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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부동산

[르포] 청약을 글로 배운 기자의 첫 아파트 분양 도전기

등록 2016-12-20 15:28수정 2016-12-20 16:21

아파트 미계약분 있다는 소식듣고 뒤늦게 달려간 추첨현장
24개 추첨하는데 700여명 몰려 주차장까지 긴 줄 늘어서
떴다방 등장…즉석에서 최대 2000만원까지 거래료 붙어
부동산 광풍이 불었던 2006년 한 아파트의 분양권 추첨 현장. 지난 17일 찾은 서울 신촌 그랑자이의 분양권 추첨 현장은 이보다 더 ‘아사리판’이었다. 사진 연합뉴스
부동산 광풍이 불었던 2006년 한 아파트의 분양권 추첨 현장. 지난 17일 찾은 서울 신촌 그랑자이의 분양권 추첨 현장은 이보다 더 ‘아사리판’이었다. 사진 연합뉴스
“나 좀 전에 아파트 청약 뽑고 왔다. 근데 거기 미계약분 있대.”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은 그렇게 열렸다. 이제 겨우 청약통장 납입 4개월차일 정도로 아파트 분양에 무심했던 나는 동료 기자의 한마디에 갈대처럼 흔들렸다. 심지어 그 기자가 뽑고 온 아파트는 서울 ‘신촌 그랑자이’. 최근 부동산 ‘잇플레이스’로 꼽히는 마포 아닌가. ‘이거 무조건 분양받아야 해!’ 마음의 소리가 쾅쾅 울렸다. 2008~2009년 부동산을 담당하며 ‘글’로만 청약을 배운 기자의 첫 분양 도전기는 이렇게 어이없는 계기로 시작됐다.

신촌 그랑자이 잔여물량 추가분양 안내문자
신촌 그랑자이 잔여물량 추가분양 안내문자
동료 기자가 보내준 ‘까톡’을 종합하면, 일단 △3000만원 △주민등록등표본 △인감증명서 △인감도장이 있어야 했다. 이 문자를 받은 시각은 16일 금요일 오후 5시30분. 주민센터는 이미 문을 닫았다. 저 서류들은 아파트 청약을 준비해온 사람이 아니라면 갖추고 있기 힘든 것들이다. 그런데 하느님이 보우하사, 집 구석구석을 뒤져보니 저 모든 서류가 내 손안에 있다! 하늘이 내게 아파트를 주기 위해 ‘우주의 기운’을 모아주고 있었다.

17일 아침 운명의 날이 밝았다. 전날 숙취로 골골대는 남편과 집을 나섰다. 확률을 높이기 위해 시어머니에게도 SOS를 보냈다. 입장 시작하기 10분 전인 오전 9시50분께 본보기집(모델하우스)에 도착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받은 당첨권 번호로 생각해 보건대, 대략 200명 넘는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눈 한번 깜박할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11·3 대책은 청약 문을 좁힌 데 이어 집단대출까지 묶었다. 내년부터 분양하는 아파트는 잔금을 대출받더라도 원금을 분할상환해야 했다. 그러니 이번이 거의 마지막 기회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마치 분양 관계자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추첨하러 오셨어요?” 물었다. 기사로만 접했던 ‘떴다방’을 영접하는 순간이었다. 11·3 부동산대책 이후 강남을 떠난 떴다방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역시 이건 되는 아파트야!’

“1층 300만원, 2층 500만원, 3층 700만원. 대신 한다고 하면 1~3층 뭐가 되든 무조건 (거래)해야 해.”

떴다방 ‘이모님’이 부른 수수료는 300만~700만원이었다. 이모님의 방식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아마도 떴다방들이 ‘심어놓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받은 번호표가 당첨되면, 잽싸게 그 번호를 우리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약을 마친 뒤, 밖으로 나와 수수료를 건네면 된다.

입장을 기다리는 10분 남짓 동안 수수료는 계속 인상됐다. 여기저기서 떴다방들이 1000만원, 1500만원을 불렀다. 좀 전에 ‘300만~700만원’을 불렀던 이모님이 다시 왔다.

“다른 사람이 1500만원까지 불렀는데 돈을 더 쓸 생각 없수?”

10시 땡! 자 선수 입장~♬♪

본보기집 뒤편으로 가니 떴다방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고 수수료를 내건 30대 남성을 보게 됐다. “당첨되기만 하면 2000만원 주겠다”는 이 남성에게 떴다방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곤 서로 먼저 이 남성과 계약했다고 우기며 기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고성은 나오지 않았다. 당첨권 거래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지금 주차장에 못 들어온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도 10시30분까지 오셨기 때문에 번호표를 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입장 마감 시간인 10시30분. GS건설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안내방송을 했다. 이때부터 경쟁자를 내치려는 처절한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 “10시30분까지 입장해야 기회 준다며! 그 사람들은 입장 못 했으니 주면 안 되지”, “괜히 아침부터 나와서 줄 섰는지 알아.”

나도 속으로 외쳤다. ‘맞아 맞아. 9시50분에 온 사람과 10시30분에 온 사람은 다르지! 야박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업체 관계자들은 아우성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지하주차장에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번호표를 나눠줬다. 700여명이 번호표를 받았다. 번호표 배부가 끝난 시각이 10시50분. 그렇다. 9시50분에 지하주차장 줄 서기를 시작해 10시15분께 본보기집에 입장한 우리 일행은 10시50분까지 성냥갑에 채워진 성냥처럼 그 자리에 꽂힌 채 자리를 지켜야 했다. 아직도 추첨은 시작되지 않았다.

