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28일 오후 각종 전월세물 시세판이 붙어 있다. 최근 가을 이사철을 맞아 서울 시내 주요 아파트 단지마다 전세 매물이 급감하고 월세 매물만 넘쳐나는 수급 불균형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최근 전세난의 근본적 원인은 세입자들이 전세를 찾는 수요는 여전히 많은 데 반해 집주인들이 월세로 전환하면서 전세 공급 물량은 빠르게 줄어드는 이른바 ‘임대차 수급 불일치’에 있다는 게 주택시장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국감정원 조사를 보면, 전국의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8월 34.0%에서 지난 8월 40.1%로 높아졌다. 전세 비중은 그만큼 낮아진 셈이다.
이처럼 임대차 계약 형태 가운데 전세가 줄어들고 월세가 늘어나는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시장에서 집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꺾인 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과거에는 전세를 끼고 집을 구입한 뒤 집값이 뛰었을 때의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투자자가 많았고, 이들이 주택시장에서 일종의 ‘전세 공급자’로서 기능했으나 현재는 이런 전세 공급 체계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저금리 지속과 제도권 금융 발달도 전세의 월세 전환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금리가 낮을수록 집주인으로선 기존 전세금을 빼주고 계약을 월세로 돌리는 것이 훨씬 더 이익이 된다. 이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은행예금으로 넣고 있을 때뿐만 아니라 부채로 안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집주인은 연 3~4%의 대출 이율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내준 뒤, 대출이자를 물고 월세를 받아도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집주인들과는 정반대로 세입자들 처지에서는 매달 지출이 이뤄지는 월세에 대한 거부감이 아직까지 강한 편이다. 거주비용을 비교했을 때 여전히 전세가 월세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도 전세를 선호하게 만드는 주요인이다.
이런 거주비용의 불균형은 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되는 이자율인 ‘전월세 전환율’이 시중금리보다 훨씬 높은 데서 기인한다. 최근 한국감정원 조사에서 서울지역 아파트의 전월세 전환율은 5.8%로 나타났으며, 권역별로 강남권역 5.6%, 강북권역 5.9%로 강북이 강남보다 0.3%포인트 높았다. 이런 전월세 전환율은 현재 은행 정기예금 이자율(평균 2.4%)보다 갑절 이상 높다. 또 최근 몇년새 집값이 안정되기는 했지만 소득에 견줘선 여전히 가격 수준이 높아 세입자들이 빚을 내 구입하기는 여러모로 부담스럽다는 점도 이들을 전세시장에 머물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들어 잇달아 나온 정부의 주택정책이 전세난을 더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지난 2월 야심차게 발표했던 ‘2·26 주택임대차 시장 선진화 방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당시 월세 임차인 세액공제를 도입하면서 이로 인해 소득이 노출되는 월세임대소득자에 대해 과세를 정상화하기로 했다가, 월세임대소득자들이 “세금폭탄을 맞느니 차라리 임대하던 집을 팔거나 전세로 돌리겠다”며 반발하자 일주일 만에 후퇴한 바 있다. 과세 시기를 2016년으로 연기했고, 2주택 이하로 주택임대소득이 2000만원 이하인 사람은 14%의 단일세율로 과세하기로 해 세금 부담을 줄여줬다. 정부로선 집주인들의 불안감이 부동산시장 경색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한 데 따른 것이지만, 정부가 애초 밝힌 원칙적 과세 방침을 밀고 나갔다면 전세의 월세 전환 속도를 상당히 늦추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나온 ‘9·1 부동산 대책’의 경우 부동산 경기 부양과 매매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었지만 전월세 시장에 악영향을 끼친 측면도 없지 않다. 정부는 아파트의 재건축 가능 연한을 앞당기고 소형 의무 비율을 완화해 재건축 사업 활성화를 기대했으나 시장에서는 재건축으로 인해 주변 전셋값이 연쇄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내년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만 올해의 갑절가량인 1만5000여가구가 재건축 사업에 따라 이주를 시작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강남권에서는 세입자들이 높은 값을 주더라도 전세를 앞당겨 계약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월세시장 안정을 위해선 전세의 월세 전환 속도를 늦추는 방향으로 임대차시장을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저금리로 인해 중소형 저가주택을 중심으로 예상보다 빨리 ‘전세 소멸’이 진행되고 있는 게 문제다. 전세 공급을 늘리기 위해 다주택 전세임대사업자에게는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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