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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부동산

독일도 높은 임대료 골머리…“임대료 상한제 강화” 목소리

등록 2021-08-31 04:59수정 2021-08-31 07:08

전세난의 본질③-베를린에서 세입자로 살아보니

임차할 집 구하기 300대 1 경쟁
2015년 임대료 멈춤 정책 도입
주변보다 10% 이상 못 올리게 상한

베를린 아예 ‘동결정책’ 도입했지만
중복 규제 이유로 헌재서 “위헌”
“임대료 통제가 위헌” 주장은 왜곡

임대료 오르지만 세입자 보호 치중
임대료 규제 강화 요구 커지면서
부동산 기업 사회화 국민투표 예정
총선을 앞두고 임대료 상한제는 다시 떠올랐다. 기민당과 자민당은 신규주택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녹색당, 사회민주당, 좌파당 등은 강력한 임대료 통제 전국 시행과 사회적 주택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공정한 임대료에 투표하세요”라는 구호를 내건 독일 사회민주당 울라프 슐츠 총리.
총선을 앞두고 임대료 상한제는 다시 떠올랐다. 기민당과 자민당은 신규주택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녹색당, 사회민주당, 좌파당 등은 강력한 임대료 통제 전국 시행과 사회적 주택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공정한 임대료에 투표하세요”라는 구호를 내건 독일 사회민주당 울라프 슐츠 총리.

지난해 10월 독일 생활 최고 난이도에 해당한다는 ‘집 구하기’에 나서게 됐다. 처음 베를린으로 갔을 때가 2018년 가을, 그때만 해도 63㎡ 넓이, 방 2개인 집에 850유로(115만원) 월세를 낸다고 하면 베를린 토박이들은 다들 비싸다고 혀를 찼다. 베를린에서 그런 집은 400~500유로가 딱 시세란다. 그러나 2020년 가을 집을 구하러 나서 보니 월 1000유로(135만원)로 한국의 20평 정도 크기의 집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① 집 구하기 경쟁률 ‘1 대 300’

집이 없는 게 아니라 가격이 너무나 높다는 게 문제였다. 코로나19로 다들 이사하기 꺼리는 시기였다. 어쩌다 나오는 ‘정상 시세’ 임대물건은 후딱 나가버리고 터무니없는 임대료를 책정한 집들만 남아 있었다. 임대료 인상 제한이 엄격한 베를린에선 대대적인 리모델링이나 신축을 했을 때만 임대료를 평균 이상 올릴 수 있는데 이렇게 하는 이들은 대부분 부동산회사들이었다. 2019년 독일 주택시장 통계를 보면 민간 주택 회사 임대료는 평균보다 10%가량 높았다.

독일에서 집을 구하려면 부동산 포털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은 뒤 지원서를 보내고 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기다려야 한다. 임대인이 절대적으로 우위인 시장에서 이 과정은 대기업 입사와도 같다. 매물이 올라온 지 12시간, 한나절이 되면 보통 지원자 300명이 메일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오면서 마감됐다. 수백통 지원서 중 집주인이 내 것을 읽어봤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지원자가 너무 많으니 대부분의 집주인이 우선 외국인 이름으로 온 이메일부터 지우고 본다고들 했다.

연말은 다가오고 이대로라면 살 곳이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처음으로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은행의 계좌증명이나 월세를 잘 냈다는 이전 집주인의 확인서는 기본이고 대학졸업증명서와 이력서, 경력증명서까지 그야말로 입사 지원서 수준으로 보낸 서류 덕분에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메일이 온 것이다.

집을 보러 간 날 다시 한번 치열한 경쟁선에 섰다. 지원자 1명마다 15분 간격으로 약속시간을 정했지만 다들 일찍 와서 기다리는 바람에 집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내 앞에는 임산부와 친정어머니, 남편으로 보이는 한 가족이 섰는데 심지어 집주인과 국적도 같은 러시아 사람들이었다. 집주인 할머니가 이들을 어찌나 다정하게 대하는지 나는 면접도 보기 전에 떨어졌구나 싶었다.

