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 서초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은 시세표. 연합뉴스
다주택자와 법인 중심으로 올해 종합부동산세가 급증한 가운데 이들이 세부담을 임차인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종부세와 재산세를 더해 보유세액이 수천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 다주택자들의 사례가 회자되면서, 임차인들은 ‘보유세 강화 정책’의 유탄을 맞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급증한 보유세 부담에 따른 조세 전가는 어느 정도 현실화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학군수요, 전월세 시장 상황,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세 가지를 변수로 꼽는다.
①대체재 없는 ‘대치동’에서 전가 일어날 가능성 높아
임대인이 내야할 보유세가 결국 임차인의 임대료로 전가된다는 주장에 대해 허동훈 인천연구원 부원장은 “수십년간 논쟁이 있었던 문제이지만 가장 유력한 다수설은 우리가 생각한만큼 전가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땅이 기초가 되는 부동산은 세금이 인상된다고 해서 소유자가 땅의 공급을 줄일 수 없다. 건축물 몫에 대한 세금 역시 전국의 세율이 동일한 이상 세금을 피해 집 짓는 곳을 이리저리 옮길 수 없으므로 결국 소유주가 땅과 건축물 몫의 세금을 더 많이 부담하게 된다는 게 다수설”이라고 설명했다.
변수는 수요 측면에서 발생한다. 임대인이 인상된 세금만큼 임대료를 올릴 때 대체재를 찾을 수 없는 경우다. 허 부원장은 “비싸지면 사람들이 회피를 하게 되는데, 회피를 할 수 없는 소비자한테는 전가가 된다”고 말했다. 보유세 조세 전가는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으로 이뤄진다기보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다주택자들의 투자용 주택이 많이 분포하고 교육 목적의 ‘학군수요’가 쏠리는 지역이 대표적이다. 실제 종부세 임차인 전가의 피해 사례로 ‘자녀가 재수를 결심한 대치동 학부모’가 거론되고 있다.
2008년 종부세의 전세가격 전가 현상을 연구한 바 있는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다주택은 세부담상한(300%)까지 거의 다 올랐고 다음 텀에 임대료로 전가가 될 수 있다”며 “특히 강남은 교육 수요 등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경우로 가격 탄력성이 낮은 수요다. 이들은 대출해서라도 거기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가가 더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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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전월세가격은 시장이 결정…무조건 전가에 한계
다만 대치동처럼 수요가 비탄력적인 지역이라고 할지라도 무조건적인 전가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가는 공급자(임대인)가 우월적 지위가 되었을 때 가능하고, 시장 가격을 무시하고 무조건 인상을 통해 전가하면 공실이 생긴다”며 “고가주택 밀집지역에서 전면 월세보다는 반전세가 유행할 것으로 보이지만, 조세 전가가 다주택자의 퇴로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보유세가 4천만원에서 1억2천만원으로 올랐다면, 이 가운데 시장가격이 허용하는 수준의 전가가 제한적으로 일어날 뿐 8천만원 전부를 임대료로 전가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대치동의 임대차 시장 상황도 수요자가 울며 겨자먹기로 인상된 가격을 수용해야할 정도의 ‘공급자 우위 시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매물 플랫폼 아실 자료를 보면, 25일 기준 대치동의 매물은 매매 543건, 전세 1281건, 월세 1286건으로 전·월세 매물이 매매 매물보다 각각 2배 이상 많다. 특히 전·월세 매물은 올해 초 300~500건에 견줘 크게 늘어난 상태다. 은마아파트의 매물은 매매가 8건인 반면 전세는 96건, 월세는 78건에 달한다. 대치동 ㅋ공인중개사무소 ㄱ대표는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가 없어지면서 집수리하고 들어왔던 집주인이나 들어오려고 했던 집주인들도 매물을 내놓고 있다”며 “호가가 높은 문제도 있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니까 이동수요 자체가 없어서 계약이 안 된다”고 말했다. 월세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ㄱ대표는 “여기는 보증금 1억당 월세 35만원으로 계산해서 전세 20억이면 보증금 10억에 월세 350만원이 시세”라며 “이걸 1억당 45만원으로 올린다고 하면 시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보유세 전가에 대한 연구한 바 있는 최충익 강원대 교수(행정학과)는 “2018년 자료를 이용한 연구에서는 보유세 부담이 낮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전가 현상을 발견할 수는 없었으나 이번엔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 전·월세 전가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도 “다만 20억원, 30억원짜리 전세에 사는 분들은 사실상 부담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임대차2법 ‘실거주’ 구멍도 조세 전가 변수
지난해 7월부터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돼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임대차2법)가 임대차시장에 도입된 영향으로 조세 전가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계약갱신 때 임대료 인상률은 5%로 제한된다. 임대인의 필요에 따른 임대료 급등 여지가 제도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과)는 “전·월세 급등 현상은 부동산세 중과와 관련된 논리적 귀결이 절대로 아니다”며 “힘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임대인이 세금을 핑계로 마음대로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다만 전·월세 시장이 공급자 우위로 돌아가는 지역이나 단지에서는 임차인들이 임대차2법의 보호에서 제외되어 조세 전가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행 임대차2법의 경우 임대인과 직계존비속까지 별다른 입증 의무 없이 ‘실거주 의사’만으로 임차인을 퇴거시킬 수 있다. 박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과거에 비해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불충분하다”며 “임대사업자 제도 개선이나 보유세 강화가 있을 때마다 임차인 피해를 얘기하는데 임차인의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 논의보다 임대인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쪽으로 논의가 후퇴하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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