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LH 투기 사건 중간점검 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강훈 변호사, 임재만 세종대 교수, 박인권 서울대 교수,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 서성민 변호사. 연합뉴스
주거복지를 강화한다면서 인력을 20% 감축하겠다는 정부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안은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시민사회에서 나왔다. 정부가 8월 중에 엘에이치 혁신안을 확정할 예정인 가운데, 시민사회는 엘에이치 ‘땅 장사’를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토지주택은행이나 개발이익기금 등을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엘에이치 투기 사건 중간점검 토론회’를 열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박근혜 정부 때 연간 1만호도 안 되던 매입임대 주택 공급이 최근 3만~4만호에 달하고 있는데 인력이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며 “주거복지를 강화하고 2·4 대책은 차질없이 추진하면서 엘에이치 인력은 20% 감축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짚었다. 정부는 6월7일 엘에이치 혁신안 발표 때 엘에이치 정원 1만명 중 20%를 단계적으로 감축한다면서 조직 개편 방안으로 주거복지기능을 모회사로, 토지·주택기능을 자회사로 ‘수직 분리’하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최 소장은 “벌써부터 내부에서는 올해 매입임대 공급 목표 달성 못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밀실에서 단기간에 만들어진 엘에이치 혁신안으로 엘에이치 조직이 흔들리면서 주거복지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공공정책대학원 부동산학과)는 엘에이치 혁신안의 무게를 ‘공공성 강화’에 둬야 한다며 ‘토지주택은행’ 설치를 제안했다. 그는 “토지주택은행을 설치해 이곳이 토지와 공공임대 주택 등을 공공의 자산으로 비축하고 관리하도록 하고 기존 엘에이치 조직은 공공디벨로퍼로서 택지를 조성하고 공공임대를 건설 공급하는 업무만 수행하도록 하면 된다”며 “주거복지 기능은 주택관리공단이 토지주택은행 보유 공공임대를 위탁·관리하면서 주거복지서비스 전달 체계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인권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는 “개발이익을 투명하게 회수하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안의 모회사-자회사 방식으로 조직을 쪼개는 것보다는 개발이익을 ‘기금’의 형태로 공공이 회수해 주거복지와 국토균형발전 사업에 명시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다.
8월 안에 엘에이치 혁신안을 마련해 9월 정기국회 때 입법을 완료한다는 정부 쪽 ‘속도전’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최은영 소장은 “장기적 안목 없이 ‘몇월까지 해체한다’는 식의 졸속적인 방식으로는 주거복지가 강화될 수 없다”며 “엘에이치 구성원들도 단죄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 참여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불평등을 직시하지 않고 문제를 잘못 해석한 채 조직 개편을 논의해서는 안 된다”며 “주거불평등 문제에 대한 당사자성, 세입자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엘에이치 혁신안 마련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강훈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변호사)은 “엘에이치 사태를 계기로 한 법률 제개정 노력은 절반의 성공”이라며 “부동산 투기 억제와 자산불평등을 완화시킬 대책이 부족하다면 차기 정부도 동일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