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만 포기하고 대출 안 갚아도 되는 ‘유한책임대출’
미국에서 시행중…명암 다 있어
채무불이행률 일반대출 1.3배
상환부담 털어 경기회복엔 도움
국민주택기금 대출만 내년 적용
국내는 당장 효과 크지 않을 듯
미국에서 시행중…명암 다 있어
채무불이행률 일반대출 1.3배
상환부담 털어 경기회복엔 도움
국민주택기금 대출만 내년 적용
국내는 당장 효과 크지 않을 듯
지난 1일 정부가 발표한 ‘9·1 부동산대책’ 중에는 ‘유한책임대출’(비소구대출)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대책이 포함돼 있다. 이는 대출자의 집값이 대출액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집만 포기하고 빚은 더 안 갚아도 되는 제도로, 세계적으로도 미국 일부 지역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이를 두고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우려와 “가계파산을 방지할 수 있다”는 기대가 엇갈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기관 중심으로 짜인 현행 대출제도에서 채무자와 서민에게 최소한의 안전판 기능을 할 수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유한책임대출은 집값 하락에 따른 고통을 금융기관과 채무자가 분담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국내 주택담보대출은 모두 집값 하락에 따른 빚 상환 부담을 전적으로 채무자가 지는 ‘무한책임대출’에 속한다. 가령 8000만원을 빌려 1억원짜리 집을 산 뒤 집값이 7000만원까지 하락했을 때, 채무자는 담보물인 집을 금융기관에 압류당한 후에도 나머지 1000만원을 계속 갚아나가야 한다. 이와 달리 유한책임대출에선 채무자는 집만 잃을 뿐 빚 상환 부담이나 추심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유한책임대출의 이러한 책임 분담 구조는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 꾸준한 논란의 대상이었다. 비판적으로 보는 쪽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고의 연체나 부채 확대 가능성에 주목한다. 집값 하락 부담에서 벗어난 채무자가 무분별하게 돈을 빌리거나, 빚을 갚을 수 있는 여력이 있음에도 고의로 연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10년 미국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의 실증분석 결과를 보면, 유한책임대출이 무한책임대출보다 채무불이행률이 평균 1.32배 정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고가 주택일수록 유한책임대출의 채무불이행률이 높았다.
반면 유한책임대출의 긍정적 효과로는 금융기관이 대출심사를 좀더 엄격하게 할 수 있고, 집값 폭락에 따른 가계 파산을 방지할 수 있는 점이 꼽힌다. 김수기 우리금융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론적으로 유한책임대출은 은행의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쏠림 현상이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불황 뒤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 프랑스 재무장관 경제자문역을 맡았던 다니엘 그로스는 지난 7월 유명인사들의 칼럼을 싣는 비영리 온라인 매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이 유럽보다 금융위기 이후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을 보이는 이유는 미국에 신속한 개인파산 제도와 함께 유한책임대출 제도가 있기 때문”이라며 “채무자들이 주택대출 상환 부담을 빨리 털어낼 수 있었던 덕택에 가계소비가 좀더 빨리 회복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유한책임대출은 명암이 공존하는 양날의 칼”이라면서도 “채권자(은행) 중심으로 짜인 현행 우리나라 대출 구조를 고려하면 채무자 부담을 줄여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당장 유한책임대출의 파장이 크게 나타날 가능성은 아직 낮아 보인다. 정부는 일단 내년부터 시범 실시를 통해 국민주택기금 주택담보대출에만 이를 적용할 예정인데, 이 경우 집값 하락 부담을 은행이 아닌 국민주택기금이 지기 때문이다. 또 집값의 최대 70%까지만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한 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시행되고 있어 집값이 30% 이상 폭락하지 않는 이상 국민주택기금의 손실 가능성도 낮은 편이다. 국토부 자료를 보면, 국민주택기금 지원 대상인 85㎡ 이하 아파트의 낙찰가율도 84.7%에 이른다. 윤성업 국토부 주택기금과 사무관은 “유한책임대출 국내 도입은 구체적인 실효를 따지기보다는 채무자 권리를 보호하고 최소한의 안전판을 마련해 놓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투기조장·서민위협…부동산 대책 엉망이다 [오피니언 #310]
국내에서 당장 유한책임대출의 파장이 크게 나타날 가능성은 아직 낮아 보인다. 정부는 일단 내년부터 시범 실시를 통해 국민주택기금 주택담보대출에만 이를 적용할 예정이다. / 한겨레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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