내 차례가 되자 이날 함께 왔던 친구 부부가 서둘러 내 손에 명품 가방을 들려주었다. 아시아에서 온 부자처럼 보여야 한다는 전략이다. 그리고 집주인 할머니와 부동산 중개인에게 선물까지 건네며 다 같이 머리를 조아렸다. 정성이 통했는지 두 달 동안 80여통 지원서를 낸 끝에 살 곳을 구할 수 있었다.

② 임대료 통제가 위헌이라고?

내가 겪었던 일과 비슷한 사례들이 지난 10년 동안 독일 신문에도 수없이 보도됐다. 부동산 사이트 이모벨트(immowelt.de) 통계를 보면 독일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도시인 뮌헨의 평균 임대료는 10년 새 61% 올랐다. 2015년 독일 연방정부는 치솟는 임대료를 잡기 위해 ‘임대료 멈춤’(Mietpreisbremse) 정책을 도입했다. 주변 표준 임대료보다 10% 이상 올릴 수 없도록 한 임대료 상한제다. 그러나 이 정책은 “너무 많은 예외를 두었기 때문에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신축이나 리모델링 때는 임대료 제한을 받지 않으며, 집주인이 직접 집을 사용한다면 세입자를 내보낼 수도 있기 때문에 편법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또 지방정부들이 도입 절차나 세부 법안에서 착오를 거듭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난해 베를린에서는 쉽게 집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베를린에서도 주택 임대료는 2008년부터 10년 동안 평균 104% 올랐지만 그 뒤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해 2020년까지 5% 하락했다. 베를린시가 아예 임대료를 2019년부터 2025년까지 동결하는 정책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독일 중앙부동산협회는 “‘베를린 임대료 상한제’ 시행 1년 뒤 하락세가 시작됐다”고 보고했다.

이 강력한 임대료 억제 정책은 올해 4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폐지됐지만 “베를린의 임대료 통제법은 독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주장이나 한국 일부 언론의 보도는 왜곡이다. 이번 독일 헌법재판소 결정은 임대료 통제에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이 아니라 2015년부터 연방정부가 임대료 멈춤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방정부가 중복 도입할 수 없다는 의미다. 헌법재판소 판결 뒤 <쥐트도이체 차이퉁> 등 독일 언론 대부분은 “지방정부가 임대료 잡는 길을 막았으니 이제 연방정부가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독일에서 세입자는 특별 계약이 아닌 한 평생을 살 권리가 있으며, 집주인은 매달 일정액을 내서 집수리 비용을 적립해 주택이 살기 좋은 수준으로 유지 관리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지나친 인상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주에서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하면 이전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얼마나 받았는지 알려줄 의무가 있다. 한국의 임대차법을 둘러싼 논란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가파른 임대료 인상 속에서도 세입자 보호 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거권을 지킬 수 있었다는 평가다. 또 9월 총선을 앞두고 ‘베를린 모델’을 독일 전역에서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③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지지율 1~2위를 달리는 독일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임대료를 2.5%까지만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사회민주당 또한 베를린 임대료 상한제를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물가상승률 범위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억제 정책을 예고한다. 좌파당 또한 이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근원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상·하원의원, 구의원을 뽑는 다음달 26일 총선일에 베를린에 3000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기업들을 사회화하라는 ‘도이체 보넨 몰수를 위한 국민투표’도 함께 진행된다. 베를린에 11만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도이체 보넨’은 그동안 계속 임대료를 올리고 임대료 지수를 조작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투표 상정을 주도한 시민단체는 “대다수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새 아파트에서 임대료를 낼 만한 형편이 못 된다”며 “신규 주택 공급이 아니라 기존 주택의 사회화를 통해 주거난을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시민단체가 4개월 만에 베를린 시민 34만9000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투표를 할 수 있게 됐으며 투표에서 61만명이 찬성한다면 상원은 몰수법을 입법 검토해야 한다. 서명한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임대주택을 원한다.

베를린/글·사진 남은주 통신원 nameunjoo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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