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진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이 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재건축을 희망하는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이 안전진단을 받을 때 적용되는 구조 안전성 점수 비중이 50%에서 30%로 낮아진다. 약 5년 만에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등 그동안 안전진단 통과가 어려웠던 대단지 재건축 사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교통부는 8일 안전진단 구조 안전성 점수 비중 축소,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 최소화 등을 뼈대로 하는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안전진단 규제 완화는 내년에 추진될 거란 전망이 많았지만, 최근 집값 하락세가 커지는 등 시장 경착륙 우려가 나오자 추진 시기가 앞당겨졌다.
정부안에 따라 내년 1월부터 안전진단 구조 안전성 비중이 30%로 낮아진다. 2018년 3월 문재인 정부가 구조 안전성 비중을 20%에서 50%로 강화한 이후 약 5년 만이다. 정부는 대신 주거환경 비중은 15%에서 30%로 2배 높이고, 설비 노후도 비중은 종전 25%에서 30%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구조안전에 큰 문제가 없어도 주차공간이 부족하거나 층간소음이 심한 경우, 배관 누수·고장이 잦거나 배수·전기·소방시설이 취약한 경우에는 재건축 추진의 길이 열린다.
안전진단 평가 총점에 따라 ‘조건부 재건축’으로 분류되는 범위도 줄인다. 지금은 안전진단 총점이 30점 이하인 경우 ‘재건축’ 판정이 내려지지만, 앞으로는 45점 이하면 재건축 판정이 내려진다. 공공기관의 적정성 평가와 재건축 시기 조정을 받아야 하는 조건부 재건축 판정 대상 점수 범위는 30~55점에서 45~55점으로 바뀐다. 이런 조처 또한 안전진단 통과 단지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2018년 3월 이후 안전진단 절차가 완료된 46개 단지의 경우 45.7%(21개)는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았고, 54.3%(25개)가 ‘유지보수’ 판정을 받아 재건축이 불가했다. 재건축 판정을 받은 곳은 한곳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 새 기준을 적용하면 재건축 판정은 12곳, 조건부 재건축은 23곳으로 늘어나고 유지보수는 11곳으로 줄어들게 된다.
새 안전진단 기준은 현재 안전진단을 받고 있는 단지에도 소급적용된다. 또 조건부 재건축 판정 단지에 대한 공공기관 적정성 평가는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요청한 경우에만 시행하도록 바뀐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고시)을 이달 중으로 행정예고를 거쳐 개정하고, 내년 1월 중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처가 시행되면 재건축 사업 추진 단지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 집계를 보면, 지은지 30년 이상 지나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아파트(200가구 이상) 중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단지는 전국적으로 1120개 단지에 이른다. 서울에서는 특히 재건축 추진 단지가 많은 노원구와 양천구가 최대 수혜지역으로 꼽힌다. 노원구 상계주공은 16개 단지 중 5단지, 양천구 목동신시가지는 14개 단지 중 6단지만 안전진단을 통과했으며 일부 단지가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백준 제이앤케이(J&K)도시정비 대표는 “새 기준을 적용하면 노후 아파트 대부분이 재건축 안전진단을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향후 부동산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면 가장 먼저 재건축 사업이 활기를 띨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서울 시내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실거주자만 매입이 가능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고, 고금리 상황도 이어지고 있어 과거처럼 재건축 시장이 달아오르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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