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소니 ‘워크맨’.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전시회. (2009년) 인텔 전시장의 주요 콘셉트도 ‘티브이+인터넷’이었다. (2012년) 엘지전자 CTO 안승권 사장이 세계 최대 크기인 55인치 3차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티브이를 소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위키피디아 갈무리, 연합뉴스, AFP 연합뉴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4일 사상 처음 온라인으로 개최된 세계 최대 정보통신·가전 전시회인 ‘시이에스(Consumer Electronics Show·CES) 2021’이 막을 내렸다.
전 세계 아이티(IT) 기업들이 각자의 최첨단 기술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이 전시회는 1967년 미국 뉴욕시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에는 주로 라디오와 브라운관 티브이 등 백색가전 위주의 전시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는 54년의 시간 동안 눈부신 기술 발전을 거듭한 결과, 이제는 인공지능 로봇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한 ‘스마트시티’, 자율주행차 등 모빌리티가 전시회의 주인공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54년 동안 세계의 눈을 쏠리게 한 최첨단 아이티·전자 기술은 대부분 이 전시회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진 워크맨과 브이시알(VCR·비디오카세트레코더)도 시이에스에서 주목 받은 ‘혁신 제품’이었다. 시이에스 누리집을 보면, 1970년 브이시알, 1981년 캠코더 및 시디(CD)플레이어, 1996년 디브이디(DVD), 2008년 오엘이디(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티브이, 2014년 3디(D) 프린터 등이 ‘세계를 변화시킨 혁신 제품’으로 소개돼 있다.
전시회 위상이 본격적으로 높아진 건 2000년대 들어서다. 가전제품과 정보통신 기술이 결합하기 시작하면서 각 기업들은 앞다퉈 상용화 전 단계의 최첨단 미래 기술을 이 전시회에 들고왔다. 전자제품으로 명성을 날리던 일본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업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점도 이때부터다. 2005년 시이에스가 끝난 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삼성전자에 대해 “한때 값싼 전자레인지 같은 것을 만드는 기업에서 … 세계에서 가장 멋진(cool) 브랜드의 하나로 변모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는 시이에스에서 안방을 차지하는 가장 ‘핫’(hot)한 기업이다.
2000년대 초반 통신기술의 발달로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는 ‘홈네트워크’가 시이에스의 화두로 떠올랐다. 지금의 사물인터넷(IoT) 수준보다는 한참 아래지만 2005년 엘지전자의 신개념 복합 ‘디브이디 레코더’는 ‘홈네트워크’의 핵심 제품으로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케이블·위성·지상파 방송을 골라 녹화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티브이 화면에 띄울 수 있는 제품들도 ‘홈네트워크’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했다.
이후엔 티브이로 인터넷을 연결하는 기술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9년 시이에스의 주인공은 전자제품 기업이 아닌, 티브이를 이용한 인터넷 서비스인 ‘위젯 엔진’을 선보인 ‘야후'였다. 이후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즐길 수 있는 ‘스마트 티브이’가 나왔고 2013년엔 냉장고 등의 가전에 와이파이를 내장한 ‘스마트 가전’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삼성전자는 2016년 시이에스에서 모든 자사제품에 사물인터넷을 연결하는 ‘스마트홈’ 비전을 내놨다. 2018년부터는 사물인터넷이 집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차량, 도로, 회사로까지 이어지는 ‘스마트시티’가 시이에스의 화두를 점령하고 있다.
매해 시이에스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제품은 티브이다.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는 지난 15년 동안 전 세계 티브이 제조업체 가운데 가장 앞선 기술을 선보이며 경쟁해왔다. ‘스마트 티브이’ 등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화질이 눈에 띄게 개선된 ‘오엘이디(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티브이’ 등 하드웨어 부분에서도 눈에 띄는 발전을 거듭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세계 티브이 시장은 피디피(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티브이와 100만~200만 화소급 엘시디(LCD) 티브이가 경쟁을 벌였다. 누가 더 크게 만드느냐, 누가 더 얇게 만드느냐는 다툼의 시작이었다. 2010년엔 일본의 소니 등이 3차원(3D) 티브이로 한국 기업들을 잠시 밀어내는 듯 했지만, 2012년 시이에스에서 삼성전자와 엘지전자가 ‘55인치 오엘이디(OLED) 티브이’를 세상에 선보이며 다시 티브이 패권을 가져왔다.