2014년 대구의 아파트 분양현장. 지난 17일 그랑자이 추첨현장에서는 수요자들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오밀조밀 모여 있어야 했다. 사진 연합뉴스
2014년 대구의 아파트 분양현장. 지난 17일 그랑자이 추첨현장에서는 수요자들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오밀조밀 모여 있어야 했다. 사진 연합뉴스
“아… 이놈의 아파트가 뭐라고 이러고 있는 거야?” 푸념을 늘어놓자 침묵하던 남편이 드디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러는 자기는….”

11시15분이 되자 추첨통이 등장했다. 통에서 후광이 비쳤다. “진행 방식 안내하겠습니다. 물량은 24개입니다. 번호를 뽑고, 당첨자의 계약금 입금이 확인되면 다음 번호를 뽑겠습니다.”

추첨통을 마주한 기쁨도 잠시. 후광이 금세 사라졌다. 여기저기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지하주차장에서부터 2시간 가까이 기다린 이들에게 더 이상 인내심은 없었다. 그 아우성들을 정리하면 이렇다.

고객1: 그 시간 언제 기다립니까. 그냥 24개 한꺼번에 뽑아서 다 불러요. 안 되는 사람은 가게.

분양사: 그러다 그분이 계약 안 하면 어떻게 합니까?

고객2: 그럼 예비번호까지 40개 불러.

고객3: 여기 오는 사람이 계약금도 안 가져왔겠어?

고객4: 그래 지친다. 목말라. 물도 안 주면서.

고객5: 떨어진 사람은 가서 밥이라도 먹읍시다! (와~ 이 말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내 생각에도 (나를 포함한) ‘고객’들의 주장이 합리적이었다. 물론 분양사는 이 모든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고, 오직 분양 100%를 위해 당첨자가 계약금을 입금한 다음에야 다음 번호를 추첨했다. 그리고 한 명씩 번호가 추첨될 때마다 “그냥 한꺼번에 뽑으라고!”라는 아우성 레퍼토리는 반복됐다.

뒷날 누리집에는 한 고객이 이런 참관기를 남겼다. ‘다들 현금 3000 이상씩 들고 온 사람들인데 시장에 떨이 상품 사러 온 고객보다 더 푸대접받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집보다 10배는 싼 자동차를 보러 가도 차 한잔은 주는데…’ 맞다. 우리는 그런 대접을 받았다.

첫 당첨자는 노부부였다. 어르신 두 분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가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고~ 말년에 복 뽑으셨네”와 같은…. 번호는 100번대였다. 그리고 줄줄이 400번대가 뽑혔다. “계속 400번이네. 통 좀 섞어~” 이번엔 또 다른 음모론이 제기됐다. “섞어서 뽑고 있다”면서도 분양사는 보란 듯이 다시 번호를 섞었다. 아주 오래 섞었다. 마치 문제 제기를 하면 기다리는 시간만 길어질 뿐이라는 걸 학습시키려는 듯. 물론 학습은 이뤄지지 않았다.

“68번”

“아이고 아까워라~” 번호가 불리자 옆에 있던 떴다방 이모님이 무릎을 쳤다. 이모님이 가지고 있던 번호는 67, 69, 70번. “아 진짜 아깝네요~” 나도 함께 무릎을 쳤다. 그사이 내 옆에 있던 사람과 내 뒤에 앉은 사람이 나란히 아파트를 가져갔다. ‘오 여기가 명당인가봐. 왠지 다음번엔 나일 거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많았다. 내 옆자리 쟁탈전이 벌어졌다.

남은 자리가 줄어들수록 인내심도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냥 나갈까 싶었지만, 마지막 번호가 내 것일 수도 있다는 미련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다 부른 거 같은데…”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아니야~ 지금 계속 추첨하잖아.” 나는 현실을 부정했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지금 몇 개 남았어요?”

“24개 뽑았고, 지금 예비로 하나 더 뽑아 25번째 사람이 대기 중입니다.”

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람들은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욕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 뽑았으면 다 뽑았다고 알려줘야지. 뭐하는 거야”, “여기 오면서 돈도 안 가져왔겠어?”, “GS건설은 대기업이라면서 일 처리가 왜 이따위야?”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혹시 포기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기다려볼까 했지만, 인내심은 이미 바닥이었다.

떴다방들도 모두 실패했다. 24개는 모두 실제 구매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우주의 기운을 믿었던 나는 어느새 현실주의자로 돌아와 있었다. 우연히 얻은 정보 하나에 요행을 바라고 이곳에 온 것부터가 잘못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떴다방도 안 됐는데, 내가 될 리 있겠어.’

월요일 회사로 출근해 동료들에게 ‘패잔병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때 한 동료가 말했다. “그럴 땐 ‘금손’을 데리고 가야지. 내 옆에 조OO 선배가 금손이야. 어떤 당첨도 그의 손을 그냥 빠져나갈 수 없지.”

철저히 준비해 다시 청약에 도전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래, 밥 한 끼 사주고, 다음 분양권 추첨 때는 조 선배를 데려가야겠어.’

그나저나 대한민국에서 집 사기 참~ 어렵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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