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 일대 아파트 단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최근 금리 상승과 부동산경기 침체 여파로 주택 매매거래가 실종된 가운데 급매물 시세에 견줘서도 현저하게 낮은 가격의 매매거래 사례가 잇따라 눈길을 끌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집값 하락기를 맞아 가족 등 특수관계인간 매매가 늘어났고, 절세 목적으로 증여를 매매로 위장한 편법도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1일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최근 서울의 고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매매금액이 시가보다 현저하게 낮은 계약이 잇따라 신고되고 있다. 지난 9월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는 직전 6월의 실거래가(20억2천만원, 8층)보다 7억원 가까이 낮은 13억8천만원(20층)에 계약이 체결됐다. 이는 가장 최근인 이달 4일 거래가 이뤄진 급매물 가격인 18억5천만원(16층)보다도 5억원 가량 낮은 것이다.
앞서 지난 5월 송파구 올림픽선수기자촌 전용 100㎡는 12억500만원(8층)에 거래돼 현지 부동산시장이 크게 술렁였다. 이 아파트는 이전 실거래가(2021년 7월, 25억5천만원)나 올해 8월에 거래된 매매가격 23억원(3층)에 견줘 거의 절반 가격에 거래됐다.
부동산 업계에선 최근 보이는 고가 아파트의 ‘저가 매매’ 사례는 실제 매매도 있겠지만, 가족 간 주택을 증여할 때 발생하는 세금을 줄이기 위한 ‘허위 매매’도 섞여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과세당국은 가족 간 매매에 대해선 일단 증여로 추정하지만, 실제 매매거래 대금이 오간 게 증빙되는 경우에는 매매로 인정하고 양도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만 과세하게 된다. 따라서 가족 간 저가로 매매하는 경우 증여세를 회피하고 양도세는 줄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러나 자금출처 증빙으로 가족 간 매매가 인정된다고 해도 시세보다 30% 이상 낮은 가격에 거래한 경우에는 그 차액만큼 증여한 것으로 간주돼 양도세 외에 증여세도 추징당한다는 게 세무업계의 설명이다. 예를 들면 시가 10억원 아파트를 가족 간 7억원에 거래했을 때는 양도세만 과세하지만 이를 5억원에 거래한 때는 양도세와 별도로 2억원에 대한 증여세를 물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처럼 매매거래 자체가 드물어 적정 시세 파악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과세당국도 세금 추징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한편 국토부도 최근 부모-자식, 법인-대표 등 특수관계인 사이에서 이뤄지는 ‘저가 매매’가 부동산 거래시장을 교란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탈세 의심사례를 가려내 과세당국에 통보하기 위한 기획조사에 나섰다. 실제 적발 사례를 보면, ㄱ씨는 시세 31억원의 아파트를 아들에게 22억원에 매도하면서 선금으로 1억원을 받고, 아들과 임대보증금 21억원의 전세계약을 체결한 후 선금 1억원도 돌려줘 증여세·양도세 등 탈루가 의심됐다.
부동산 업계에선 내년부터 증여 취득세가 높아지는 점도 최근 가족 간 편법 증여가 늘어난 배경으로 꼽는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내년부터 증여를 받는 사람이 내야 하는 증여 취득세 기준이 시가표준액(공시가격)에서 시가인정액(시세)으로 바뀐다”면서 “최근 가족 간 매매나 증여가 늘어난 원인 중 하나”라고 짚었다.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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