이후 엘지전자는 2013년 55인치 오엘이디 티브이를 세계 최초로 출시하면서 오엘이디 경쟁에서 승리를 거뒀고, 삼성전자는 엘시디 패널 기반의 ‘큐엘이디(QLED) 티브이’로 노선을 변경했다. 2019년 시이에스에선 엘지전자가 두루마리처럼 말았다 펼 수 있는 ‘롤러블 오엘이디 텔레비전’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이때부터 8케이(K·가로화면 화소 수가 8천개) 화면 전쟁도 시작됐다. 올해 열린 시이에스에서 엘지전자는 오엘이디 소자 성능을 한단계 끌어올린 ‘올레드 에보’(OLED evo)를, 삼성전자는 스스로 빛을 내는 110인치 ‘마이크로 엘이디’ 티브이를 주력 상품으로 내놨다.
(2016년) 엘지전자가 부스 입구에 올레드(OLED) 티브이 112대로 설치한 ‘밤하늘의 별’ 전시공간. (2019년) 닛산자동차가 뇌파로 조종하는 ‘IMx 쿠로(KURO)’ 자율주행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2020년) 도요타가 스마트 시티인 ‘우븐 시티’를 공개하고 있다. (2021년) 삼성전자 승현준 사장이 ‘삼성봇 케어’, ‘제트봇 AI’, ‘삼성봇 핸디’를 소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AFP 연합뉴스, 삼성전자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시이에스는 ‘가전전시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첨단 기술로 무장한 자동차들도 전시회의 또다른 주인공으로 당당히 자리잡았다. 2008년 시이에스에선 역대 최대 규모의 ‘자동차 내부 기술’ 전시장이 따로 마련됐다. 카오디오, 내비게이션을 넘어 모바일 비디오 등 자동차와 관련된 무선 정보통신 기술이 대거 등장했다. 2016년 시이에스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스마트카’였다. 이때부터 자동차가 사물인터넷과 연결되면서 생활공간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17년 이후 시이에스 자동차 전시의 화두는 다른 차량이나 교통 인프라와 통신하는 ‘커넥티드 카’와 스스로 운전하는 ‘자율주행차’였다. 베엠베(BMW)와 포드, 도요타, 현대·기아차 등은 시이에스에서 커넥티드 카와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이며 경쟁을 이어갔다. 2019년엔 자율주행과 함께 차 안에서 휴식을 즐기는 ‘카인포테인먼트’가 키워드로 떠오르며 전시장에 자율주행차 체험 콕핏(운전석)이 줄줄이 등장했다. 2020년엔 현대차가 하늘을 나는 플라잉카를 처음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인공지능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6년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바둑 9단인 이세돌을 꺾으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시이에스에서도 인공지능 기술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2017년 시이에스에서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는 사용자의 생활 습관을 읽는 ‘딥 러닝’ 기술을 탑재한 가전제품을 선보였다. 그 해 이슈로 떠오른 자율주행차의 기반도 인공지능이었다. 2018년 구글이 처음으로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독립 부스를 차린 것도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인공지능은 시이에스의 핵심 키워드에서 빠지지 않았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로봇도 최근 몇년 사이 시이에스를 빛내고 있다. 2017년 엘지전자는 로봇산업 진출을 선포하며 가정용 허브 로봇을 내놨다. 이 로봇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음악을 틀어주거나 다른 가전제품을 작동시킬 수 있었다. 2018년 삼성전자도 몸에 착용하는 보행보조 로봇과 헬스케어 로봇을 선보였다. 2020년엔 삼성전자가 공모양 로봇 ‘볼리’를 내놓으며 가 주목 받았다. 올해 폐막한 시이에스에서도 주방 일을 도와주는 로봇인 ‘삼성봇 핸디’ 등을 비롯해 미국 기업인 케어클레버의 반려로봇 ‘큐티’ 등 다양한 로봇이 소개됐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