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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LG, 미 국제무역위 ‘배터리 분쟁’서 승소…SK엔 유예기간 줘

등록 2021-02-11 10:15수정 2021-02-11 10:25

SK 일부 리튬이온배터리 10년 수입금지
포드 등 미 생산용 공급은 유예기간 부여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10일(현지시간) 엘지(LG)에너지솔루션(전 LG화학 배터리 사업부문)과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에서 엘지 쪽의 손을 들어줬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국제무역위는 엘지에너지솔루션이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신청한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엘지 쪽 주장을 인정하는 최종 심결(determination)을 내렸다. 이에 미 국제무역위는 에스케이에 대해 일부 리튬이온배터리의 수입을 10년간 금지하는 제한적인 배제 명령을 내렸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다만 미 국제무역위는 에스케이가 공급하는 업체인 포드, 폭스바겐의 미국 내 생산을 위한 배터리와 부품 수입은 허용하는 유예 조치도 함께 내렸다. 포드 전기차 생산용 배터리와 부품을 4년간 수입하도록 허용하고, 폭스바겐 전기차 라인에 대한 부품 공급을 위해 2년간 수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엘지 쪽은 전기차용 배터리로 활용되는 2차전지 기술과 관련해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자사 인력을 빼가고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2019년 4월 미 국제무역위에 조사를 신청했다. 구체적으로 엘지 쪽은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2년 동안 엘지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빼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정상적인 경력사원 채용 과정을 거쳤고, 지원자가 스스로 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미 국제무역위는 지난해 2월 예비 심결에서 에스케이 쪽에 대해 엘지 배터리 기술을 빼낸 증거를 인멸했다는 이유 등으로 ‘조기 패소' 결정을 내렸다. 이번 최종 결정은 그 연장선에 있다.

이 결정에서 승리한 엘지에너지솔루션은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가 확인됐다며 상응하는 합의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사실이 실질적으로 밝혀지지 않아 아쉽다고 유감을 표명하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기대를 나타냈다.

엘지에너지솔루션은 이날 입장문에서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자사의 영업비밀을 탈취해 연구개발, 생산, 시험, 수주, 마케팅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부정하게 사용해 경제적 피해를 당하였다는 주장을 미 국제무역위가 인정했다”며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증거 인멸 등에 기반한 조기 패소 결정이 그대로 최종 결정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엘지에너지솔루션은 “미 국제무역위 분쟁은 자사가 사업과 주주가치 보호를 위해 당연히 취해야 할 법적 조치로, 30여년 간 수십조원의 투자로 쌓아온 지식재산권을 법적으로 정당하게 보호받게 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엘지에너지솔루션은 에스케이 쪽을 향해선 “이제라도 소송 상황을 왜곡해온 행위를 멈추고 미 국제무역위 최종 결정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이에 부합하는 제안을 하라. 하루빨리 소송을 마무리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업비밀 침해에 상응하고 주주와 투자자가 납득할 수 있는 합의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미 국제위원회 최종 승리 결과를 토대로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 단호하게 임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자사가 배임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입장문에서 “미 국제무역위가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해 아쉽다”며 “다만 미 국제무역위가 포드, 폭스바겐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둔 것은 다행”이라고 밝혔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미국 내 배터리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앞으로 남은 절차를 통해 안전성 높은 품질의 에스케이 배터리와 미국 조지아주 공장이 미국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친환경 자동차 산업에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양질의 일자리를 수천개 창출할 수 있다는 점 등 공공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주어진 유예기간 중에 그 이후에도 고객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엘지와 에스케이는 소송이 시작된 후 여러 차례 만났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2019년 9월에는 엘지화학 신학철 부회장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 김준 총괄사장 등 각사 최고경영자들이 회동하기도 했지만, 입장차만 확인한 채 헤어졌다.

특히 배상금 규모를 두고 양사가 입장을 좁히지 못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엘지에너지솔루션이 에스케이 쪽에 영업비밀 침해로 2조8천억원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반면, 에스케이 쪽이 제시한 금액은 1조원 미만의 수천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에는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나서 “낯부끄럽지 않은가. 국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려야겠는가. 빨리 해결하시라”라며 강한 어조로 양사 간 조속한 합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미 국제무역위는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한 조사와 규제를 수행하는 대통령 직속 연방 준사법기관이다. 행정기관으로서 미국 내 수입, 특허 침해 사안을 판정한다. 미 국제무역위는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이 미국으로 수입되지 못하도록 배제명령을 내리거나 미국 내 수입·판매를 금지하는 중지명령 등을 내릴 수 있다. 특허 등 침해와 관련, 미 국제무역위에 조사를 신청하거나 연방법원에 소송을 낼 수 있고 양자를 병행할 수도 있다. 엘지는 미 국제무역위 조사 신청과 함께 델라웨어주 연방지법에 소송도 제기했다. 미 국제무역위 절차는 한국의 행정심판과 유사하며 대통령의 승인 절차를 거친다. 다만 업계 일각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기차 생산 차질을 우려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변수로 거론된다.

에스케이 쪽은 폭스바겐과 포드에, 엘지 쪽은 테슬라와 제너럴 모터스에 각각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한다. 포드는 이번 결정과 관련해 미 국제무역위의 결정은 2022년 중반에 전기차 에프(F)-150을 출시하려는 자사의 계획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 특허 쟁송 절차상 통일을 기하기 위해 법원 판결이나 미 국제무역위 심결에 불복할 경우 모두 연방순회항소법원이 심리하며 연방대법원에서 확정된다. 에스케이 쪽은 이번 결정에 불복할 수도 있다. 양쪽 간 화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미 국제무역위 결정은 미국으로의 수입금지 등 행정 조치가 가능하지만, 법원 판결처럼 손해 배상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미국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기업이 미 국제무역위의 조사를 신청하는 사례가 많다. 행정부 조치가 소송보다 큰 영향력을 불러올 수 있어서다.

미국에서 특허침해·무효 소송은 법원이, 특허침해 조사는 국제무역위가, 특허무효 심사는 특허청이 맡는다. 미 국제무역위의 결정은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통령은 60일의 검토 기간을 가지며 정책적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검토 기간이 지나면 최종 심결은 종국 결정이 된다. 결과에 이의가 있는 경우 최종심결일 또는 대통령의 검토 기간이 끝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법원에 불복할 수 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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