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에스(GS)건설은 이달 경기 평택시 동삭동에 분양할 아파트의 이름을 ‘자이(Xi) 더 익스프레스(Express)’로 정했다. 이 회사의 아파트 브랜드 ‘자이’ 뒤에 ‘급행열차’란 뜻을 지닌 ‘익스프레스’를 붙인 것은 사업 터가 수서발 고속철도 예정역인 평택지제역으로부터 2.5㎞ 거리로 가깝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애초에는 이름 뒤에 ‘케이티엑스’(KTX)를 넣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상표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익스프레스’로 결론났다.
건설사들의 아파트 ‘이름짓기’(네이밍)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종전에는 ‘○○동 래미안’, ‘○○동 푸르지오’ 등과 같이 지역 명칭에 아파트 고유 브랜드를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해당 아파트의 위치, 특징을 한꺼번에 연상할 수 있도록 브랜드와 함께 애칭인 ‘펫네임’(pet name)을 붙이는 게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건설사 아파트 ‘이름짓기’ 진화 거듭
단순 지역명 탈피…특징 연상 이름도 ‘○○광안비치’ 등 애칭 ‘펫네임’ 유행
건축적 요소 강조한 ‘테라스’·‘첼리투스’ 미국 발행 잡지이름서 따온 ‘더 킨포크’
초고층 ‘트리마제’(Trimage), 무슨 뜻? 1999년 ‘래미안’ ‘e-편한세상’ 상표 출원
‘아크로’ ‘서밋’…고급아파트 별도 브랜드 공동시공 단지, 일반아파트와 작명 달라
‘래미안·푸르지오’, 송파 ‘헬리오시티’ 대림산업이 지난달 부산 수영구 민락동에 선보인 ‘이(e)편한세상 광안비치’는 광안대교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광안비치’라는 애칭을 달았다. 앞서 포스코건설이 경기 하남시 미사강변도시에 내놓은 ‘미사강변도시 더샵 리버포레’는 이 회사 아파트 브랜드인 ‘더샵’ 뒤에 강(River)과 숲(Forest)의 합성어를 내세워 한강수변공원을 연상시키게끔 만들었다. 한라건설은 시흥 배곧새도시에 분양하는 아파트 단지 옆에 서울대 글로벌캠퍼스가 들어서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시흥배곧 한라비발디 캠퍼스’라는 이름을 짓기도 했다. 그밖에도 ‘파크·그린’(공원), ‘에듀·아이비’(학교·교육), ‘센트럴·시티’(중앙·대규모) 등이 최근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인기 애칭들이다. 또 ‘북한산 푸르지오’, ‘백련산 힐스테이트’, ‘한강센트럴자이’ 등처럼 지역명 대신 인접한 산이나 강의 이름을 붙이거나, 지하철역에 인접해 있는 입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광명역 호반베르디움’, ‘위례 우남역 푸르지오’ 등처럼 역이름을 넣는 경우도 많다. 주변의 입지·환경이 아니라 상품 자체의 건축적인 요소를 애칭으로 쓰는 주택도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라스’다. 경기 광교새도시에 분양 중인 ‘e편한세상 테라스 광교’와 이달 분양 예정인 ‘광교자이 더 테라스’ 등은 최근 유행하는 테라스하우스 설계를 도입한 연립주택 단지다. 지난 5월 지에스건설이 청라지구에 선보인 ‘청라 자이 더 테라스’가 청약률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깨고 1순위에서 평균 9.4 대 1의 경쟁률로 흥행에 성공한 뒤 ‘테라스’에 대한 선호도가 부쩍 높아졌다. 삼성물산이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변에 오는 10월 완공 예정인 ‘래미안 이촌 첼리투스’는 아파트의 높이를 강조한 경우다. ‘첼리투스’는 ‘하늘로부터’라는 뜻의 라틴어로, 이 아파트가 현재 한강변에서 가장 높은 56층(높이 200m)이라는 점에 착안해 지은 이름이다. 입지나 건축적 특성에서 벗어나 그 집에 살게 될 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생활양식)을 담은 독특한 애칭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중견 건설사 한양건설은 경기 용인시 신봉동에 공급하는 타운하우스 단지명을 ‘광교산 한양수자인 더 킨포크’로 정했다. 여기서 ‘킨포크’(kinfolk)는 미국 북서부의 중소도시 포틀랜드에서 발행되는 잡지 <킨포크>에서 따온 것으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느리고 여유로운 자연 속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영어로 ‘친척, 친족 등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이며, 텃밭에서 직접 수확한 유기농 식재료로 친환경 밥상을 차리고 이웃들과 담장을 허물고 거리낌 없이 식사를 나누어 먹는 라이프스타일을 ‘킨포크 라이프’라고 부른다. 