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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배는 정당, 10배는 부당’…‘알박기’ 판결 논란

등록 2005-11-06 17:02수정 2005-11-06 17:15

재개발예정지의 땅을 사서 개발을 방해하며 건설사에 비싸게 팔아넘기는 이른바 ‘알박기’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판결이 엇갈려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뉴타운 선정 지역의 부동산 중개업소. 연합
재개발예정지의 땅을 사서 개발을 방해하며 건설사에 비싸게 팔아넘기는 이른바 ‘알박기’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판결이 엇갈려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뉴타운 선정 지역의 부동산 중개업소. 연합
처벌 규정 법률 조항 모호, 헷갈리는 판결 잇따라
“내 땅 갖고 내가 비싸게 팔겠다는데 뭐가 문제죠?”

재개발예정지의 땅을 사서 개발을 방해하며 건설사에 비싸게 팔아넘기는 이른바 ‘알박기’가 사회적 문제가 된 지는 오래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결이 엇갈리면서 알박기를 처벌하는 정확한 규정이 무엇이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시가 8억4천만원짜리 아파트를 44억원에 매각한 혐의로 권아무개(58)씨가 구속된데 이어, 펼친 신문지 넓이(0.2평)의 땅으로 7억여원을 챙긴 김아무개(43)씨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달 4억5천만원짜리 땅을 40억원에 판 노아무개(54)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단순한 계산으로 따져볼 때, 8억4천만원짜리 땅 44억원에 판 사람은 구속되고 4억5천만원짜리 땅 40억원에 판 사람은 무죄 판결을 받는 모순이 발생한 셈이다.

논란이 생기는 원인은 알박기 처벌을 규정한 법률 조항의 표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현행법 상 알박기를 할 경우 형법인 부당이득죄로 처벌받게 된다. 형법 제349조는 ‘사람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현저하게 부당한 이익을 취득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중 ‘궁박한 상태’와 ‘현저하게 부당한 이익’이라는 말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 문제가 되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도 “알박기 처벌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시민들은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네이버 뉴스에 올라온 알박기 관련 기사 댓글에서 네티즌 ‘필링1994’는 “싼값에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인데, 알박기로 이득을 남겼다고 처벌하는 것이 옳으냐”고 따졌다. 또 다른 네티즌 ‘룩스코리아21’도 “사기·강박을 이용해 얻은 폭리도 아닌데 이런 것도 권리남용이고 부당이득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다”며 “건설회사의 장삿속까지 법이 챙겨주나. 건설회사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걸. 기한 내에 못 사서 아파트 못 짓는 것도 건설회사의 능력이고, 돈 왕창 안겨주는 것도 건설회사의 능력의 문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네티즌 ‘크하하’는 “5배 남기면 정당한 이익이고, 10배 남기면 부당하냐”고 물은 뒤 “이참에 물가상승률과 시가 등을 반영해 몇 배 이상 차익을 남겨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지난 2월 수도권 인근 재개발 지역에 강제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
지난 2월 수도권 인근 재개발 지역에 강제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형법상 부당이득이라는 것이 사실상 백지규정이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판례를 보면 단순히 몇 배의 차익을 남겼느냐 하는 것은 유·무죄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토지의 구입시기·보유기간 및 개발예정지라는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느냐의 정보접근성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해 투기를 위한 ‘고의성 여부’가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알박기 현상이 최근에야 나타난 현상”이라며 “판례가 축적되면 몇 배 이상의 이익은 처벌된다는 규정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설교통부는 고가의 보상을 노린 알박기에 의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지자, 지난 3월부터 알박기 근절방안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시행해왔다. 개정안에는 알박기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사업시행자에게 매도 청구권을 부여하고 필요할 경우 민사소송을 통해 매매계약을 강제로 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매도청구권의 남용을 막기 위해 90% 이상의 토지를 확보하고 매수 상대방과 석 달 이상 사전협의를 거쳐 지구단위계획 결정 절차를 마치는 등의 요건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구단위계획구역 결정고시일 3년 이전부터 대지 소유권을 확보한 경우에는 매도청구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규정해놓고 있어 사실상 있으나마나 한 조항이라는 불만도 제기돼 왔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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