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의 10여년 된 빌라에 사는 김아무개씨는 오는 8월 경기 김포시의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두달 전 살고 있는 집을 중개업소에 매물로 내놨다. 그러나 집을 보러오는 수요자가 없어 고민하던 중 지인의 권유로 지난달 28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본부에서 열린 ‘집주인 임대주택 사업’ 설명회에 참석했다. 김씨는 “수선 비용을 전액 지원받아 집을 깨끗하게 고친 뒤에 임대관리를 맡기는 ‘경수선형 집주인 리모델링 임대주택 사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월세 시대를 맞아 정부가 적극 지원에 나서기로 한 ‘집주인 임대주택 사업’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4월 ‘맞춤형 주거지원을 통한 주거비 경감 방안’에서 처음 선보인 ‘집주인 임대주택 사업’은 집주인에게 주택도시기금을 낮은 금리(연 1.5%)로 빌려줘 주택을 신축 또는 대수선(건설·개량 방식)하거나 매입(매입 방식)하도록 지원하고, 이를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의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제도다. 엘에이치가 최소 8년 이상 20년까지 임대관리를 맡는 대신 집주인은 공실 여부와 관계없이 엘에이치로부터 확정 월세수익을 받게 된다. 정부로선 노후 주택의 주거 수준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도심에서 시세보다 저렴한 민간 임대주택을 주거취약계층에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공공지원 민간 임대주택’의 새로운 모델로 부각됐다. 그러나 지난해 시범사업에선 집주인들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면서 공급 가구수가 64가구에 그쳤다.
국토부와 엘에이치는 시범사업의 문제점을 면밀하게 검토한 끝에 올해부터 사업 유형을 늘리고 임대료와 융자 조건을 대폭 개선하는 등 사업 구조를 확 바꾸기에 이르렀다. 먼저 집주인들의 참여를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사업 유형에 신축·매입뿐만 아니라 도배·장판·창호 교체, 단열·난방 공사, 누수·방수공사, 화장실 개량 등의 경수선(집수리)을 추가했다. 집주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건축 연수 20년 이내의 집을 수선해 임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문호를 넓힌 것이다. 또 신축(건설) 방식의 경우 다가구·다세대 주택 외 도시형 생활주택도 신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가구당 건축 면적은 지금까지 전용면적 20㎡ 이하의 원룸으로 제한하던 것을 임대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50㎡ 이하 투룸으로 확대했다. 이와 함께 엘에이치가 임차인에게 받는 임대료 수준은 시세의 80%에서 85%로 높여 수익률을 현실화했다.
주택도시기금 지원액도 대폭 늘렸다. 다가구 주택 신축 때 제공하는 기금 융자 한도를 종전 2억원에서 3억원으로, 다세대 등 공동주택의 경우에는 가구당 4천만원에서 6천만원으로 각각 증액했다.
집주인이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을 매입해 임대사업을 하는 ‘매입방식 사업’은 집주인들의 초기 투자비 부담을 줄여주는 쪽으로 개선했다. 기존에는 집주인이 주택을 매입할 때 기금 융자액(주택가격의 50%)의 60%를 엘에이치가 임대보증금으로 지원했으나 올해부터는 다가구주택에 한해서는 이를 90%로 높였다. 다가구주택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소액임차인이 입주하기 때문에 기금 융자액은 가구별 소액보증금 최우선 변제금액(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주택 경매 때 소액임차인이 최우선적으로 변제받는 금액·서울은 현재 3400만원) 합계액을 빼고 빌려주게 된다. 예컨대 다가구주택 임차가구가 3가구인 때는 주택가격이 6억원인 경우라도 50%인 3억원의 기금이 융자되는 게 아니라 소액보증금 1억200만원(3400만원×3가구)을 뺀 1억9800만원이 융자된다. 이렇게 되면 엘에이치 임대보증금 지원액은 기금 융자액의 60%인 1억1880만원이어서 융자액과 임대보증금 합계액(3억1680만원)은 집값의 절반 수준에 그치게 된다. 이에 집주인의 자기자금 부담액이 큰 다가구주택은 매입방식 임대사업이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고 이번에 개선이 이뤄진 것이다.
그밖에 집주인 임대주택 사업의 임대관리를 엘에이치가 아닌 민간 주택임대관리업체가 맡는 ‘민간제안형’ 사업도 새롭게 도입됐다. 민간제안형은 민간업체가 건설·개량이나 매입을 통해 임대사업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집주인과 개별적으로 협의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한국감정원의 사업타당성 평가를 통과하면 연 1.5% 저리 융자를 받도록 한 것이다. 민간제안형의 경우는 시세 90%의 전세, 준전세, 준월세 등 다양한 임대방식이 허용되고 단순 임대관리뿐 아니라 시공, 분양, 임대관리 등 종합부동산 서비스 제공도 가능한 게 특징이다.
업계에선 이번에 획기적으로 개선된 집주인 임대주택 사업은 그동안의 부진을 딛고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특히 새로운 사업 유형인 ‘경수선형’은 집주인들이 별도의 자기자금을 투자하지 않고도 경수선 실비를 지원받아 임대사업에 참여할 수 있어 관심이 꽤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다가구주택 신축과 매입 지원 조건도 한결 개선된데 따라 기존 단독주택을 헐고 임대용 다가구주택을 짓는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임대주택 위탁관리를 맡긴 집주인이 엘에이치로부터 받는 확정수익은 어느 정도일까? 확정수익은 임대료에서 위탁수수료(5%)와 융자금 분할상환액을 뺀 금액인데, 2년마다 세입자를 들여야 하는 등 재계약 비용, 공실 부담 등이 없기 때문에 수익률이 연 5% 이상만 돼도 상당히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에이치 주거복지지원처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 역세권에서 1억6500만원짜리 소형 아파트를 매입해 임대사업에 나선 한 집주인의 경우 기금 융자 8천만원, 엘에이치 보증금 선지급 4800만원을 지원받았고 융자 상환액, 위탁관리비 등을 제외한 확정 수익률이 연 7%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엘에이치는 지난 22일부터 전국 엘에이치 지역본부에서 올해 집주인 임대주택 사업물량 신청 접수에 들어갔다. 신축과 매입, 리모델링 방식에 관심있는 집주인은 엘에이치 ‘집주인 임대주택 사업’ 누리집(http://jipjuin.lh.or.kr)게 게시된 공고문을 참고하거나 엘에이치 콜센터(1600-1004)로 문의하면 된다. 또 한국감정원은 최근 민간 주택임대관리업체를 대상으로 ‘민간제안형’ 집주인 임대주택 사업 신청 접수에 들어갔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