삼성물산이 서울 마포구 현석동에 짓는 ‘래미안 마포 웰스트림’은 ‘웰빙’(well-being·심신의 안녕과 행복)과 ‘스트림’(stream·계속되다)의 합성어인 ‘웰스트림’을 통해 ‘건강과 행복이 흘러넘치는 웰빙 단지’를 추구한다는 뜻을 담았다. 아이에스동서가 경기 하남시 현안2지구에 짓는 ‘하남 유니온시티 에일린의 뜰’은 단지 바로 앞에 들어서는 수도권 최대 규모 복합쇼핑몰인 유니온스퀘어(2016년 완공 예정) 중심의 생활권을 부각시키는 애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두산중공업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에 짓고 있는 초고층 아파트 ‘트리마제’(Trimage)는 3개라는 뜻의 영어 접두어 ‘트리’(tri)와 인상을 의미하는 단어 ‘이미지’(image)를 합친 신조어다. 두산중공업 쪽은 “파노라마 조망, 프리미엄 시설, 호텔식 서비스 등 3가지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이름”이라며 “기존 아파트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주거생활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전했다. 주택 마케팅전문회사 내외주건의 김신조 사장은 “최근 유행하는 아파트 펫네임은 산과 강, 지하철역 등을 강조한 ‘입지·환경형’, 테라스 같은 건축 양식을 강조한 ‘건축특성형’, 입주민의 생활양식을 담은 ‘라이프스타일형’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아파트에 브랜드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그 이전까지는 ‘압구정 현대아파트’처럼 지역명과 건설사 이름을 붙였으나 1998년 아파트 분양가가 자율화된 뒤 대형 건설사들이 앞다퉈 아파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브랜드 경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1998~99년 당시 사이버아파트, 쉐르빌, 타워팰리스, 트럼프월드 같은 아파트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지만, 본격적인 브랜드 시대가 개막된 원년은 2000년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업계 처음으로 ‘래미안’이라는 아파트 브랜드(BI) 선포식을 열었으며, 대림산업이 용인시 보정동에서 ‘e-편한세상’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선보인 것도 이때다. 상표권은 1999년 10월26일에 출원된 래미안이 2000년 1월13일 출원된 e-편한세상보다 석 달가량 앞섰다. 이후 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 지에스건설의 ‘자이’,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포스코건설의 ‘더샵’ 등 대형 건설사들의 브랜드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아파트 브랜드 전성시대가 열렸다. 최근 일부 대형 건설사들은 고급 아파트에 따로 붙이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들어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대림산업의 ‘아크로’(Acro), 대우건설의 ‘서밋’(Summit) 등이 대표적 사례다. 대림산업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1차를 재건축해 짓는 ‘신반포 아크로리버파크’는 ‘아크로’라는 브랜드명에 강변 입지를 강조한 ‘리버파크’를 붙인 것이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공급한 ‘용산 푸르지오 서밋’과 ‘서초 푸르지오 서밋’에 이어 오는 9월 반포동 서초삼호가든4차를 재건축한 ‘반포센트럴 푸르지오 서밋’을 선보일 예정이다. 현대건설은 지난달 20일 시공사로 선정된 반포동 삼호가든맨션3차 재건축 아파트에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 ‘더 에이치(H)’를 사용할 계획이다. 현대건설은 ‘더 에이치’를 기존 ‘힐스테이트’와 차별화된 고급 아파트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중견 건설사 가운데서도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아파트 브랜드를 시장에 안착시킨 업체들이 적지 않다. 호반건설의 ‘베르디움’, 반도건설의 ‘유보라’, 우미건설의 ‘우미린’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반도건설은 최근 화성동탄2새도시, 의정부 민락2지구, 송산지구 등에서 자녀 교육 친화단지를 강조한 펫네임 ‘아이비파크’를 잇달아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2곳 이상의 건설사들이 컨소시엄을 이뤄 공동으로 시공한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경우 일반 아파트와는 작명법이 다르다. ‘마포 래미안·푸르지오’처럼 각 건설사 아파트 브랜드를 나란히 쓰는 경우도 있지만, 해당 단지에만 붙이는 별도의 브랜드를 만드는 게 보통이다. 