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열린 ‘인텔 언리쉬: 미래를 설계하다’ 행사에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인텔의 그래픽 처리장치를 들어보이고 있다. 인텔 제공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서의 지배력이 흔들리고 있는 미국의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 반도체 공급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사가 설계한 반도체 생산뿐 아니라, 아마존이나 구글, 퀄컴 등 외부 고객사를 끌어들여 위탁생산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관심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 1·2위 업체인 대만의 티에스엠시(TSMC)과 삼성전자에 미칠 파장이다.
인텔은 24일 온라인으로 열린 ‘인텔 언리쉬: 미래를 설계하다’ 행사에서 약 200억달러(한화 약 22조6천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신설하는 계획을 담은 ‘아이디엠2.0(IDM 2.0)’을 발표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행사에서 “2025년까지 파운드리 시장이 1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인텔은 미국 및 유럽 기반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요 공급업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인텔의 선언은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든 공정을 담당해왔던 종합반도체기업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현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신흥주자인 에이엠디(AMD)와 엔비디아가 인텔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는 데다, 지난해엔 인텔의 주요 고객사였던 애플이 독자 칩을 개발하겠다며 인텔과 결별을 선언했다. 인텔은 칩 생산 부문에서도 최근 몇 년간 14나노미터(㎚)부터 10나노미터 이하 공정에서 생산 차질을 빚으며 자사가 설계한 반도체마저 위탁생산을 해야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날 행사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밥 스완 전 인텔최고경영자에 이어 지난 2월 새로 취임한 겔싱어 최고경영자의 첫번째 전략 발표 자리였다. 겔싱어 최고경영자는 이러한 위기 상황을 의식한듯 “7나노 기반 공정 흐름을 재설계 및 단순화해 극자외선 사용을 100% 이상 증가시켰다”고 설명했다. 인텔은 2023년 7나노 공정의 중앙처리장치를 내부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유보적이다. 생산능력 강화란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기존 파운드리 시장 구도에 의미 있는 파괴력을 갖기는 힘들다고 봐서다. 이미 5나노 공정을 확보하고 3나노 기술 개발에 들어간 삼성전자나 티에스엠시의 기술력을 후발주자인 인텔이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스마트폰용 반도체 외에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에 쓰이는 칩은 14나노나 7나노 공정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시장의 다양성 측면에서 파운드리 시장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아직은 인텔의 기술력이 약하기 때문에 5나노 이하 공정은 삼성전자나 티에스엠시가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텔의 새로운 파운드리 공장이 외부 고객사를 대거 유치할 만큼 큰 규모가 아니란 점도 한계로 꼽힌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인텔의 파운드리는 티에스엠시처럼 100% 외주만 받는 형식이 아니라 자사 제품을 생산하고 남는 여력으로 외부 수요를 충당하는 방식일 것”이라며 “200억달러 규모라면 외부 위탁생산량은 많지 않아 티에스엠시나 삼성전자의 경쟁상대가 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분석했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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