‘자조와 절망’을 느끼는 청년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쁘고 힘들어 신혼희망타운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청년들이 대부분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든다.
깊은 상처에 반창고만 붙이고 상처가 낫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저출산 현상의 본격화라는 뼈아픈 상처가 일부 신혼부부에게 ‘로또’를 몰아주는 미봉책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우리 사회의 운명을 가를 그보다 훨씬 중요한 투표가 계속 남아있다. 저출산 문제는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던 청년들이 우리 사회를 ‘헬조선’이 아닌 ‘나의 미래의 아이들이 태어나도 좋은 사회’로 만들겠노라 투표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생길 것이다. 아동, 청년, 중년, 노인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는 주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는 부동산 투기 근절과 주거복지 향상에 온 정책 역량을 쏟아야 한다. 신혼희망타운에 막대한 토지와 재정을 소요하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