지에스건설, 대림산업, 삼성물산, 현대산업개발이 공동으로 서울 성동구 왕십리 뉴타운1구역에 지은 ‘텐즈힐’(Tens Hill)은 ‘교통’(Traffic), ‘탁월함’(Excellence), ‘자연’(Nature), ‘청계천’(Stream)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이런 공동시공 아파트 브랜드의 원조 격은 2008년 전후에 입주한 서울 송파구 잠실 재건축 단지로, 당시 트리지움(옛 주공3단지), 엘스(주공1단지), 리센츠(주공2단지), 파크리오(잠실시영) 등이 유명세를 떨쳤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이 9월께 분양 예정인 송파구 가락시영 재건축 단지(전용면적 39~130㎡, 9510가구)는 국내 최대 규모 아파트라는 상징성을 담아 ‘헬리오시티’(태양의 도시)로 이름 붙여질 예정이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우리 아파트 이름 바꿔달라”…까다로워진 개명 절차 과거 시공사 동의 받아 외벽 이름 교체 지금은 지방자치단체가 승인 여부 심의 “관심 끌어 분양가에 영향, 가격은 글쎄” 중견 주택업체 부영은 오는 12월 위례 새도시에 완공 예정인 아파트에 이 회사 브랜드 ‘사랑으로’ 대신 다른 이름을 만들어 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위례 아파트 외벽에 ‘사랑으로 부영’이라는 브랜드 로고를 붙였는데, 지난달 현장을 둘러본 입주자들이 아파트 이름 교체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4만여가구가 들어서는 위례 새도시에선 공공분양이나 임대아파트도 세련된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데, 중대형 분양 아파트인 부영의 ‘사랑으로 부영’과 원앙새 모양의 브랜드 이미지(BI)는 시대에 뒤처진다는 게 입주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한 입주 예정자는 전했다. 서울 서초구 내곡지구의 공공분양주택인 내곡1단지 아파트의 이름은 ‘서초 더샵포레’지만 지난해 말 입주 때는 ‘서초포레스타’였다. 사업자인 에스에이치(SH)공사는 애초 ‘망경타운’ 또는 ‘해밀리지’로 이름을 쓰려 했다가 입주를 앞두고 주민들이 요구한 ‘서초포레스타’로 바꿔준 뒤 입주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이 다시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의 브랜드 ‘더샵’을 아파트명에 끼워 넣어달라고 민원을 제기해 건설사 동의를 얻어낸 끝에 ‘서초 더샵포레’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아파트 외벽, 엘리베이터, 세대 입구에 이미 붙었던 브랜드 로고를 교체하는 데만 3000만원을 들였다. 아파트 이름에서 지역 명칭을 바꾸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북가좌동 가재울뉴타운에 들어선 ‘가재울 래미안 이(e)편한세상’ 주민들은 입주한 뒤 ‘가재울’ 대신 인근 상암동에 조성된 ‘디지털미디어시티’(DMC)로 교체해 단지 이름을 ‘DMC 래미안 e편한세상’으로 바꿨다. 인근 수색동에 있는 ‘수색자이’도 ‘DMC 자이’로 지역 이름을 바꿔 달았다. 디지털미디어시티가 이 동네의 옛 이름인 가재울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다는 게 이유다. 주민들이 아파트 이름을 개명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가장 손쉬운 길은 건축물의 ‘호적’인 건축물관리대장은 손대지 않고 아파트 외벽 등에 이름만 바꿔 붙이는 것이다. 건설사의 브랜드 관리가 엄격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아파트 주민들이 시공사 동의를 받아 옛 브랜드를 최신 브랜드로 바꿔 다는 것도 유행했다. 이 때문에 아파트 외벽의 명칭과 건축물관리대장의 실제 명칭이 다른 아파트도 수두룩하다. 지금은 시공사의 동의를 얻기 어려운 브랜드를 제외하고라도 기존 아파트 이름을 공식적으로 바꾸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주민들의 청원이 있는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승인 여부를 심의하는데, 공동주택인 아파트의 특성상 집주인 100% 동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승인을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공공 임대아파트가 분양으로 전환하는 경우 등 이름을 바꿔야 할 타당한 이유가 생긴 때는 개명이 허용되는 사례가 많다. 자치단체가 개명을 승인해 건축물관리대장의 아파트명이 바뀌면, 변경 등기를 신청해 법원에서 등기부등본상 이름을 바꾸는 게 가능해진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브랜드와 아파트 명칭에 민감한 것은, 인지도가 높아지는 데 따라 주택 거래 시장에서도 더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랜드나 이름에 따른 주택 매맷값 차이가 실증된 사례는 거의 없다. 김규정 엔에이치(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브랜드와 펫네임은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고 청약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어 분양가에 영향을 끼친다”며 “그러나 기존 아파트가 단순히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서 매맷값에 영향을 준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단순 지역명 탈피…특징 연상 이름도 ‘○○광안비치’ 등 애칭 ‘펫네임’ 유행
