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1’에서 선보인 LG전자의 디지털 전시관. 디지털 전시관 홈페이지 갈무리
“CES를 가보지 못 하고 온라인 개최 사실을 알려야 하는 선배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IT 출입 기자의 꽃은 해외 출장을 통해 개안(눈을 뜸)하는 것인데 말이죠. 시이에스 정말 재밌는데…….”
위로인지 놀리는 건지 잠시 헷갈렸던 후배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매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정보통신·가전 박람회인
‘CES 2021’이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개최된다는 기사를 막 출고한 뒤 받은 메시지였다. 이게 그렇게까지 아쉬운 일인가?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알기도 힘들었다.
지난해엔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3대 가전 전시회인 CES(미국 라스베이거스), MWC(스페인 바르셀로나), IFA(독일 베를린) 가운데 1월에 열린 ‘CES 2020’만 현장에서 열렸을 뿐, 2월 MWC는 취소되고
온라인으로 진행된 9월 IFA는 흥행에 실패했다. 지난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은 다른 기자가 참가했으니, 결과적으로 아이티 출입 기자로서 전 세계의 첨단 기술에 눈을 뜰 ‘개안’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삼성전자는 ‘모두를 위한 보다 나은 일상(Better Normal for All)'이라는 주제로, LG전자는 ‘소중한 일상은 계속됩니다. LG와 함께 홈 라이프를 편안하게 누리세요(Life is ON - Make yourself @ Home)’를 주제로 ‘CES 2021’ 행사에 참여했다. 각사 제공
그럼에도 이번 ‘CES 2021’은 나름 기대가 됐다. IFA에는 불참했던 삼성전자 등 굵직한 기업들이 출품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고, 전시회 기술 파트너사로 참여한 마이크로소프트(MS)가 디지털 플랫폼 구축을 담당하면서 온라인을 통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전 세계 기업들이 내놓을 새로운 제품에 대한 기대와 함께 세계 최대의 가전 전시회를 온라인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그 방식에 대한 호기심도 일었다. 그러나 막상 11~14일까지 나흘간 온라인 전시회를 취재하고 나니 ‘현장’에 대한 아쉬움은 짙어졌다. 후배의 위로(?)가 무슨 뜻이었는지 그제야 감이 왔다.
물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집에서 편안하게 최신 제품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었다. 축구장 30여개 크기의 전시장을 누비다보면 자칫 놓칠 수 있는 연설이나 전시들도 온라인에서는 언제든 다시 재생해 볼 수 있었다. 라이브 방송 채팅장에서는 전 세계 각지에 있는 참관인들이 각자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인사를 주고 받으며 소통했다. 몸은 집에 있지만 마음만은 세계 사람들과 연결돼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특히, 온라인 IFA의 경험을 토대로 한층 개선된
LG전자의 디지털 전시관에서는 증강현실(AR)을 접목한 확장현실(XR)을 기반으로 제품을 360도 돌려 보여주는 등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돋보였다.
‘CES 2021’ 첫날 CES 홈페이지 라이브 방송 채팅창에서 관람객들이 인사를 주고받고 있다. CES 홈페이지 갈무리
그럴수록 현장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더 커졌다. 대규모 디스플레이 전시로 관객을 압도해왔던 LG전자는 이번에도 ‘올레드(OLED) 플렉서블 사이니지’를 이어 붙인 대규모 올레드 조형물을 만들어 촬영했지만, 이 조형물을 피시(PC)나 모바일로만 보니 웅장함은 와닿지 않았다. 또한
삼성전자, LG전자, TCL, 소니 등이 각자 최신 기술을 통해 만든 TV 신제품을 놓고 경쟁을 벌였지만, ‘빛과 색이 살아 있다’는 화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CES 2021’에서 선보인 삼성전자의 ‘Neo QLED’ TV와 LG전자의 ‘LG QNED’ TV. 각사 제공
현장에서 눈에 띄는 전시를 발로 뛰면서 찾아다닐 수 없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기존에는 오프라인 전시회장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찾아가 어떤 전시인지 들여다보기도 하고,
자율주행 등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자동차를 여러 번 타보기도 하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기 냄새를 찾아 식물성 버거를 먹어보기도 했다지만 온라인으로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었다.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일본의 가전 업체 소니가 자율주행 완성차를 만들겠다고 발표하며 ‘비전-에스(VISION-S)’ 모형을 선보이는 현장에 관람객들이 몰려 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특히 1900여개 참여업체 전시 가운데 원하는 주제의 전시를 제대로 찾기 어려웠다. 전시회 참가 업체 가운데 언론 설명회를 준비한 기업은 72개에 불과해 나머지 기업들은 어떤 제품으로 어떤 전시를 하는지 알기가 쉽지 않은 구조였다. 기업의 이름을 알아야만 이름을 검색해 해당 기업의 온라인 전시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1900여개 업체를 일일이 하나씩 클릭해 확인해야 했다. 이 때문에 행사 첫날 라이브 채팅창에는 CES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제대로 찾지 못한 관람객들이 질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가지 한계로 예년만 못한 흥행 성적을 거둔 ‘CES 2021’이었지만, 그래도 온라인으로나마 새로운 기술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한쪽 눈’ 정도는 뜰 수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19의 종식으로 다음엔 현장에서 완전한 ‘개안’을 할 수 있기를.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