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이사철을 앞둔 서울·수도권 아파트 전세시장에 냉기류가 돌고 있다. 지역에 따라 온도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규모 아파트가 밀집한 주요 지역마다 전셋집을 찾는 수요자보다 임차인을 구하는 집주인이 늘어나면서 전셋값이 속속 떨어지고 있다. 재작년과 지난해 이맘 때와는 정반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지난 2020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이후 줄곧 불안한 양상을 보여왔던 전월세시장이 2년여 만에 안정세를 찾을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8일 한국부동산원과 부동산업계 말을 종합하면, 지난해 큰 폭으로 올랐던 서울·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이 2년여 만에 줄줄이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를 보면, 수도권 아파트 주간 전셋값 변동률은 지난 1월 넷째주(24일) -0.02%로 하락전환했고 뒤이어 서울 아파트 전셋값도 1월 마지막주(31일) -0.02%를 보이며 하락세로 돌아섰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주간 기준으로 하락한 것은 지난 2019년 6월 이후 2년8개월 만이다.
서울에서는 강남·강북을 가리지 않고 전셋값이 약세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형은 지난달 최고 8억원에 거래됐으나 현재는 2억원 떨어진 5억7천만~6억원선에 매물이 나오고 있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7단지 전용 66㎡형은 지난달 최고 7억5천만원에 계약됐으나 현재 호가는 6억원선까지 내렸다. 이달 1일부터 입주에 들어간 성북구 길음동 ‘롯데캐슬 클라시아’(2029가구)는 두 달 전 8억원에 계약됐던 전용면적 59㎡형이 5억원대 중후반까지 떨어졌는데도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단지에는 전용 59~84㎡형 전세 매물 200여개가 쌓이면서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집주인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시장에서는 서울·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전세자금 대출금리 상승,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인한 이동 수요 감소, 청약 대기 수요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달 3일 기준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시중은행 전세자금 대출 금리는 3.45~4.95%로 1년 전보다 최고 2%포인트 가량 상승했다. 대출을 이용해 전세금을 조달하기가 훨씬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또 재작년 상반기 전세를 계약했던 임차인은 올해 돌아온 계약 만료 때 대부분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며 눌러 앉고 있다는 게 일선 부동산 중개업계의 진단이다. 최근 2년 새 껑충 뛰어오른 전셋값으로 인해 임차인들이 신규 계약을 맺는 새 집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밖에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지켜보며 청약을 준비하는 수요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도 이동 수요를 감소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수도권 사전청약 물량은 공공 3만2천가구, 민간 3만8천가구 등 지난해의 갑절 수준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상과 대출규제로 인해 전세자금 대출 금리가 좀더 오를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전셋값 약세 현상은 좀더 확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하는 이자율인 ‘전월세 전환율’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3.13%, 수도권 3.75%(KB국민은행 조사)로 전세대출 금리보다 낮아져 집주인들이 월세보다는 전세를 선호하면서 전세 공급을 늘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올해 7월 말 이후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1회 사용한 임차인의 계약 만기가 도래하면서 시장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올해 하반기부터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만기가 도래하는 경우 집주인은 그동안 전셋값 상승분을 받을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월세로도 돌릴 수 있다”며 “신규 계약 전세금과 갱신청구권이 적용된 전세금의 차이가 컸던 아파트를 위주로 전월세 가격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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