건축적 요소 강조한 ‘테라스’·‘첼리투스’ 미국 발행 잡지이름서 따온 ‘더 킨포크’
초고층 ‘트리마제’(Trimage), 무슨 뜻? 1999년 ‘래미안’ ‘e-편한세상’ 상표 출원
‘아크로’ ‘서밋’…고급아파트 별도 브랜드 공동시공 단지, 일반아파트와 작명 달라
‘래미안·푸르지오’, 송파 ‘헬리오시티’ 대림산업이 지난달 부산 수영구 민락동에 선보인 ‘이(e)편한세상 광안비치’는 광안대교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광안비치’라는 애칭을 달았다. 앞서 포스코건설이 경기 하남시 미사강변도시에 내놓은 ‘미사강변도시 더샵 리버포레’는 이 회사 아파트 브랜드인 ‘더샵’ 뒤에 강(River)과 숲(Forest)의 합성어를 내세워 한강수변공원을 연상시키게끔 만들었다. 한라건설은 시흥 배곧새도시에 분양하는 아파트 단지 옆에 서울대 글로벌캠퍼스가 들어서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시흥배곧 한라비발디 캠퍼스’라는 이름을 짓기도 했다. 그밖에도 ‘파크·그린’(공원), ‘에듀·아이비’(학교·교육), ‘센트럴·시티’(중앙·대규모) 등이 최근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인기 애칭들이다. 또 ‘북한산 푸르지오’, ‘백련산 힐스테이트’, ‘한강센트럴자이’ 등처럼 지역명 대신 인접한 산이나 강의 이름을 붙이거나, 지하철역에 인접해 있는 입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광명역 호반베르디움’, ‘위례 우남역 푸르지오’ 등처럼 역이름을 넣는 경우도 많다. 주변의 입지·환경이 아니라 상품 자체의 건축적인 요소를 애칭으로 쓰는 주택도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라스’다. 경기 광교새도시에 분양 중인 ‘e편한세상 테라스 광교’와 이달 분양 예정인 ‘광교자이 더 테라스’ 등은 최근 유행하는 테라스하우스 설계를 도입한 연립주택 단지다. 지난 5월 지에스건설이 청라지구에 선보인 ‘청라 자이 더 테라스’가 청약률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깨고 1순위에서 평균 9.4 대 1의 경쟁률로 흥행에 성공한 뒤 ‘테라스’에 대한 선호도가 부쩍 높아졌다. 삼성물산이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변에 오는 10월 완공 예정인 ‘래미안 이촌 첼리투스’는 아파트의 높이를 강조한 경우다. ‘첼리투스’는 ‘하늘로부터’라는 뜻의 라틴어로, 이 아파트가 현재 한강변에서 가장 높은 56층(높이 200m)이라는 점에 착안해 지은 이름이다. 입지나 건축적 특성에서 벗어나 그 집에 살게 될 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생활양식)을 담은 독특한 애칭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중견 건설사 한양건설은 경기 용인시 신봉동에 공급하는 타운하우스 단지명을 ‘광교산 한양수자인 더 킨포크’로 정했다. 여기서 ‘킨포크’(kinfolk)는 미국 북서부의 중소도시 포틀랜드에서 발행되는 잡지 <킨포크>에서 따온 것으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느리고 여유로운 자연 속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영어로 ‘친척, 친족 등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이며, 텃밭에서 직접 수확한 유기농 식재료로 친환경 밥상을 차리고 이웃들과 담장을 허물고 거리낌 없이 식사를 나누어 먹는 라이프스타일을 ‘킨포크 라이프’라고 부른다. 삼성물산이 서울 마포구 현석동에 짓는 ‘래미안 마포 웰스트림’은 ‘웰빙’(well-being·심신의 안녕과 행복)과 ‘스트림’(stream·계속되다)의 합성어인 ‘웰스트림’을 통해 ‘건강과 행복이 흘러넘치는 웰빙 단지’를 추구한다는 뜻을 담았다. 아이에스동서가 경기 하남시 현안2지구에 짓는 ‘하남 유니온시티 에일린의 뜰’은 단지 바로 앞에 들어서는 수도권 최대 규모 복합쇼핑몰인 유니온스퀘어(2016년 완공 예정) 중심의 생활권을 부각시키는 애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두산중공업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에 짓고 있는 초고층 아파트 ‘트리마제’(Trimage)는 3개라는 뜻의 영어 접두어 ‘트리’(tri)와 인상을 의미하는 단어 ‘이미지’(image)를 합친 신조어다. 