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28일 오후 각종 전월세물 시세판이 붙어 있다. 최근 가을 이사철을 맞아 서울 시내 주요 아파트 단지마다 전세 매물이 급감하고 월세 매물만 넘쳐나는 수급 불균형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전세 품귀, 있어도 비싸
서울 아파트 평균 3억대
저금리에 월세 전환 가속
서울 아파트 평균 3억대
저금리에 월세 전환 가속
#결혼을 앞둔 김아무개(34)씨는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북한산 래미안 아파트(647가구)에서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중개업소에 명단을 올려놓은 뒤 두달째 기다리고 있다. 김씨가 구하는 집은 방 3개짜리 전용면적 59㎡형으로, 현재 전세 시세는 지난해보다 2000만원 정도 오른 3억원에 이른다. 김씨는 “중개업소에 수시로 연락하지만 좀더 기다려봐야 한다는 말만 듣고 있다. 연내에 직장이 가까운 그곳으로 이사하려면 이제 그만 전세는 포기하고 매물이 나와 있다는 월세라도 구해야 할 것 같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아파트의 월세는 한달에 110만원(보증금 5000만원)으로 김씨에겐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직장인 정아무개(40)씨는 최근 입주가 시작된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재개발 아파트인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59㎡형 아파트 전세를 시세보다 1000만원 비싼 3억7000만원에 계약했다. 마포에서 최대 규모인 3885가구가 입주하지만 매매나 월세와 달리 전세 물건은 품귀현상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가 계약한 전세금은 이 아파트 매맷값(5억3000만원)의 70%에 이른다. 정씨는 “집을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전세자금 3000만원을 대출받은 상황에서 빚을 더 늘리기가 부담스럽다”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가을 이사철인 최근 서울시내 주요 아파트 단지마다 전세 물건의 씨가 마르고 월세 물건만 넘쳐나는 수급 불균형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특히 서민들이 찾는 소형일수록 전세난이 더 심한 상태여서 경기 침체기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서울 불광동의 금탑부동산중개사무소 사장은 “지난해까지는 이맘때 이사철에 그래도 소형 전세 물건이 간간이 나왔는데 올가을에는 아예 씨가 말랐다. 집주인들이 계약 만료 기간이 된 기존 전셋집을 월세로 돌리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세 물건이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전셋값도 뛰고 있다. 서울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들어 9월까지 3.6% 상승했는데, 특히 서민들이 많이 사는 중소형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강북권의 오름세가 가파르다. 은평구(5.57%), 강북구(5.48%), 동대문구(5.21%)의 전셋값 오름폭이 서울 평균치를 넘어섰다.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3억1115만원으로, 올해 2월 3억원대를 돌파한 뒤 신고가를 다달이 경신하고 있다.
전셋값이 오르면서 매맷값 대비 전셋값 비율인 전세가율도 치솟고 있다. 서울지역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9월 현재 평균 64.6%로, 1998년 12월 이래 최고치 기록이다. 강북에선 서대문구(71.0%)와 성북구(71.8%) 전세가율이 70%를 넘어섰다. 아파트 매맷값이 1억원이라고 가정하면 전셋값이 7000만원을 웃도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사철이 끝나는 새달부터는 전세난이 다소 수그러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전세가 월세로 바뀌면서 전세 공급이 달리는 수급 불일치는 저금리 흐름이 심화되고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꺾인 데 따른 구조적인 현상이어서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부동산학과)는 “지금의 전세난은 ‘전세 소멸시대’로 가는 과도기적 현상이어서 쉽게 끝나기 어려워 보인다. 세입자들이 반전세나 월세로 이동할 수밖에 없어, 정부가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금융, 세제, 임대차보호 제도 등에서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 끝 안 보이는 전세난…월세 소득 과세 방침 후퇴 등 주택정책 실패도 한몫
▶ 공공임대 늘리고 저소득층 월세 지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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