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잠실 일대 아파트 단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오는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공약이었던 부동산 정책들이 추진되면 청년과 신혼부부 등 2030세대를 비롯한 무주택 수요자들의 내집 마련 환경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부동산 공약은 주택공급, 청약제도, 세제·금융, 재건축 등 다양한 부문에서 현 정부와는 다른 방향의 제도 개선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내집 장만을 계획하고 있는 수요자라면 정권 교체에 따른 주택정책 변화의 흐름을 잘 파악해 집 마련 시기, 목표 지역과 방법 등을 재정립하는 게 필요해졌다고 본다. 특히 새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되는 주택공급, 청약제도, 세제·금융 개편 등 추이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30세대 무주택자로서 생애 최초의 주택 장만을 꿈꾸고 있는 청년과 신혼부부라면 윤 당선자의 핵심 공약인 ‘청년원가주택’과 ‘역세권 첫집’을 최우선 선택지 리스트에 올려둘 만하다. 공약대로 실행된다면 청년층이 가장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고 내집을 장만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청년원가주택은 원가로 주택을 분양받은 뒤 5년 이상 거주하면 매각 때 시세 차익의 70% 이상을 보장받도록 한 주택이다. 여기서 원가는 택지비 조성원가와 표준건축비, 이자 비용 등을 합친 수준으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는 공공분양주택보다 더 낮은 가격에 공급된다. 공공주택은 택지비에 대해 감정평가 금액을 적용하지만 청년원가주택은 조성원가만 반영해 분양가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목돈이 부족한 청년층을 위해 파격적인 금융지원도 이뤄진다. 입주자가 분양가의 20%를 내면 나머지 80%는 장기 저리로 빌려줘 원리금을 갚아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예컨대 분양가격이 3억원짜리 주택인 경우 입주자가 6천만원만 내면 2억4천만원은 대출이 가능하다.
택지비에 조성원가를 적용한 최초의 공공주택인 청년원가주택의 분양가는 얼마나 저렴할까? 이달 경기도 남양주시 왕숙2지구에서 사전청약 방식으로 공급된 전용면적 55㎡(공급면적 80㎡) 공공주택(신혼희망타운)의 추정 분양가는 3.3㎡당 1648만원이었다. 업계에선 이 주택의 택지 감정평가액을 3.3㎡당 900만원 선으로, 택지 조성원가는 감정가보다 크게 낮은 3.3㎡당 500만~600만원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조성원가를 적용한 왕숙2지구 청년원가주택 분양가는 3.3㎡당 1200만~1300만원 수준이 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공급면적 80㎡(24평) 아파트 기준으로 총분양가 2억9천만~3억1천만원 수준에서 공급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청년원가주택은 3기 새도시, 광역교통망 역세권 고밀복합개발지역, 교통여건이 양호한 신규택지 등에서 공급될 예정이다. 그런 만큼 정책 방향만 결정되면 공급에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는다. 3기 새도시나 공공택지에서 이미 예정된 주택을 공급할 때 분양가 기준만 감정가에서 조성원가로 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청년원가주택은 역대 가장 적은 비용으로 내집을 장만하고 5년 거주 뒤에 높은 시세차익도 보장되는 ‘로또’ 주택”이라며 “공약한 대로 임기 내 30만호를 공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시범사업 물량이 공급되면 2030세대의 입주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또 다른 공공주택인 ‘역세권 첫집’의 경우 민간개발 연계형과 국공유지 활용형 등 두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민간개발 연계형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용적률 상향(500%)을 통해 증가한 용적률(200%)의 절반을 공공주택으로 기부채납받아 토지임대부 방식(토지는 임대하고 건물만 분양)으로 반값에 분양하는 것이다. 국공유지 활용형은 역세권에 위치한 철도차량기지, 빗물펌프장, 공영주차장 등의 상부를 복합개발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부동산 업계에선 역세권 첫집의 경우 마땅한 부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탓에 20만호 공급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이로 인해 공급 대상자가 같은 청년원가주택과 통합돼 추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민영주택 분양을 희망하는 수요자들은 청약 제도의 변화를 주목해야 하는 상황이다. 윤 당선자는 공약에서 수도권 공공택지와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민영주택 일반공급의 가점제 비율을 크게 높인 2017년 ‘8·2 대책’이 가점이 낮을 수밖에 없는 2030세대의 청약시장 진입을 원천봉쇄했다고 비판하면서 집권 후에는 바꾸겠다고 공약했다. 공약에 따르면,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은 현재 100% 가점제를 적용하고 있으나 주택 크기에 따라 일정 비율의 추첨제가 도입되는 것으로 바뀐다. 전용 60㎡ 이하는 60%, 60~85㎡는 30%씩 추첨제가 도입된다. 반대로 85㎡ 초과주택은 추첨제 비율을 현행 50%에서 20%로 낮추고 가점제 비율을 80%로 높인다. 2030세대의 중소형 주택 청약 기회를 넓혀주는 대신 가구원 수 3~4명 이상 무주택 가구에는 가점제를 통해 중대형 당첨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뜻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윤 당선자 공약대로 청약 가점제도가 바뀌면 서울과 수도권 공공택지 등에서 2030세대의 아파트 청약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추첨제 확대로 인해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전용 85㎡ 이하 주택의 청약 경쟁은 전반적으로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장기간 거주가 가능한 임대주택 입주를 희망하는 수요자들은 새 정부에서도 공공임대주택을 우선순위 선택지로 꼽아도 괜찮을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자는 공약에서 공공임대주택을 매년 10만호씩 임기 내 50만호 공급하겠다고만 제시했을 뿐 새로운 정책 방향을 내놓지는 않았다. 따라서 최근 제도 개편 이후 첫 입주자 모집이 진행된 ‘통합공공임대’가 새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국민임대, 영구임대, 행복주택을 통합한 통합공공임대는 도시근로자 중위소득 150%(3인 가구 기준 월소득 629만2천원) 이하인 무주택자가 입주할 수 있으며, 임대료는 입주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부과되는 게 특징이다.
기존 재고주택 시장에서 주택을 장만하려는 수요자라면 대출과 세제 변화를 눈여겨봐야 한다. 윤 당선자는 대출 규제 완화를 공약하면서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의 경우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80%(현행 투기과열지구 60%, 조정대상지역 70%), 일반 구입자의 경우 70%(현행 40~60%)로 지역에 관계없이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또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는 취득세율을 ‘면제 또는 1%’로 하고 일반 구입자는 1~3%인 취득세율을 단일세율로 바꾸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따라 수요자로서는 대출 문턱이 낮아지고 취득세율도 인하된 뒤에 주택을 구입하는 게 훨씬 유리해졌지만, 이런 조처들의 시행 여부와 시기는 유동적이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취득세율 인하는 지방세법 개정 사안인데다 세수 부족을 우려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반대도 예상돼, 새 정부 출범 이후 국회 논의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자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모두 공약했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 한시적 면제 조처가 언제부터 시행될지도 주목된다. 중과세 면제가 이뤄지면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 수요자들에게는 내집을 장만할 적기가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연구위원은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하기로 한 1주택자 보유세 동결 조처가 나온 상황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한시적 면제 조처가 단행되면 상당수 다주택자들은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거나 한 채만 보유하면서 다주택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며 “다만, 매각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증여하는 방식도 가능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매물이 나오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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