두산중공업 쪽은 “파노라마 조망, 프리미엄 시설, 호텔식 서비스 등 3가지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이름”이라며 “기존 아파트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주거생활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전했다. 주택 마케팅전문회사 내외주건의 김신조 사장은 “최근 유행하는 아파트 펫네임은 산과 강, 지하철역 등을 강조한 ‘입지·환경형’, 테라스 같은 건축 양식을 강조한 ‘건축특성형’, 입주민의 생활양식을 담은 ‘라이프스타일형’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아파트에 브랜드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그 이전까지는 ‘압구정 현대아파트’처럼 지역명과 건설사 이름을 붙였으나 1998년 아파트 분양가가 자율화된 뒤 대형 건설사들이 앞다퉈 아파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브랜드 경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1998~99년 당시 사이버아파트, 쉐르빌, 타워팰리스, 트럼프월드 같은 아파트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지만, 본격적인 브랜드 시대가 개막된 원년은 2000년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업계 처음으로 ‘래미안’이라는 아파트 브랜드(BI) 선포식을 열었으며, 대림산업이 용인시 보정동에서 ‘e-편한세상’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선보인 것도 이때다. 상표권은 1999년 10월26일에 출원된 래미안이 2000년 1월13일 출원된 e-편한세상보다 석 달가량 앞섰다. 이후 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 지에스건설의 ‘자이’,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포스코건설의 ‘더샵’ 등 대형 건설사들의 브랜드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아파트 브랜드 전성시대가 열렸다. 최근 일부 대형 건설사들은 고급 아파트에 따로 붙이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들어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대림산업의 ‘아크로’(Acro), 대우건설의 ‘서밋’(Summit) 등이 대표적 사례다. 대림산업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1차를 재건축해 짓는 ‘신반포 아크로리버파크’는 ‘아크로’라는 브랜드명에 강변 입지를 강조한 ‘리버파크’를 붙인 것이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공급한 ‘용산 푸르지오 서밋’과 ‘서초 푸르지오 서밋’에 이어 오는 9월 반포동 서초삼호가든4차를 재건축한 ‘반포센트럴 푸르지오 서밋’을 선보일 예정이다. 현대건설은 지난달 20일 시공사로 선정된 반포동 삼호가든맨션3차 재건축 아파트에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 ‘더 에이치(H)’를 사용할 계획이다. 현대건설은 ‘더 에이치’를 기존 ‘힐스테이트’와 차별화된 고급 아파트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중견 건설사 가운데서도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아파트 브랜드를 시장에 안착시킨 업체들이 적지 않다. 호반건설의 ‘베르디움’, 반도건설의 ‘유보라’, 우미건설의 ‘우미린’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반도건설은 최근 화성동탄2새도시, 의정부 민락2지구, 송산지구 등에서 자녀 교육 친화단지를 강조한 펫네임 ‘아이비파크’를 잇달아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2곳 이상의 건설사들이 컨소시엄을 이뤄 공동으로 시공한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경우 일반 아파트와는 작명법이 다르다. ‘마포 래미안·푸르지오’처럼 각 건설사 아파트 브랜드를 나란히 쓰는 경우도 있지만, 해당 단지에만 붙이는 별도의 브랜드를 만드는 게 보통이다. 지에스건설, 대림산업, 삼성물산, 현대산업개발이 공동으로 서울 성동구 왕십리 뉴타운1구역에 지은 ‘텐즈힐’(Tens Hill)은 ‘교통’(Traffic), ‘탁월함’(Excellence), ‘자연’(Nature), ‘청계천’(Stream)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이런 공동시공 아파트 브랜드의 원조 격은 2008년 전후에 입주한 서울 송파구 잠실 재건축 단지로, 당시 트리지움(옛 주공3단지), 엘스(주공1단지), 리센츠(주공2단지), 파크리오(잠실시영) 등이 유명세를 떨쳤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이 9월께 분양 예정인 송파구 가락시영 재건축 단지(전용면적 39~130㎡, 9510가구)는 국내 최대 규모 아파트라는 상징성을 담아 ‘헬리오시티’(태양의 도시)로 이름 붙여질 예정이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우리 아파트 이름 바꿔달라”…까다로워진 개명 절차 과거 시공사 동의 받아 외벽 이름 교체 지금은 지방자치단체가 승인 여부 심의 “관심 끌어 분양가에 영향, 가격은 글쎄” 중견 주택업체 부영은 오는 12월 위례 새도시에 완공 예정인 아파트에 이 회사 브랜드 ‘사랑으로’ 대신 다른 이름을 만들어 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위례 아파트 외벽에 ‘사랑으로 부영’이라는 브랜드 로고를 붙였는데, 지난달 현장을 둘러본 입주자들이 아파트 이름 교체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4만여가구가 들어서는 위례 새도시에선 공공분양이나 임대아파트도 세련된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데, 중대형 분양 아파트인 부영의 ‘사랑으로 부영’과 원앙새 모양의 브랜드 이미지(BI)는 시대에 뒤처진다는 게 입주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한 입주 예정자는 전했다. 서울 서초구 내곡지구의 공공분양주택인 내곡1단지 아파트의 이름은 ‘서초 더샵포레’지만 지난해 말 입주 때는 ‘서초포레스타’였다. 사업자인 에스에이치(SH)공사는 애초 ‘망경타운’ 또는 ‘해밀리지’로 이름을 쓰려 했다가 입주를 앞두고 주민들이 요구한 ‘서초포레스타’로 바꿔준 뒤 입주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이 다시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의 브랜드 ‘더샵’을 아파트명에 끼워 넣어달라고 민원을 제기해 건설사 동의를 얻어낸 끝에 ‘서초 더샵포레’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아파트 외벽, 엘리베이터, 세대 입구에 이미 붙었던 브랜드 로고를 교체하는 데만 3000만원을 들였다. 아파트 이름에서 지역 명칭을 바꾸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북가좌동 가재울뉴타운에 들어선 ‘가재울 래미안 이(e)편한세상’ 주민들은 입주한 뒤 ‘가재울’ 대신 인근 상암동에 조성된 ‘디지털미디어시티’(DMC)로 교체해 단지 이름을 ‘DMC 래미안 e편한세상’으로 바꿨다. 인근 수색동에 있는 ‘수색자이’도 ‘DMC 자이’로 지역 이름을 바꿔 달았다. 디지털미디어시티가 이 동네의 옛 이름인 가재울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다는 게 이유다. 주민들이 아파트 이름을 개명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가장 손쉬운 길은 건축물의 ‘호적’인 건축물관리대장은 손대지 않고 아파트 외벽 등에 이름만 바꿔 붙이는 것이다. 건설사의 브랜드 관리가 엄격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아파트 주민들이 시공사 동의를 받아 옛 브랜드를 최신 브랜드로 바꿔 다는 것도 유행했다. 이 때문에 아파트 외벽의 명칭과 건축물관리대장의 실제 명칭이 다른 아파트도 수두룩하다. 지금은 시공사의 동의를 얻기 어려운 브랜드를 제외하고라도 기존 아파트 이름을 공식적으로 바꾸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주민들의 청원이 있는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승인 여부를 심의하는데, 공동주택인 아파트의 특성상 집주인 100% 동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승인을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공공 임대아파트가 분양으로 전환하는 경우 등 이름을 바꿔야 할 타당한 이유가 생긴 때는 개명이 허용되는 사례가 많다. 자치단체가 개명을 승인해 건축물관리대장의 아파트명이 바뀌면, 변경 등기를 신청해 법원에서 등기부등본상 이름을 바꾸는 게 가능해진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브랜드와 아파트 명칭에 민감한 것은, 인지도가 높아지는 데 따라 주택 거래 시장에서도 더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랜드나 이름에 따른 주택 매맷값 차이가 실증된 사례는 거의 없다. 김규정 엔에이치(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브랜드와 펫네임은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고 청약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어 분양가에 영향을 끼친다”며 “그러나 기존 아파트가 단순히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서 매맷값에 영향을 준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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